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김삼환 목사의 양식(良識)을 기대한 자들은 명성교회의 후임 목회자 선정이 종교개혁 5백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의 진정한 자기비움과 머슴 정신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런데 조선일보, JTBC뉴스룸을 비롯한 일간 신문, 인터넷과 교계 인터넷 신문들은 지난 2017년 11월 12일 명성교회가 담임목사직을 아들 김하나 목사가 승계하는 위임식을 거행하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신이 입어왔던 담임목사 가운을 입혀주고 안수하는 장면을 싣으면서 많은 양식있는 신자들과 일반 시민들을 실망시켰다고 보도하였다. 명성교회측은 한 일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하나 목사의 담임목사 취임은 공동의회를 통해 진행된 민주적 목회 계승"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해명은 양식있는 목회자들, 성도들, 세인들에게 수긍되지 않는다. 이는 한국장로교회사에서도 오점(汚點)을 남긴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잠 14:34).

1. 종교개혁 5백년주년 맞이하는 한국교회에 반종교개혁적인 오점(汚點)을 남긴 사건

이번 세습 사건은 세계 최대의 장로교회에서 일어난 세습사건이며, 종교개혁의 5백주년 정신을 훼손시키는 반종교개혁적인 오점을 남긴 사건이다. 이는 중세교회의 교황주의에 반대하여 일어난 "하나님으로 하나님 되게하라"는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에 배치되는 결정이다. 중세교회에서 교황 일인 하에서 모든 교회 경영이 이루어졌다면 명성교회의 세습사건 역시 교단 총회의 결정이 무시되고 노회원들의 강력한 반대를 개교회주의로 따돌린 대형교회 독선주의 행태이기 때문이다. 예장 통합 동남노회 동료 목회자들은 이 세습 위임식에 대하여 "너무나도 부끄러운 짓이기에 참담하다...이는 결코 명성교회라고 하는 한 지교회에 국한한 일이 아니며, 우리 모두가 다같이 공적 책임을 져야 할 문제"라는 항의하고 있다. 세습반대자들은 다음 같이 천명하고 있다: "명성교회는 마치 이 시대의 로마제국과 같이 초대형교회의 권력과 명예와 부와 영향력을 가지고 맘몬의 힘을 빌어 거룩한 주님의 교회를 억압하고자 하는 것과 같다." 명성교회는 개교회 결정을 내세워 한국교회 전체와 통합교단이 정한 법과 원칙을 무시한 것이다. 이번 세습은 앞으로 한국교회의 다른 대형교회들에게 "교회 헌법을 어겨도 괜찮다, 정당화된다"는 그릇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예장 통합 총회장 최기학 목사는 11월 14일 총회 임원회 정기회의에서 헌법 내 소위 세습방지법의 효력이 살아있다고 밝히면서 "법과 상식이 통하는 건강한 총회를 만들고,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란다"며, "총회는 법과 원칙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피력하고 있다. 또한 명성교회 목회 세습 이후 한국교회가 일반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질까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한국교회의 강함은 교회당 건축물의 거대함이나 많은 신도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박한 건축물에 작은 수이지만 가난한 마음의 소유자들의 자기 비움과 헌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2. 목회세습과 대형교회당(주교좌 성당) 세습은 다르다.

