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애 응애~' 벌써 몇 시간째 한 아기가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울고 있습니다. 아빠가 힘에 부치는 지 아기를 엄마에게 주고, 또 다시 받기를 반복해보지만 아기가 울음을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힘이 들어 짜증이 날 만도 한데 아빠는 계속 웃고 있습니다. 아기와 눈을 맞추고, 뭔가를 계속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OO이 착하지? 이제 거의 다 왔어요~ 조금만 참으면 할아버지도 보고 할머니도 볼 수 있어요~"
피식~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오래 전,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 가던 제 모습이 오버랩 되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아기들은 아빠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뭐고, 왜 자기들이 이 고생을 해가며 그 사람들을 만나러 가야 하는지...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자기가 놓인 상황이 싫고, 빨리 벗어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마냥 우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는 한 칭얼대는 것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 때까지, 아기는 아빠의 품에 안겨 울어 댈 것입니다.
때때로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지금 아빠의 품에 안겨 칭얼대고 있는 저 아기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안으신 채, 우리와 눈을 맞추시고 말씀으로 힘을 주시며 이 길을 가고 계신데 우리는 늘 칭얼댑니다. 비행기 안이 너무 시끄럽다고,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 것보다 비행기 안이 너무 좁고 답답하다고... 불평만 합니다. 왜 이 길을 가고 있는지, 이 비행이 끝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리 말씀을 하셔도 그저 답답한 비행기 안이 싫다고 불평할 뿐입니다.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사 55:9) 땅에 발 딛고 살아가지만 하늘 같이 높으신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좁은 길 가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높으신 하나님의 생각을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좀 더 잘 견디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십자가가 그냥 지나가길 원하셨지만, 그런 자신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길 원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기억합니다. 그런 예수님의 길을 따라 가고 싶습니다.
오래 전 아버지가 누우셨던 방에 누워, 벽에 걸린 가족 사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28살 여전히 앳된 저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계셨을 때, 이 자리에 누우셔서 얼마나 저를 그리워 하셨을까요? 멀리 있어 당신의 품에 품지 못하시는 아들을 얼마나 많이 하나님의 품에 의탁하셨을까요...? 이제 그 세대는 가고 이 세대는 남아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 제 아내를 의탁하고, 제 아들들을 의탁하고, 우리 교회를 의탁합니다. 아주 간절히 말입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