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황성철 박사(전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가 지난 4월 27일 서울 동광교회(담임 김희태 목사)에서 열린 예장 합동(총회장 전계헌 목사) 개혁신학대회에서 발표한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재혼에 대한 성경적 관점과 목회적 지침'이라는 논문을 연재합니다.
Ⅲ. 이혼에 대한 성경적 관점
1. 이혼에 대한 성경적 전제
이혼은 하나님이 만드신 제도가 아니다. 인간의 완악함이 만든 제도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적으로 규정된 상황 아래에서만 이혼을 인정하시고 규정하셨다. 모든 이혼 뒤에는 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혼을 미워하신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혼이 죄는 아니다. 어떤 이혼은 합당하다(렘3:8; 마1:19 참조). 엄격하게 정해진 규율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혼을 하나님은 허락하셨다. 합법적인 사유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이혼은 인정하신다는 말이다. 비록 그 원인이 죄와 연관된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모든 이혼은 죄의 결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혼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혼은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결코 바람직한 것도 아니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배우자의 부적절한 행위(음행)가 있는 경우에는 이혼이 허락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절대적인 필수사항은 아니다. 배우자의 성적인 죄가 이혼의 충분조건은 되지만 필수조건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혼에 대해 성경이 가르치는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여 성경적인 기본입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은 합당한 사유로 인한 이혼은 인정하고 있다. 거기에 대한 규정도 밝혀놓았다. 성경은 이혼에 대해 침묵하지 않는다. 그리고 적법하게 이혼한 사람을 비난하지도 않는다. 이 점은 이혼문제를 다루려는 교회지도자들은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 물론 말2:16에서 하나님은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고 하셨다. 이 선언으로 이혼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판단하거나 비난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이혼을 미워하시는 것은 맞다. 이혼은 인간의 완악함에서 연유된 것이지 하나님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합당한 이혼까지 정죄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이혼을 무조건 비난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렘3:8에서도 발견된다.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쫓고 그에게 이혼증서까지 주었으되...." 이 말씀에서는 하나님은 친히 이스라엘과 이혼을 진행하고 계심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특정한 환경 아래서 이루어진 합당한 이혼은 인정하고 계심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의로운 요셉이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것으로 비난을 받지 않았던 경우는 하나의 좋은 예이다(마1:18-19).
하나님이 이혼을 미워하시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하나님이 모든 이혼을 미워하시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인정치 않은 근거 위에서 이루어진 합당치 않은 이혼을 미워하시는 것이다. 성경의 원칙과 규제에 반하여 이루어진 이혼만을 미워하신다. 그러므로 이혼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더욱이 오늘날 교회지도자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이혼문제에 대해 성경적이고 균형 있는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이혼에 대한 바른 태도를 분명히 하기 위해 이런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이혼한 사람은 용서받을 수 없는가?" 용서받을 수 있다. 이혼도 죄이기 때문에 회개한다면 분명히 용서받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피가 못 씻을 죄는 없다. 간음현장에서 잡혀온 여인도 용서를 받았고(요8:1-11),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강도 한 사람도 용서를 받았다(눅23:43). 성경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다른 한편 이 문제와 연관 지어서 생각해보려는 것 하나는 성경은 여러 곳에서 (고전6:9-10;계22:15;갈5:19-21등) 많은 죄 목록을 언급하고 있다. 우상숭배, 살인, 술 취함, 방탕, 이기심, 투기, 주술, 동성애 등의 죄목들을 나열하면서 이런 죄를 짓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갈5:21)고 못 박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이 죄 목록 가운데 이혼의 죄는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을 통해 이혼을 조금이라도 두둔하려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잘못되게 이루어진 이혼은 분명 죄다. 그리고 반드시 죄로 인정하고 정죄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죄로 이루어진 이혼이 그 죄 목록에서 빠져 있음을 주목하는 이유는 사도들은 이혼을 가장 가증할 죄의 목록 안에 넣고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면에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은 이혼을 거의 첫 번째 죄 목록에 넣으려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합당치 않게 이루어진 이혼의 죄를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교회지도자들은 누구보다 이혼에 대한 성경적이고 균형 있는 바른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혼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아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에 대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마12:31). 이 말씀에서 다른 죄들은 용서받을 수 있음을 분명히 하셨다. 그렇다면 이혼의 죄도 사하심을 받는 "모든 죄"안에 들어가는 것은 자명하다.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유일한 죄는 성령을 모독하는 죄뿐이다. 이혼은 하나님이 용서하실 수 있고 실제로 용서하셨고 지금도 용서하고 계시며 앞으로도 용서하실 것이다. 따라서 교회도 목회자도 마땅히 이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2. 성경에서 말하는 이혼
결혼을 하나님의 언약과 섭리로 맺어진 남녀의 동반자 관계라고 했는데 그 언약을 파기하는 것이 이혼이다. 동반자 관계인 남편과 아내로 맺어주신 하나님의 언약과 섭리를 부인하고 깨뜨리는 것이 이혼이다. 이제는 서로가 맺은 언약을 풀어버리고 자연인의 한 남자와 한 여자로 돌아간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만일 결행되는 이혼이 원인과 과정 모두에서 성경적으로 합당하다면 두 사람은 동반자로서의 의무를 해소함으로 다른 사람과 부부 관계를 자유롭게 맺을 수 있게 된다.