아버지의 성직을 아들이 이어받는 것은 성직(聖職)의 아름다운 승계라고 말할 수 있다. 아들이 목사(牧師)로서의 소명을 아버지의 소명과 같이 이어받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의 세습이 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서는 성직의 세습에 관한 실례가 없다. 중세교회는 주교좌성당을 두고 이루어지는 세습으로 인해 성직매매와 도덕적 타락이 극에 달했다. 그래서 11세기 클뤼니(Cluny)수도원의 일원으로 수도회 개혁운동을 주도한, 청렴한 수도승 힐데브란트(Hildebrand)가 교황(그레고리 7세, Pop Gregorius VII, 1073-1085)으로 선출되어 성직자 독신주의를 도입하게 되어 성직 세습을 제도적으로 근절하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소박한 시골교회당이나 소형교회당 세습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이러한 평범한 교회당 세습은 부자 간에 성직이 계승되는 것으로 아름답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만명 성도들이 모이고 엄청난 재정, 종교적 권력이 집중되어 신자와 일반인들의 주목을 받는 대형교회(중세적으로 말하면 주교좌 성당)의 승계는 소박한 마을 교회당 목사직의 승계와 동일시 될 수 없다. 여기에는 종교권력(교회당의 거대한 부와 명예와 직위, 영향력, 맘몬의 힘)이 승계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는 한국교회의 목회승계를 종교개혁 정신과는 달리 몰아가는 오점(汚點)의 사건이기도 하다. 교회의 권력은 정권이나 기업차원의 권력과는 다른 차원의 권력이기 때문이다. 정권 차원이나 기업차원의 권력은 힘의 경쟁 가운데서 약자 도태, 강자 쟁취인 데 반해서, 교회의 권력은 자기 비움과 헌신에서 나오는 권력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권력은 약함 가운데 주어지는 강함이기 때문이다.

3. 대형교회당 세습은 재벌 세습과 동일시되어 세인들의 비난을 받는다.

재벌 회사 회장직(CEO)의 세습들이 세인들로부터 비난 받는 한국사회의 상황에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하는 한국교회는 다르게 처신해야 하는 것이다. 세습 금지는 지난 6년 전 당시 세습이 만연했던 감리교회에서 2012년 부터 자정(自淨)노력으로 시작되어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 그나름대로 안착되었다. 세습목회금지법이 아름다운 법과 원칙으로서 예장통합측에서도 수용되어 총회의 법(세습방지법)으로 정해진 것이다. 당시 일반 언론들도 이를 한국교회의 자정 노력이라고 찬사(讚辭)를 하였다. 그런데 주목받고 있는 명성교회가 담임목사의 수차례 한 약속을 번복하고 무효화시킨 것은 개교회 독선주의로서 결코 바람직 한 것이 아니다. 이는 종교개혁 5백주년을 기념하는 한국교계와 신학계에 오점을 남기는 사건으로서 5백년주년 종교개혁 정신에 역행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주요 교단들이 목회자 세습금지를 기본 원칙으로 받아들이고 감리교단, 예장 통합 교단, 기장 교단 등은 교단 차원에서 세습방지법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세습에 대해 예장 통합 교단적으로 물의가 일어났고, 소속노회차원에서 강력한 반대가 있었고, 소속 노회 목회자 538명의 반대 성명이 있었고, 장로회 신학생들과 신학교수들의 반대 성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명성교회가 이런 가운데서도 세습을 감행한 것은 '오늘날 양적 성장과 대형교회는 여전히 좋다'는 대형교회 성공주의를 드러내는 영광신학의 대표적 실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4. 초창기의 아름다운 머슴목회 정신은 어디로 갔는가?

김삼환 목사는 초창기에 머슴목회로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모범이 된 것으로 안다. 목회자는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성도들의 머슴이라는 것이다. 그가 이해한 목사직은 머슴직으로서 자기의 뜻이 아니라 주인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양들인 성도들을 섬기는 성직이라는 고귀한 정신이었다. 김 목사는 이러한 머슴목회로 10만명이 교인으로 등록된 세계최대의 장로교회라는 초대형교회를 이루었다. 그런데 그의 은퇴일이  다가 오면서 지난 2015년 말 후임자 없이 정년(70세) 퇴임하면서 아들에게 담임목사직을 승계한다는 소문이 교계에 돌았다. 그러나 그는 이를 부인해왔다. 김 목사는 몇 차례 세습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으로 안다. 김 목사는 지난 2016년 1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들을 청빙 후보에서 빼달라고 했다." "(아들 문제로) 제가 상처 입는 것은 괜찮지만 교회가 상처를 입어서는 안 된다"고 밝힌 적 있다. 그는 자신의 퇴임시에 주어지는 거액의 은퇴금을 거절하고 교회에 희사한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것으로 안다. 그런데 결국 그는 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김 목사가 새노래명성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아들을 다시 명성교회로 불러 들여 후계자로 삼은 것은 더 이상 머슴이 아니라 교회의 황제로 등극한 것이 아닌가 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에 대하여 그를 개인적으로 알고 아끼는 자로서 애석하고 안타깝게 생각한다.

