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Tim Keller)는 '복음'과 '일' 그리고 '기독교적 세계관'이 우리가 있는 '일 자리'에서 어떻게 영향을 나타내는지를, 그의 저서 "Every Good Endeavour - Connecting Your Work to God's Work"에서 일의 종류가 유급이든, 무보수이든 그곳이 학교, 회사, 공장 혹은 재택근무를 막론하고 모든 일터는 우리 모두에게 분명히 사역의 목적이 있는 '하나님의 장소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2016 Granville).
켈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한정되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을 "직장에서 돈을 벌기 위해 거의 다 사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누구도 죽는 순간까지 일에 파묻혀 사무실에서 생애를 마치고 싶은 사람은 없다"라고 한다. 인생이 일과의 관계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면, 일터에서 정신없이 사는 현대 크리스천의 일에 대한 개념과 그에 따른 지침은 어떠해야 하며, 또 어떻게 시간을 쪼개어 성경의 가르침과 접목하여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성경의 원칙이 치열한 직장 생활의 현장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인가? 기독교인의 직업윤리는 어떠해야 하는가? 성경은 우리의 직업과 직무 수행을 어떤 관점에서 보고 있는가에 대해 켈러는 프리드만(Friedman)이 주장한 일반 기업 경영의 시장경제이론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대부분의 일반 사회 기업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오직 하나의 목표만 갖고 있으면 된다. 왜냐하면 대체로 시장 자체의 본질이 성실한 것은 당연히 보상 하지만 불성실은 징벌로 나타나게 되어 있으므로, 기업은 손익 이윤에만 신경쓰면 나머지는 알 아서 돌아가므로 계획한 이윤 목표에 온 힘을 쏟아야하고 전진해야 한다." (Economist, June 6, 2009 p.66)
켈러는 프리드만의 시장경제 이론에 대해, 물론 회사의 이윤도 중요하고 비즈니스에 수익이 충분히 있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금방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만 연연할 것이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고 먼저 직업윤리의 도덕성을 기본 바탕으로 비즈니스를 미래 지향적으로 해 나갈 때 공공의 이익이 분배될 수 있고, 그 누적효과로 결국 나라의 탄탄 한 경제발전과 안정된 국가를 세우는 기초 초석이 이루어진다고 평가하고 있다.
Batchelor & Waltke(2004)는 직장에서 기독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직성을 고수하고 자 신에게 불이익이 오더라도 그것을 감수하며 부패와 싸우고 타자의 유익을 위해 서슴없이 나서서 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신 '소금'의 역할, 즉 소금 그 자체 그대로 있지 말고 서슴없이 사회 안에 들어가 그곳에서 비벼지고 녹아져서 부패를 막는 역할을 크리스천은 기꺼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Batchelor & Waltke(2004)의 컨셉은 우리 크리스천들이 세상과는(A different set of Virtues) 차원이 다른 새로운 덕성을 일터에서 꼭 가져야한다고 권고한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당부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로새서 3장 23절)는 일에 대한 기본지침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행동에 옮길 것을 당부하고 있다.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인 루이스(CS. Lewis)는 '기독교 신앙은 분명히 다른 세계관에서 볼 수 없는 질적인 좋은 요소를 갖고 있다. 실제로 크리스천은 주변 사람들과 구별되는 도덕적인 나침반과 복음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말씀에 순종하는 태도로 각자 일터에서 그대로 살아내기만 하면' 예수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간접적으로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게 되고 영향을 줄 수가 있다고 말한다.
