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개봉한 영화 <덩케르크>(Dunkirk)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0년 5월 26일부터 6월 4일까지 열흘 간 도버 해협에서 수행된 사상 최대 규모의 탈출 작전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연출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이 감독을 맡아, 개봉 전부터 관객들의 기대를 불러모았다.
개봉 후 일반 관객들은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는 반응을 보였고, 기자와 평론가 측은 전반적으로 찬사를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영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을 살펴보면, 현장감과 사실감을 극대화하면서 실화를 재현한 점, 그리고 군더더기가 전혀 없는 간결한 영화적 표현을 시도한 점을 공통적으로 높게 평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서사 연출 속에, 픽션이 선사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감동과 인간 이해를 담아낸 점이 관객과 평론가들을 매료시킨 듯 하다.
일반적인 시각으로 바라봤을 때는 전쟁의 참상이나 생존욕구, 혹은 처절한 삶의 우연성(contingency) 등이 중점적으로 부각되는 듯하다. 그러나 기독교적 시각으로는 이 작품의 이해 방식이 달라진다. 이 영화는, 최초 소개부에 등장한 배경설명 문구가 명시하는 것처럼, '구원(deliverance)'에 관련된 영화다.
물론 <덩케르크>에서 다루는 구원이라는 주제가 복음적 개념의 구원이 아님은 분명하다. 지금까지 놀란 감독이 연출한 영화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이 영화도 결말은 무신론적 관점에 경도돼 있다. 그러나 <덩케르크>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인간 이해가 아니고서는 기원을 찾을 길 없는 소재들, 즉 생존과 사멸, 희생과 회생, 우연과 필연, 그리고 구원받는 자와 구원하는 자 간의 교호적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놀란 감독이 일관되게 무신론 성향을 보이는 작품세계를 추구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삶과 죽음을 다루는 심오한 사유를 표현하는 일에 있어, 감독 자신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서구 문화의 종교적 근거인 기독교를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번 칼럼은 이런 관찰을 바탕으로 <덩케르크> 속에 표현되어 있는 구원의 주제, 특히 구원받는 자와 구원하는 자 사이에 성립되는 비참함과 숭고함의 대비에 대하여 살펴보려 한다.
◈구원과 도주: 덩케르크 해안과 다이나모 작전(Operation Dynamo)
다이나모 작전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매체에서 다룬 바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작전이 전개된 원인에 관한 간략한 설명을 덧붙이는 수준에서 설명을 마무리할 작정이다. 일단 전쟁이 개시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 40만명에 이르는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덩케르크 해안에 포위된 채 구조를 기다리는 상황에 처한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작용했다.
첫 번째 원인은 연합군, 특히 프랑스 군의 패배 속도가 예상을 뛰어넘게 빨랐다는 점이다. 1940년 5월 10일 독일-프랑스 전선에서 전투가 개시된지 불과 12일 만인 5월 22일, 이미 영국-프랑스-벨기에군은 패전에 패전을 거듭해 영국과 접한 프랑스 북부 해안의 세 개 항구도시 칼레(Calais), 불로뉴(Boulogne), 그리고 덩케르크(Dunkirk)에 고립됐다.
독일군은 연합군이 영국으로 철수하는 일을 막기 위해 우선 영국에 더 가까운 칼레와 불로뉴 항으로 진격했다. 이로써 결국 덩케르크항 한 곳에 연합군 40만이 갇히는 상황에 이르렀던 것이다.
연합군과 독일군 사이에 병력 수나 무기의 질 자체에서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병력 수나 훈련도만 따지자면 프랑스군이 독일군보다 우수했고, 비록 미숙하지만 영국 병력도 가세한 상황이라 밀릴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전격전(blitzkrieg)이라는 새로운 전술개념을 들고 진격해 오는 독일군, 특히 기갑부대의 공격을 막을 수가 없었다. 현대적 기갑전술을 창안한 하인츠 구데리안(Heinz Günther Guderian, 1888-1954)이 이끄는 독일군 기갑부대의 진격속도는 전격전(電擊: 번개)이라는 말 그대로 번개처럼 빨랐다.