2014년 명성교회 지원으로 문을 열어 현재 출석 교인 2000명에 이르는 새노래명성교회 11월 12일 주일 오전예배에서 김하나 목사는 "죄송하다"는 말만 열 번 넘게 했다. 그는 설교에서 "저로 인해 마음 상하고 실망한 성도들께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했다. 예배 후 '사임 인사' 때에는 특히 "그동안 밖에서, 미디어에서 하는 지적이 일리 있고, 맞는 말이었다. 안타깝고 유감이지만 이 결정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제가 지겠다"고 말했다. 아들 김 목사가 "모든 것을 버리고 미국에서 세탁소라도 했으면"라는 심경 표현은 내면적 고뇌가 컸던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비난을 감지하고 책임지겠다는 의식을 가진 김하나 목사가 만일 주변의 세습 권유를 뿌리치고 세습 아닌 자신의 독립 목회를 결행(決行)했더라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만일 그랬다면 이는 우리 한국교회 안에 두고 두고 아름다운 목회 결단으로 평가될 수 있었을 것이다.

5. 목회자의 윤리는 세상 지도자들의 윤리보다 높아야 한다.

2015년 12월 기준 통계청의 종교통계에 의하면 한국교회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제1종교(967만명, 19.7%)가 되었다. 그러나 목회자의 윤리와 의식이 세상의 정치인, 기업인들이나 지식인들보다 높지 않으면 한국사회를 이끌고 나갈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제1종교의 역할을 다할 수 없다. 초창기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단지 교회 책임자를 너머서서 민족과 국가를 위하여 자신을 헌신하는 선구자였고, 윤리적 의식이 탁월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모이는 교세와 재정력만을 가지고서는 우리 사회를 이끌고 갈 수 없다. 그러한 권력과 재력은 정치인들과 재벌이나 기업인들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잘 알려진 이영표 KBS 축구해설위원이 명성교회 세습 강행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영표 위원은 11월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오늘 수 십년 동안 한국교회를 대표했던, 존경받는 모습으로 떠날 수 있었던 한 목사의 마지막이 비참하게 '세습'이라는 이름으로 끝나고 말았다"라며 명성교회 세습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아무리 판단력과 분별력을 상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판단과 분별의 경계가 희미해진 사람들에게서 '판단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 분별력을 상실한 체 틀린 것을 단지 다를 뿐이라고 말하는 상실의 사람은 더더욱 되지 말자"고 했다. 교회 지도자들은 이러한 평신도들의 아무 사심없는 예리한 양심의 소리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 겸허한 마음이 필요하다. 교회는 세상이 가지지 않은 것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자기 비움이요 섬김이다. 교회는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나사렛 예수를 증거해야 한다. 나사렛 예수는 자신을 지극히 작은 소자와 동일시했다. 중세교회가 많은 재산을 가지고 부유해졌을 때 이들로부터 나사렛 예수의 능력은 상실되었다. 그것이 천년 중세 기독교의 암흑을 가져온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거대한 권력과 명예와 성공을 추구하는 영광의 신학으로 자신을 증거하기를 원치 않으시고 십자가라는 세상이 멸시하는 수치와 굴욕과 약함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시기를 원하셨다. 이것이 종교개혁자 루터가 발견한 십자가 신학 착상의 핵심이다.

6. 대형교회의 위계질서화는 세습을 불러 일으킬 수밖에 없다.