켈러는 우리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믿는다면, 인류를 보는 관점(A different View of Humanity)이 의도적(Intentionally)으로 달라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켈러는 솔직히 현대인의 삶의 국면을 보면 인간관계는 가치의 기준이 점차로 나에게 유익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과 가치 수단으로 서로 네트워크화 되어가고, 소비자는 기업인에게 밥줄과 돈지갑을 위해 잘 거래해야 하는 상업수단으로 우선시 되는 반면, 일터에서의 직원은 임무를 수행하는 업무에서 하나의 자원으로만 평가되고 있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천들이 문화적으로, 도덕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성경에서 주님의 인권교육의 원리를 바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비록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고 해도 사람은 상호 교환 가능한 자원의 하나로만 보아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형상(공유적 속성)대로 지음을 받은 구별된 존재로 존중해야 하고 더욱이 침해할 수 없는 귀중한 '인격'적인 존재로 존엄하게 취급하여야 하는 마음가짐을 근본적으로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더욱이 크리스천은 반드시 하나님의 형상에 근거해 한 개인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하보다 귀한 영혼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자세를 꼭 가져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 자신은 그렇게 하고 있는가? 켈러는 일의 지침을 얻는 새로운 길(A Different Source of Guidance)은 위로부터 오는 절대적인 지혜가 있어야 함을 제안한다. 왜냐하면 지혜는 단순히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윤리 기준을 따르는 수준을 넘어, 도덕률이 명쾌하게 줄 수 없는 답을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알려 주시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 지혜의 원천은 창조주 하나님이며 가장 먼저 그분을 개인적 인격적으로 알아가는 자기 성찰이 절대 필요하며 나 자신이 과연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교제하는 사이인가?' 아니면 '하나님은 나에게 막연히 믿는 이방인과 같이 필요에 의해 복을 구하는 한 신적 대상인가?'라고 반문해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일터에서 누구를 가장 의식하며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바울은 엡6:5-9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상전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하듯이 일을 하며,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성실한 마음으로 두려워하고 떨며 순종하고 충실히 일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 고용주에게는 고용인을 위협하지 말라고 당부 하고 있다. 왜냐하면 고용주가 상전이 아니고 우리의 진정한 상전은 하나님이시며 그 분이 하늘에서 보고 계시며 겉모양만 보시고 판단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어떤 종류의 일이든지 '일'은 하나님께로부터 연유한다. '일'은 맨 먼저 하나님이 제정하셔서 그 '일'을 위해서 인간을 지으셨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인간은 그 일에 대해서 책임과 그 책임을 이루어야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허락 받았다(창1,2장). 사실 기독교인이 일터에서 일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누구를 위해 누구하고 일하며, 누구를 의식하고, 누구의 의견을 가장 중하게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가, 누가 우리의 일터를 지켜보고 있는가에 대해서 우리의 가치질서를 정립해야 할 것이라고 켈러는 지적한다.
켈러는 직장에서 사역을 위해 훈련받고, 영감을 주고 능력을 부여받는 방법은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들을 공정하게 대하며 유익을 끼칠 수 있는지 의도적으로 적극적으로 늘 찾아야 한다고 리디머교회의 기독직장인들의 체험담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려면 기독 직장인 스스로가 복음과 일과 기독교적 가치관 세계관 직업관에 있어서 남다른 덕목과 미덕, 너그러움, 지혜로움, 좋은 평판, 용서와 화해, 일을 나누어 짊어짐, 이타적이고 따뜻한 모습으로 적극적으로 의도적으로 감당해 낼 때 일터에 변화가 온다는 것이다.
즉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그리고 철저하게 일의 형편을 헤아리며 성경적인 잣대로 그 궤적이 행복한 삶과 정의를 쫒으며 지금 하는 일을 깊이 생각하고 살피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한 변화의 역사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켈러는 단언한다. 즉 다가오는 기회를 포착해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늘 준비하고 주님께서 복음의 문을 열어주실 것을 확신을 가지고 부름 받은 소명자로서 적극적으로 헌신해야할 것이다. 이것이 켈러가 권고하는 'A New Compass for Work' 즉 일에 대한 새로운 나침반이요 방향이며 일터에 적용해야 할 크리스천의 윤리이며 지침이다.
자신에게 엄격하게 질문해 보시라. 상황을 바로 인식하고 확신을 가지고 위기까지 극복하면서 예수께서 명령하고 약속하신 상급을 끝까지 추구하며 죽도록 달려갈 마음이 있는가? 아니면 '그냥 지금 이대로가 좋아' 혹은 '내 앞가림하기도 힘이 드는데 무얼 또 새삼스레'하면서 주저앉을 것인가? 진실로 "주님"을 만나고, 모든 "일"의 주인이신 "주님"과 그 일과 "나 자신"이 성령님 안(in Christ)에서 "하나"로 깊은 사랑의 관계를 감지할 때는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선교의 "사명" 을 향한 사랑의 불길이 내 깊은 내면으로부터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며 일어날 것이다.
유사라 교수(대구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