독일군은 대담한 전략과 진화된 전술을 조화시켜, 병력을 유기적으로 운용하고 있었다. 반면 프랑스와 영국 군대의 운용방식은 1차 세계대전 당시 통용되던 참호전(trench war)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참호를 무시하고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독일 기갑부대와 공군전력의 유기적인 연합은 프랑스-영국 연합군에게 재앙으로 다가왔다. 연합군에 탱크와 전투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운용방식이 구식이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연전연패에 사기마저 바닥으로 떨어진 연합군의 상황을 직시한 영국 정부는, 결국 전쟁개시 후 2주가 조금 넘은 5월 26일, 사상 최대 규모의 탈출작전 감행을 결정했다.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덩케르크 해안에서 구조를 기다리게 된 두 번째 원인은 영국 해군의 사정에 있었다. 영국군이 비록 육군 전력은 형편없었지만, 해군력 만큼은 명실공히 당대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북해와 도버해협의 제해권도, 비록 불안한 면은 있었지만 영국 해군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이나모 작전이 개시된 시점의 영국 해군은 일거에 대량의 병력을 후퇴시킬 만한 선박을 확보하고 있지 못했다. 전선이 예상 외로 빠르게 넓어져 한 곳에 해군력을 집중시킬 수가 없었던 까닭이다.
1940년 5월 10일 독일군의 프랑스 침공 개시 전, 이미 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1939년 9월 1일을 기점으로 독일군은 폴란드와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침공해서 점령한 상태였고, 여기에 대응하려 영국은 스웨덴 쪽에도 병력을 전개해둔 상태였다. 이들 또한 영국 본토로 후퇴시켜야 했기 때문에 상당한 수의 해군 선박이 스웨덴 방면으로 동원된 상태였다.
게다가 프랑스의 전황이 그토록 급속하게 악화될지 몰랐던 터라, 다이나모 작전에 동원할 수 있는 해군 선박의 수가 크게 부족한 상태였다. 1주일 정도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배를 왕복시켜 대다수 병력을 철수시킬 수 있겠지만, 당장이라도 병력을 진군시키려는 모습을 보이는 독일군을 앞에 두고 많은 시간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영화 속 대사에도 나오지만, 당시 갓 영국 총리에 취임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은 하루에서 이틀 정도의 시간이 주어질 것이라 예상하고, 40만 중 3-4만명 정도만 생환이 가능하리라 예견했다. 실제로 다이나모 작전이 실행된 첫날과 둘째 날(5월 27일과 28일)에는 약 24,000명 정도를 영국 본토로 철수시키는 데 성공했을 뿐이었다.
독일 육군의 총격, 그리고 루프트바페(Luftwaffe: 독일 공군의 정식명칭)의 폭격기 공격으로 많은 수의 병력이 덩케르크 해안에서, 그리고 영국으로 향하는 해상에서 목숨을 잃고 있었다. 연합군 병사들은 바로 옆 부대원들이 하나하나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구조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를 탄다 해도 안심할 수는 없었다. U보트(Unterseeboot: 운터제보트, 독일어로 잠수함이라는 뜻)의 어뢰공격과 루프트바페의 폭격이 바다에서 배를 수장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 배경설명을 위한 텍스트 장면은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영국과 프랑스 군대는 적의 공세로 바닷가에 몰려 있다. 그들은 덩케르크에 갇힌 채 그들의 운명을 기다리고 있다. 구원을 바라면서. 기적을 바라면서."
(The enemy have driven the British and French armies to the sea.
Trapped at Dunkirk, they await their fate. Hoping for deliverance. For a miracle.)
영화는 병사들이 기다리는 것이 "deliverance"와 "miracle", 즉 구원과 기적이라는 것을 명시한다. 이처럼 영화 시작부터 이 작품은 구원을 향한 이야기라는 사실이 천명된다.
◈구원과 생존: 비천함 속의 생존
전술한 내용은 2차 세계대전사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는 이미 유명한 일이므로,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치 않을 듯 하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영화 <덩케르크>의 출발점이다. <덩케르크>는 다이나모 작전 개시일인 1940년 5월 27일, 영화의 실질적 주인공 토미(Tommy)가 텅 빈 덩케르크 시가지를 순찰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민간인은 이미 모두 피신하거나 숨은 적막한 항구도시, 어디에서 총격이 가해질지 모를 긴장된 상황에서 토미는 독일군 동향을 살피기 위해 정찰 중이다. 토미는 전장을 누비는 용사가 아니다. 10대를 벗어나지 못한 어린 나이에 제대로 된 훈련조차 받지 못하고 징집된 신병일 뿐이다. 당시 프랑스 전역에 파송된 영국 육군 병사 대부분이 어린 나이에 급하게 징집된 미숙련 병사들이었다.
