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민족: 민족 화해와 통일이라는 낭만가(歌)의 허실
북한의 민중은 20세기 내내 한국민의 동포이자 가족으로 인지되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분단과 정치적∙군사적 대치에도, 북한에 가족과 친지를 둔 채 한국으로 피난한 이들에게 북한 민중은 여전히 가깝고 그리운 가족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이들이 거의 노년기에 이른 현재 상황에서, 한국민 다수에게 북한 민중이란 동포나 가족보다는 한때 한 국가 국민이었으나 현재는 이질적인 외국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인식되는 중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유사한 문화양식을 향유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정치적 차원에서는 점차 그들이 한국민과 다른 집단으로 인식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는 재중동포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결국 민족 이데올로기란 정치적 상황에 절대적으로 의존적인, 지극히 가변적이고 잠정적인 가치를 갖는 사고체계에 불과하다는 것이 오늘날 남북의 정치현실을 통해 확인된다. 반면 성서가 가르치는 복음은, 시대·인종·민족을 초월해 전 인류 가운데 그리스도를 믿고자 하는 자들 모두에게 유효한 보편적 가치로 제시된다.
영화 <강철비>는 역동적이고 가변적인 정치현실에 귀속되어 있는, 그래서 절대적이거나 영원하지 않은 민족 이데올로기의 허실을 대담한 방식으로 폭로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작품이다. 영화는 남북한 관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화해와 통일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에 경도된 나머지, 엄밀한 군사적 대립의 현실을 망각하는 이상주의적 태도의 경계를 권한다.
그렇다 해서 <강철비>의 메시지가 단순히 북한을 적대시하고 남북의 화해 시도 자체를 거부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분단과 핵공격 위협을 바탕으로 긴장관계를 조성해 다수의 민중을 억압하고 희생제물로 삼는 탐욕스러운 권력자들의 행각을 경계하고 방지할 것을 촉구한다.
이런 맥락에서 <강철비>는 현실에서 점차 희석돼 가는 한반도의 민족 이데올로기를 냉엄한 자세로 바라본다. 영화 속에서는 이 민족 이데올로기를 중시하는 인물로 차기 대통령 당선자 김경영(이경영 분)이 등장한다. 피상적으로 보면 김경영의 민족 이데올로기는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면모를 다분하게 드러내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그 역시 현실적 계산을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그는 계속 저하되고 있는 경제성장률과 출생률, 즉 망해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타개할 획기적 기회로, 남북한 화해와 통일을 인식하고 있다. 결국 민족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정치적 계산에 의해 지지되는 것이지, 무조건적 당위성을 가진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 김경영의 대사를 통해 확인된다.
◈신앙과 통일: 민족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둔 기독교 신앙의 허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반도는 분단된 시간이 통일된 시간보다 길다. 고조선과 부족국가 시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대, 신라-발해의 남북국 시대, 고려시대 대부분 동안 한반도는 둘 이상의 국가로 분열돼 있었다.
한민족이 현재의 국경을 확정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조선 세종대로서, 최윤덕 장군이 압록강 상류 4군을, 김종서 장군이 두만강 하류 6진을 무력 점령한 시점이다. 통상적으로 한국사 저서들에는 이 사건이 4군과 6진 '진출' 혹은 '개척'으로 표현되는데, 실제로는 해당 지역을 점유하고 있던 야인(野人)들(여진족 부족민들) 대부분을 학살해서 점령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는 통일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그 자체로 기독교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로 봐도 무방하다. 민족 이데올로기의 형성 동기는 결국 영토확장과 내부결속이라는 정치적 계산이다. 이는 구약시대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민족 이데올로기에서 동일하게 발견되는 특징이다. 중간에 변질되기는 했지만, 원래 구약 시대 이스라엘의 민족정신은 영토 확장과 내부 결속 자체를 민족의 핵심 가치로 두지 않았다.
이스라엘 민족의 중심적 가치는 자신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 약속하신 메시아(מָשִׁיחַ), 즉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모시는 일이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성취되었던 영토의 확장과 내정의 융성함은 하나님의 구원사역 과정에서 율법 준수를 통해 얻어지는 하나의 부수적 보상에 불과했다.
