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삶은 외롭습니다. 고국을 떠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친구들이 그립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나라에서 만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만, 정을 나누고 슬픔을 나누려면 정다운 이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주위를 살펴 혹시 외로운 사람이 있는가 돌아보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번째 이유는 주님께서 나를 찾아오셔서 나의 친구가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외롭게 살아가던 삭개오를 만나 그의 집을 방문하시고 교제하시며 그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설명하셨습니다.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눅19:10)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해 방황하는 영혼을 하나님은 찾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는 주님께서 나를 통해 하시고 싶으신 일, 잃어버린 한 영혼에게 찾아가서 그의 친구가 되어주고, 그와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형제자매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가족이나 친구들, 직장 동료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그(녀)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어주는 것을 기뻐합니다. 주님은 자신의 사명,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늘 의식하며 사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 그분은 나를 혼자 버려 두지 않으셨다. 그것은, 내가 언제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요8:29) 주님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성하여, 땅에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렸습니다."(요17:4)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도 사랑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에게 관심을 갖고 친구가 됩니다. 이민자에게 다정한 친구처럼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사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이지요. 어려운 일을 당해도 이겨낼 힘을 얻습니다.
세번째 이유는 아플 때, 배고플 때, 갇혔을 때 찾아와주는 사람처럼 고마운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딱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자신과 동일시하셨습니다. 외롭고 소외된 사람이 바로 주님 자신이라고 여기시는 것이지요.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25:35-36) 그러나 의인들이 주님께 반문합니다. 우리가 언제 그랬느냐고? 주님은 설명합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마25:40) 그리고 그렇게 외로운 사람들을 돌본 사람들에게 천국을 차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위를 살펴 외로운 사람이 있는지,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에게 다정한 친구가 되어주는 이유는 천국의 보상을 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믿음으로 천국시민이 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내가 받은 은혜와 사랑을 감사하며, 이웃과 친구가 되어, 그가 더이상 외롭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외로운 사람에게 건네는 따뜻한 한 마디는 사막에 꽃을 피우는 기적을 낳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