만약 당신이 회사의 사장이나 조직의 책임자라면 자신과 함께 일할 직원으로 어떤 조건의 사람을 뽑겠는가? 학벌일 수도 있고, 다양하고 풍성한 경험일 수도 있고, 성실성과 좋은 성품일 수도 있다. 교회나 기독교 단체라면 당연히 신앙연륜이 많고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을 선호할 것이다. 하지만 좋은 일꾼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자신에게 일을 맡길 주인을 이해하고, 알고, 주인이 원하고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헤아리는 마음과 태도다. 말은 고용주를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도, 고용주가 아닌 자기가 원하는 방향과 방식대로(그것이 아무리 선하고 좋은 일이라 해도)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미국 플로리다 남해안 마이애미 시는 쿠바와는 500km, 바하마스와는 296km 떨어져 있다. 고속 보트를 타면 몇 시간 만에 갈 수 있는 거리다. 그래서 종종 마약 밀매단이 레이더 차단기를 설치한 고속 보트를 타고 해안경비대의 경비망을 교묘히 뚫고 다니며 마약을 운송한다. 이들을 단속하려면 마약 밀매단이 타고 다니는 것보다 더 속력이 빠른 보트가 있어야 하는데, 문제는 정부에 그런 경비정을 구입할 재정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가 마이애미 지역사회에 불거질 즈음, 한 사업가가 해안경비대의 마약 단속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언론 매체들은 앞다퉈 이 소식을 보도했고 정치인들도 그 사업가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며칠 뒤 그 사업가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밝혀지면서 “그런 사람의 ‘자선’은 받아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어났다. 알고 보니 그는 대형 포르노 웹사이트의 운영자였다. 결국 마이애미 시 정부는 “모든 사람이 눈살 찌푸리는 일을 통해 번 돈으로 마약 단속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그의 지원을 거절하고 말았다.
세상 사람들도 과정과 수단에 문제가 있으면 목적과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이의를 제기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라고 항의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어떠해야겠는가?
하나님은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아는 사람을 찾으신다. 하나님의 성품(character 혹은 attribute)과 그분의 뜻, 그분이 세워 놓으신 계획, 그분이 원하시는 일의 방식을 아는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이유로 거짓말과 편법, 독재와 권위주의를 합리화 하지 않으며,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목표와 목적뿐 아니라 과정과 동기도 하나님의 일에 중요한 부분임을 안다.
그런데 왜 이런 사람을 찾기 어려운 걸까? 이토록 그리스도인이 많은데 왜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이렇게 적은걸까? 나는 그 이유가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의 경험과 배움을 앞세우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윗은 성경에 기록된 대표적인 하나님의 사람이자 믿음의 영웅이다. 그런데 늘 다윗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와 비교당하는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 있다. 바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다. 수많은 설교와 책에서 그는 ‘시작은 창대했으나 나중은 심히 실패한’ 사람의 전형으로 취급당하지만, 사실 그는 진정 왕이 될 만한 인재이자 인물이었다. 하나님이 그를 잘못 보신 것이 아니었다(삼상9:15-18).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정도로 멋진 외모와 풍채를 갖고 있었다(삼상9:2, 10:23-24). 이스라엘 백성은 위대한 지도자 사무엘을 거부하면서까지 간절히 왕을 원했다. 그러니 자신들의 첫 왕이 될 사람의 자격을 까다롭게 따지며 촉각을 곤두세웠을 것이다. 그런 정황을 감안하면, 사울의 외모는 지도자로서 사람들의 신뢰와 지지를 이끌어 내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또한 그는 도망친 나귀를 찾아 집을 떠난 자신을 걱정할 아버지를 신경 쓰는 효자였고, 자신의 힘으로 풀 수 없는 문제를 하나님께 맡길 줄 아는 신앙인이었으며, 왕이 된 자신을 무시하는 자들을 벌하지 않는 온유한 사람이었다(삼상9:5-10, 10:27). 또한 그는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자였고,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할 때를 정확하게 아는 지도자였으며, 강한 적과의 싸움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사였다(삼상11:6-7). 우연히 벌어진 일이었지만 성령충만과 예언의 은사까지 체험하고, 왕이 된 이후 이스라엘을 위협하던 주변 민족들을 확실하게 평정하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 낸 사람이었다(삼상10:10, 14:47). 사울을 찾아내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안목은 정확했다. 그는 다윗보다 훨씬 더 뛰어나고 훌륭한 왕이 될 재목이었다. 하지만 사울은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이 명하신 바가 아니라 자신이 알고 배운 바에 따라 행동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블레셋과의 전쟁을 시작하기 위해 사무엘 대신 제사를 드리고,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거역하고 그들의 왕 아각과 가축들을 전리품으로 남겨 놓은 것이다(삼상13:8-9, 15:8-9). 그렇다고 그가 내세운 명분이 아주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늙은 선지자의 늑장 때문에 바람 앞에 꺼져가는 등불 같은 조국 이스라엘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고, 아멜렉의 기름지고 좋은 가축들로 하나님이 기뻐하실 제사를 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마음속에 숨겨진 동기와 해결 방식이었다. 우리는 사울이 성장 과정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왕이 된 이후 그가 보여 준 모습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에게 어떤 가르침을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나무는 열매로 아는 법이니 말이다(눅6:44).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즉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무엇을 원하시는지, 어떤 원칙을 따라 어떤 방식으로 일하시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었다. 사울과 달리 말이다. 하나님은 그 분의 올바른 가르침에 따라 일하며 살아갈 사람을 찾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