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논란'이 사회를 떠들썩하게 달구고 있다. 프랜차이즈 업계를 비롯한 여러 기업의 회장들이 충격적인 '갑질'이 드러나 공개 사과하고 검찰의 조사를 받은지 얼마 되지 않은 가운데, '별 4개'의 한 군 장성 부부가 공관병을 상대로 한 '갑질'이 군인권센터를 통해 폭로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해당 장군의 공관병 출신 예비역 병사들의 구체적인 증언에 따르면, 이 부부의 언행은 일반 상식으로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군대'라는 조직과 '공관병'이라는 특수 보직을 감안해도 그렇다. 특히 이 군 대장 부부가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지면서, 또 다시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고 있다.

신조어 '갑질'은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상대적으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이는 신구약을 막론한 성경의 정신과 전혀 맞지 않는다. 구약과 신약은 고아와 과부, 이방인 등 대표적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배려, 그리고 힘이 아닌 정의와 공의를 시종일관 강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영원한 '갑'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베푸신 사랑과 은혜와도 무관한 행위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을', 우리와 성정이 똑같은 인간이 되게 하셔서 이 땅에 보내셨다. 육체를 입고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을'인 인류를 위해 고통당하며 자신의 육체를 찢기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렇게 우리를 구원하셨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셨다.

성경은 이렇듯 일방적이고 유례 없으며 받을 근거가 전혀 없는 하나님 사랑을 대하는 '을' 인간의 자세에 대해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마 18:21-35)'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 '1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죄인이, 푼돈인 고작 '1백 데나리온' 빌려준 이를 잡아 가둔 것에 대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옥졸들에게 넘기심으로써' 그 행위를 고발하고 있다. 이러한 '갑질'을 용납하시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은 상대가 비록 직급상 하급자 또는 연령대가 아랫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며(마 22:39)',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는 일(롬 12:10)'이어야 한다.

이 대장 부부에 대한 언론 보도 중 '불교 신자인 공관병을 교회로 데려갔다'거나 강연을 통해 '초코파이로 선교를 해야 한다'는 대목이 있었다. 선정적 언론 보도만으로 저간의 사정을 정확히 알 순 없지만, 공관병을 전도하려는 '선한 마음'이 있었다면 그런 가혹행위나 '갑질' 대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듯, 섬김과 사랑으로 그들을 대해야 했을 것이다.

기업이나 군 조직에서만 '갑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모르는 사이에 교회나 기독교 단체에도 '갑질'이 만연해 있을 수 있다. 담임목사는 부교역자 또는 교회 직원들에게, 주일학교 책임자는 일선 교사들에게, 성가대 지휘자는 대원들에게, 연합기관 대표는 직원들에게 은연중에 '갑질'을 하지 않았는지 스스로 돌아볼 때다.

특히 교회를 비롯한 기독교 각 기관에서는 일반 기업이나 공무원들보다 보수도 적고 근무 환경도 열악한 곳들이 대부분이기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이런 곳들에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자라면, '헌신'이라는 미명 하에 성도들 또는 회원들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았는지, 자신들은 받을 것을 다 받으면서 '헌신페이'를 요구하진 않았는지 점검해야 한다.

더구나 교회에서는 '을질'도 많이 일어날 수 있다. 성도들도 목회자나 교회로부터 'VIP 대우'를 받으려고만 하거나,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는 이행하지 않으려 해선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개척교회나 작은교회에서 더 많이 일어날 수 있다. 또한 예배만 드리고 교회의 제반 사역에 동참하지 않는 대형교회 속 '선데이 크리스천'들도 일종의 '을질'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 한 형제 자매일 뿐, '갑과 을'의 관계란 존재할 수 없음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YTN 캡처
(Photo : ) ▲ⓒYTN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