덩케르크 시가지에서 토미의 분대는 기관총 공격을 받고 몰살당한다. 오직 토미만 살아남아 해변으로 도망친다. 패잔병 신세인 토미는 소속도 없이 여기저기 줄을 서며 영국으로 돌아갈 길을 찾는다. 그의 여정은 철저히 살 길을 향한 내달림이다. 토미는 특별히 남을 해치거나 계략을 동원하지는 않는다. 단지 조금 빠른 눈치로 어떻게든 남들보다 먼저 안전한 배를 타고 죽음이 기다리는 해안을 탈출하고 싶을 뿐이다.
부상병을 나르는 의무병을 최우선적으로 영국을 향하는 선박에 태운다는 것을 알아차린 토미는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부상병이 실린 들것을 들고 배에 탑승한다. 그러나 곧 의무대 소속이 아니라는 것이 발각된 듯 배에서 쫓겨난다.
온갖 고생 끝에 다음 수송선을 타지만, U보트의 어뢰 공격으로 배는 항구에서 출발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바다에 수장된다. 그는 구사일생으로 침몰하는 배에서 빠져나와 비상탈출선 뒤에 달라붙어 다시 덩케르크 해안으로 돌아온다.
다음으로 토미는 썰물 때문에 해안에 좌초되어 있는 어선을 타고 영국으로 탈출하려는 한 무리의 병사들에 합류한다. 그러나 이 배 역시 독일군의 총격으로 옆구리에 구멍이 나 바다 한가운데서 수장되고 만다. 바다에 버려지는 운명에 처한 토미는 군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영국에서 건너온 소형요트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구출된다.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고 나서야 비로소 살 길을 찾은 것이다.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토미가 보여준 생존의 몸부림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자기보존(conatus essendi) 본능을 고려할 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누구나 저 상황에 처한다면 저러지 않았을까?"라고 반문하게 만든다.
그러나 토미의 행각은 일면으로 비참하고 비굴하기까지 한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 배를 타기 위해 갖가지 방법으로 눈치를 보고 행동하는 모습은, 때로 절박하다 못해 비겁해 보이기까지 한다.
영화의 실질적 주인공은 토미이지만, 이 외에도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무게감 있게 얽혀 있어 딱히 누구를 주인공이라 내세우기 쉽지 않다. <덩케르크>의 서사적 시선은 인물 하나하나의 사연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순간 확인되는 익명적 인간군상의 다채로움에 집중되어 있다.
그 가운데서 구원을 '받는' 자들의 모습은 한결같이 절박하고 음울하다. <덩케르크> 속 구조받는 자들의 편만 바라본다면, 삶의 올바른 가치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저 죽지 않고 억척같이 살아남는 것만이 유일하게 허락된 삶의 목적인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구조를 받은 병사들 중에는 상대적으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으면서도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 이(킬리언 머피 분)도 있다. 이 병사는 자신을 구해 준 요트가 덩케르크 해안으로 가서 더 많은 병사들을 구조해 오려 하자, 배를 영국으로 돌리라고 협박하기까지 한다. 이 병사에게 이름조차 부여되지 않은 것은 모든 사람이 절박한 상황에 처한다면 그와 같은 모습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 때문일지도 모른다.
◈구원과 실존: 자기 보존의 본능과 본유적인 죄성
프랑스 철학자이자 윤리학자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자기 존재(l'existence)에 대한 집착을 죄성의 근원으로 보았다. 그는 존재에 대한 집착이 타인의 생명에 대한 본원적 위협이라 규정하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자신이 본유적으로 지니고 있는 죄성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비나스의 현상학적 윤리학(phenomenological ethics)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타자(l'autre)의 생명을 돌아봐야 할 책임은 사회적으로 부여받은 것이 아니다. 타자의 생명에 대한 책임은 삶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죄성 때문에 사람이 무조건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빚, 즉 채무다.