교회가 지나치게 커져 위계질서화 되면 기업이나 관료조직으로 변모되어 자기 혈육인 아들만이 거기에 적합한 인물이 될 수 밖에 없다. 지난 11월 13일 오후 방송된 JTBC뉴스룸 '탐사 플러스'도 명성교회 세습에 관하여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이번 세습식으로 '새노래명성교회는 명성교회에 합병' 되었다. 교회는 관료조직이 아닌 신앙과 사랑의 공동체인데 교회가 커지게 될 때 기구화되는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거대한 교회는 조직 유지를 위해서는 조직을 중앙으로 집중시키고 이에 불복하면 탈락되고 이러한 위계질서를 흔들리지 않게 하는 자는 다른 외부사람이 아닌 직계 혈육밖에 없게 된다. 그것은 스위스 신학자 에밀 브룬너(Emil Brunner)가 『천8백년 동안의 교회의 오해』라는 저서에서 말한 바 같이 은혜 공동체인 초대교회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제도교회로 변질되었다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교회가 위계질서화 될 때 교회는 기구화 되고 세속화 되어 교주의 소유물이 되어,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할 수 없다. 위계질서화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권력의 분산이 필요하다. 조직의 지도자는 끊임없는 자기 부정과 자기 비움을 통하여 권력을 동역자들 가운데 분산시키고 구성원들과 공유하고 소통하고 협력하는 협의체가 요구된다.

7. 교회당 세습은 주님의 몸인 공교회의 사유화이다.

모든 교회는 주님의 교회이며 절대로 사유화 할 수 없다. 세습하는 목회자들은 자신들이 한평생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룬 교회를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진정한 목자의 사고가 아니라 세상 혈육인의 사고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혈육으로 된 것이 아니라 그의 아들의 피를 믿는 사람들의 신앙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목회자 개인이 혼자 이루는 것이 아니라 담임목사와 장로와 제직들과 평신도들이 공동으로 바치는 헌신과 섬김으로 이루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담임목사 개인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교회는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성도들의 교제요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담임목사가 좌지우지 할 수 없다. 담임목사는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이다. 담임목사는 교회의 황제가 아니라 머슴이기 떼문이다.

8. 교회의 영적 권위는 사회인의 윤리 의식보다 높을 때 주어진다.

김삼환 목사 부자(父子)는 명성교회와 새노래명성교회의 합병및 세습승계가 양식있는 기독교인들과 세인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으며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규모가 크다고 사회의 소금과 빛이 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양심과 행동을 모범적으로 보일 때 그것이 누적되어 권위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비난 받는 일을 반복하게 될 때 그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버림받게 되는 것이다. 이번 세습은 명성교회가 소속한  서울동남노회 비상대책위원회의 거센 반대를 받았다. 그래서 아들 김하나 목사는 "우리는 세상과 교계의 우려를 공감한다. 저는 그 세상의 소리가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우려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그러한 지적들과 우려들에 대해, 우리는 우리 교회의 존재로 풀어가야 한다" "다만 우리는 그 우려가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음을 증명해 내야 한다"고 피력하였다. 김하나 목사는 이번에 그가 한 말을 두고 두고 명심하면서 그가 한 말이 어려운 상황 모면을 위한 임기 응변이나 자기 변호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만일 명성교회에 다른 젊고 유망한 목회자가 후계자로 청빙되고 김하나 목사가 새노래명성교회의 목회자로 머물렀다면, 김삼환 목사도 교계적으로 사회적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을 받게 되고, 김하나 목사는 교계와 세인의 축복 속에서 양심의 꺼리김 없이 발전적인 목회를 할 수 있는 여건에 있게되지 않나 생각되기도 한다. 그리고 예장 합동측 김창인 목사의 충현교회에서 시작된 장로교 대형교회 세습을 방지하는 선구적(先驅的) 사건으로 기록 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9. 영광의 목회 아닌 십자가의 목회가 요구된다.

김삼환 목사는 세습 승계식에서  "김하나 목사도 힘든 십자가를 짊어주셨다. 여러분이 기도해 주시면 이 교회를 감당할 은혜를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도는 작은 자, 어리석은 자, 약한 자를 들어서 크고, 지혜롭고,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명성교회는 세상적 크기와 권력을 내세우는 영광의 신학을 추구하고 작고, 어리석고 약함을 중시하는 십자가 신학을 등한시한 것이다. 명성교회는 세습으로 오늘날 한국교회에 오점을 남겼다. 이는 십자가의 목회도 아니고 머슴목회라는 초창기의 아름다운 시절을 상기시키는 목회가 아니라 혈육이 후계자가 되는 영광의 목회라는 비난을 불러 올 수밖에 없다.