기독교는 민족 이데올로기로 대표되는 모든 형태의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결코 성서의 가르침과 구원에 대한 신앙에 앞서지 말아야 것을 원칙적 차원에서 강조해 왔다. 이런 맥락에서 4세기 후반의 위대한 신학자 어거스틴(Augustine)은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얼마만 지나다가 끝이 나는 죽을 이 생명에 관한 한, 만약 지배하는 사람들이 불경건하고 불의한 행동을 강요하지 않는다면, 곧 죽을 사람이 누구의 지배 아래 살든지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하나님의 도성, 제5권 17장)?"
이 진술 가운데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어거스틴이 극단적 정교분리 원칙을 내세우거나 지극히 염세적인 방식으로 현세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만일 그랬다면 전편에서 지적한 바 있듯, 어거스틴이 정당한 전쟁 수행의 권한을 설정하는 데 그토록 주의를 기울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어거스틴이 강조하고자 했던 바는, 구원과 영생을 소망하는 신앙 앞에서 현세의 민족 이데올로기는 근원적인 가치로까지 인정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 기독교는 상당한 시간 동안 민족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사역을 수행해 왔다. 그 대표적 사례로는 정치적으로 서로 양극단에 위치하고 있는 '반공신학'과 '통일신학'을 제시할 수 있다. 반공신학은 남북의 분단이 공산주의 유입으로 인한 민족의 불신앙 때문에 유발된 것이라고 본다.
이스라엘 민족이 솔로몬 말년의 우상 숭배 때문에 유다 왕국과 이스라엘 왕국으로 분열된 것처럼, 한국도 기독교를 적대시하는 공산주의에 물든 까닭에 나라가 두 개로 갈라졌다는 것이 반공신학의 주된 가르침이다. 그래서 반공신학은 철저한 공산주의 타도만이 한반도의 통일과 번영을 약속한다고 가르친다.
반면 통일신학은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한민족의 분열을 획책한 주변 강대국들을 악의 근원으로 지목한다. 민중신학의 한 갈래인 동시에, 민족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이 민중신학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통일신학은 한반도의 분단이 주변 강대국들의 정치적 탐욕과 한민족 내부의 민족 정체성 약화에 의해 유발된 사태라고 주장한다.
한민족이 성서의 약속에 따라 노예된 데서 해방되고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우선 민족의 통일과 외세로부터의 자립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통일신학의 주된 강조점이다.
반공신학과 통일신학 양측은, 비록 정치적으로는 좌우 양극단을 달리고 있지만, 민족 이데올로기를 복음 해석의 근거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같다. 어떤 의미로 보면 이 두 신학적 흐름은 한민족을 둘러싼 국제정세라는 실존적 정황을 깊이 유념하는 가운데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여러 방면에서 원색적으로 보이는 주장들이 포함돼 있지만, 나름 20세기 후반이라는 시기에 걸맞는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가르침이었다고 평할 수 있다.
민족 이데올로기가 실존적으로 전혀 무용한 것만은 아니다. 민족 이데올로기는 한민족 자체의 생존을 위해, 그리고 한민족의 초기 기독교 선교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민족의 안녕과 국가적 평화는 기독교인들이 평안 가운데 신앙생활을 지속하기 위한 필수적 조건이다. 그리고 한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것은 그 구성원 간의 복음 전파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바대로, 민족 이데올로기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다. 모든 이데올로기가 그러하듯, 민족 이데올로기 역시 태생적으로 그 대상이 되는 역사적∙정치적 정황에 의해 수시로 변화될 수 있는 특징을 담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민족의 통일이라는 이념은 한국민 전체의 입장으로 볼 때 생존을 위한 국방의 강화라는 책무보다 중요하지 않으며, 한국 기독교인 입장에서 볼 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보다 중요하지 않다. 지금까지 남북관계 및 한민족의 앞길을 바라보는 기독교적 관점이 주로 민족 이데올로기를 밑바탕 삼고 있었다면, 이제는 고착화되는 분단의 현실과 남북 민중의 이질화라는 냉엄한 현실을 바탕으로 근본적인 궤도수정을 가할 필요가 있는 듯하다.
◈신앙과 선교: 북한 선교, 민족에서 성서로의 전환
1885년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와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선교사가 조선에 입국해 기독교 선교를 개시한 이래, 한국 선교의 기본 방침은 네비우스 선교정책(Nevius Mission Plan)으로 정해져 있었다.