(1) 신명기 24:1-4
성경에서 이혼에 대한 근거 또는 절차들을 말해 주는 최초의 유일한 구절은 신명기 24:1-4의 말씀이다.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 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보낼 것이요 그 여자는 그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 그 후부도 그를 미워하여 이혼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내었거나 혹시 그를 아내로 취한 후부가 죽었다 하자 그 여자가 이미 몸을 더럽혔은즉 그를 내어 보낸 전부가 그를 다시 아내로 취하지 말지니 이 일은 여호와 앞에 가증한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으로 너는 범죄 하게 하지 말지니라."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이혼을 요구하시지도, 권고하시지도, 심지어는 허락조차도 하시지 않으신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주된 관심은 이혼에 있지 않고 이혼을 확정해 주는데 있지도 않다. 이혼이 "여호와 앞에 가증한 것"이기 때문에, 이혼한 전처를 다시 아내로 맞아들이는 일을 금하는데 있다. 이혼을 인정은 하지만 그 이혼을 규제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이혼이 모든 경우에 묵인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 이혼의 근거는 남편이 아내에게서 "수치 되는 일"을 발견할 때다. "수치 되는 일"(דבר ץרות)의 원어적 의미는 '벌거벗음', '노출', '외설', '음란한 행위' 등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로 번역될 수 있다. 문자적으로 볼 때 "수치 되는 일"은 '벌거벗음'의 문제다. 이 말은 추하고 역겨운 혐오스런 것을 뜻하고 있다. 존 머레이(John Murray)는 "... '수치 되는 일'은 간음이나 성적으로 불결한 행위를 언급한다는 것은 보여 주는 증거는 없다. ... 우리는 '수치 되는 일'이 추한 것, 혹은 부적절한 행위를 의미한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고 했는데 이 해석에 모든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수치 되는 일"이 간음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간음에 대한 처벌은 죽음이지 이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이었는가? 이 문제에 대해 대율법사 샴마이(Shammai)와 힐렐(Hillel)간에는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율법사 샴마이는 엄격했다. 그래서 그 "수치 되는 일"을 간음 또는 난잡함에 약간 못 미치는 어떤 종류의 성적 범죄로 이해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율법사 힐렐은 온건한 편이었다. 그는 첫 번째 남편이 그 아내를 "기뻐하지 않게 된 것"(1절), 그리고 그녀의 두 번째 남편 역시 그녀를 "미워한 것"의 구절들을 들어서 예컨대 그녀가 남편을 위해 만든 음식을 슬쩍했다거나, 혹은 다투기를 좋아했다거나, 아니면 남편이 그녀보다 더 아름다운 여인을 보아서 그가 아내에게 흥미를 잃었다거나 하는 일과 같이 극히 사소한 잘못들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을 했다. 힐렐은 '남편에게 괴로움이나 당혹감을 일으키게 하는 그 어떤 일들'도 이혼의 합법적인 근거로 보았다.
그렇다면 이혼이 허용되면 재혼도 허용되어야 하는가? 그 여인이 일단 이혼증서를 받고 그 집에서 내보내지면 그녀는 이혼을 당한 사유인 "수치 되는 일"을 행한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이혼증서를 주는 이유는 버림받은 여성들의 복지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긴급조치의 성격을 띤 사항이었다. 만일 이혼증서가 없다면 그녀는 성적 노리개 감이나 몸을 파는 여인과 같은 취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손에 이 증서를 쥐어준 것이다.
모세는 그 남편이나 여인에게 이혼을 하라고 명령하거나 그들의 이혼에 합법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혼증서를 내어 주라고 한 모세의 가르침을 두고서 이미 구약시대에 이혼이 성행하였다고 주장하는 견해들이 있다. 하지만 모세가 이혼을 인정했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은 조치는 여인의 음행과 관련된 판단이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오직 배우자의 음행에 한해서 이혼을 인정하신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본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