명성교회의 목회세습은 중세 천주교의 영광신학을 추종하는 목회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비판적 성찰 가운데서도 시인이기도한 고훈 목사는 세습 예식에서 다음 축시를 낭송했다: "오직 예수 55년을 하루같이/무릎으로 걸어온 평생 머슴목회/낮은 곳이 더 어울린 겸손한 목자/모든 것 다 바치고 빈손 되어 부요한 목자/기쁨 속에서도 눈물 흘리시는 사랑의 목자/ 주께서 위하여 십자가로 세운 교회/비판하고 정죄하여 심판할 의인은 이 땅에 하나도 없습니다/사람에게 버림받지 않고 돌 맞지 않고 서 있는/의로운 교회도 이 땅에 하나도 없습니다/ 누가 욕하면 욕먹고 누가 때리면 맞으십시오/그것은 그들의 의로운 자유요/이것은 명성이 짊어질 자유입니다."

필자가 고훈의 시(詩)에 전적으로 동감할 수 없는 것은 그의 시가 세습하는 한 목회자 개인의 비위에 맞는 찬사와 위로에 정위되고 한국교회 성도들이 느끼는 정의(正義)와 윤리를 도외시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를 이끄는 지도자의 길은 개인이나 한 단체의 유익보다는 전체의 유익을 더 우선시하여 개인과 일개 단체의 생각을 접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칼빈이 말하는 성화의 길이란 십자가 안에서 철저한 자기 부인(mortification)과 자기 살림(vivification)이다. 게세마네 동산에서 보여주신 주님의 기도와 행동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가 요청되는 것이다. 필자는 자신의 비판적 생각을 절대화하지 않는다. 필자 자신은 의인(義人)도 아니고, 비난 받을 것이 더 많은 허물투성이인 죄인이기 때문이다. 필자 자신도 비난받는 이러한 한국교회의 일원이다. 명성교회의 이러한 세습행동으로 한국교회 일원인 우리 모두가 오점(汚點)의 멍애를 뒤집어 쓰고 있다.

맺음말

김삼환 목사는 30여 년 전 명성교회를 개척하여 세계적인 장로교회로 발전시키고 WCC 한국 총회를 유치하여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등 한국교회에 기여한 공이 크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종교개혁 5백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에 명성교회가 양식(良識)에 준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심는 목회 후계자 승계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큰 기대가 있었기에 사랑의 충언을 드리는 것이다. 만일 그가 초창기 가졌던 머슴 목회 정신을 퇴임식에서도 실천했더라면, 그가 목회세습으로 갖는 한 개교회의 영향력 이상으로 한국교회사에 길이 남는 머슴 목회 정신을 실천한 목회 거목(巨木)으로 자리잡을 수 있지 않았나는 아쉬움이 있다.

필자는 인간적으로 아끼는 김삼환 목사의 깊은 자기 성찰과 자기 비움이 있기 바라며, 그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앞으로 이에 상응한 행동을 하기를 동료로서 기대해본다. 아브라함 링컨의 말처럼 하나님을 나의 편으로 끌어들일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비우고 우리의 뜻과 행동을 하나님의 편에 세울 때 우리는 진정하게 하나님의 편이 되어 그 분의 거룩한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초창기 머슴 목회 정신으로 되돌아가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추기(追記): 필자 자신은 신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하였던, 아끼는 동료를 탓하는 이 글 쓰기를 원치 않았다. 그러나 언론으로부터 명성교회 세습에 관해 글을 부탁 받았을 때 거부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국교회의 자정(自淨) 기능에 참여하는 것이 후대를 위하여 하나의 몫을 한다고 생각하였다.                       

2017년 11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