외국인 선교사에 의한 직접 전도보다는 소수의 한국인을 전도 후 이들을 사역자로 세워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네비우스 선교정책의 골자라 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특유의 문화적 폐쇄성과 자민족 중심주의는 네비우스 선교정책을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로 확정하는 주된 원인이 되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한국인을 대상으로 네비우스 선교정책이 시행된 지역적 범위는 한반도, 간도, 연해주, 만주 일부 등 한반도 주변에 한민족이 거주하는 곳 전체를 포괄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세종대 이후로 조선시대 내내 한반도가 정치적으로 통일되어 있었고, 간도, 연해도, 만주 이주자들도 아직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이 확고했던 점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한국인, 북한 민중, 재중동포의 정치적 정체성이 서로 확연히 다른데다, 언어·문화적 이질성마저 점차 확대되는 중이다. 영화 <강철비>는 이 점을 첨예하게 묘사하고 있다. 영화 속 북측 인물들의 말씨와 사고방식은 단지 민족이라는 명분으로 같은 테두리에 포괄하기에는 과도하게 다른 모습을 보인다.
중국 측 외교관으로 등장하는 재중동포 리 선생 역시 정치적 정체성은 확고하게 중국인이다. 그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 분)에게 일갈하듯 던지는 대사는 재중동포들의 정치적 정체성을 대변한다. "동포? 언제부터 한국이 동포를 신경썼네? 잘 살면 교포고 못 살면 외국인 아니야!" 결국 리 선생은 중국행 항공기 탑승 직전, 한반도 정세를 아쉬워하며 한 마디 덧붙인다. "나를 동포로 생각한다니 동포로서 한마디 하겠소. 막소, 이 전쟁."
영화 속 리 선생의 태도는 재중동포의, 그리고 보다 확장적으로는 북한 민중의 한국민에 대한 생각을 대변한다. 확연한 정치적 이질성과 경쟁심리 및 불신, 그리고 거기에 곁들여 있는 희미한 민족적 동일성, 이것이 현재 핵무기 문제를 놓고 갈수록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한국민, 북한 민중, 그리고 재중동포들의 서로에 대한 인식일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단지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한때 한 국가였다는 이유만으로 네비우스 선교정책을 밑바탕 삼는 북한 선교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심히 순진하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중국 연변 등지에서 중국과 북한을 오가는 재중동포 혹은 북한 주민을 통해 간접적으로 북한 선교를 시도하던 사역자들의 납북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데는 이런 문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납북과 순교의 위험을 불사하고 소명을 감당하겠다는 정신만큼은 존경스럽지만, 선교 전략과 관련해서는 보다 면밀한 반성이 요구되지 않나 조심스럽게 제안해 보고 싶다.
북한 선교는 일단 신변의 안전과 전도 활동의 자유가 확보된 한국 내에서 탈북민들에 대한 전도를 통해 예비되고 개시돼야 한다. 한국인의 일원으로 정착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탈북민들조차 북한의 뿌리깊은 무신론적 사상교육으로 인해 전도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탈북민 사역을 통해 북한 민중에게 유효한 복음전도 및 복지지원 방식을 충분히 습득하는 가운데, 정치적으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북한 선교의 문이 충분하게 열릴 수 있도록 기도하며 기다리는 믿음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남북 관계에 대한 정치적 인식부터 선교정책에 이르기까지, 한국 기독교인들은 민족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성서가 가르치는 원칙과 지혜를 구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런 성서적 원칙과 지혜는 여러 모로 보건대 한반도 분단의 냉엄한 현실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편들을 마련해 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영화 <강철비>는 정치적 차원에서 구태의연한 민족 이데올로기를 청산하고 발전적인 남북관계를 구축할 방법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가치를 가진 작품이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이런 정치적 인식에 더해서, 성서가 가르치는 원칙과 지혜를 바탕으로 현재의 한반도 정세에 대해, 그리고 북한 선교에 대해 종합적인 이해를 갖추어야 하는 위치에 처해 있다.
남북관계와 관련하여 영화의 현실인식이 한국 기독교계의 현실인식을 앞서 있는 지금, 교계 전반의 새로운 성찰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반문하고 싶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신 분들은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