레비나스가 이처럼 사람의 실존을 철저히 윤리적 책임(특히 죄책)의 관점으로 보게 된 데는 삶의 경험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레비나스는 유대계 프랑스인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국가사회주의(Nazism)의 직접적인 피해자였던 인물이다.
1940년 6월 독일군이 불과 두 달이 못 되어 프랑스 수도 파리를 비롯한 전 지역을 점령했을 때, 레비나스는 프랑스군에 입대해 통역 일을 맡고 있었다.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혔던 그는 유대계 혈통이라는 이유로 독일 하노버에 위치한 유대인 수용소에 5년간 수감됐으며, 그의 가족들은 모두 나치당원들에게 살해당했다.
그는 수용소 생활 5년간 그의 철학을 정리했다. 유대인의 혈통을 따라 계승한 토라(תּוֹרָה)의 가르침, 그리고 전쟁 발생 전 독일 유학 당시 같은 유대계 철학자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에게서 배운 현상학(phenomenology)을 종합해, 타자 현상학(phenomenology of the other) 혹은 타자 윤리학이라 호명되는 그만의 고유한 실존 이해를 정립했다.
그의 사상은 당연하게도 일차적으로는 국가사회주의와 독일군을 지탄하는 입장에서 기술되었다. 그러나 그는 전쟁 중 프랑스인들 사이, 연합군 사이, 그리고 전쟁에 휩쓸린 모든 사람들 사이에 충돌하고 있는 자기 보존의 본능, 자기 존재에의 집착을 목격했다. 레비나스 철학의 일차적 지탄 대상이 독일의 국가사회주의였다면, 그 이차적 폭로의 대상 혹은 궁극적 비판 대상은 전 인류의 자기 보존 본능이었던 것이다.
레비나스는 당연히 다이나모 작전에 대해 알고 있었다. 본인이 프랑스 병사로 징집됐던 당시 벌어진 초대형 사건이니, 모를래야 모를 수 없었다. 1940년이면 아직 그의 철학이 원숙기에 들어선 단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그의 눈에 덩케르크 해변의 풍경은 어떤 모습으로 비쳐졌을까?
당연히 인세의 지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40만에 이르는 연합군을 포위해 사냥하듯 숫자를 줄여가고 있는 독일군은 말할 것도 없었다. 여기에 더해 영화에 등장한 토미처럼 혹은 이름없는 병사처럼 자기 목숨만을 챙기는 데 여념이 없는 수많은 연합군 병사들의 괴멸적 군중심리는 레비나스의 눈에 사람의 죄성의 집약체로 보였을 것이다.
놀란 감독이 <덩케르크> 제작을 마치고 런던에서 시사회를 열 때, 실제 다이나모 작전으로 구출된 참전용사 30여 명을 영화에 초대한 바 있다. 이제 나이가 90대 중반에 이른 분들인데, 모두 지극히 사실적인 표현에 감탄했다고 한다. 직접 현장에 있었던 참전용사들의 평가가 이 정도라면, 영화 속에 표현된 당시 연합군 병사들 간의 생존경쟁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라 볼 수 있다. 현실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구원받을 자격: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
영화 <덩케르크>를 이야기하면서 레비나스의 일화를 언급한 이유는, 단지 그가 2차대전의 참상을 몸소 겪어낸 인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그의 사상이 기독교의 관점으로 본 원죄와 실존의 관계를 적절하게 해명하고 있는 점이다.
단지 살아보려 했을 뿐인데 그것이 죄를 낳는 현상, 이것은 원죄에서 해방되지 못한 사람의 일상적 모습이다. 1940년 5월의 덩케르크 해안은 이 일상적 모습이 민낯 그대로 가감없이 드러났을 뿐이다. 살기 위해 죄를 가중시키는 행태, 이것이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특히 부정적인 관점으로 본 덩케르크의 본모습이다.
놀란 감독은 이것과 다른 시선으로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삶에 대한 집착 그 자체를 죄악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날의 일은 전쟁이라는 재앙을 앞에 두고 모두가 겪을 수밖에 없었던 불행의 일부였을 뿐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군인들을 살리기 위해 전투 현장으로 배를 모는 소형요트 선장의 대사는 감독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른들이 일으킨 전쟁에, 왜 아이들들을 총알받이로 내몰아야 하지?"
(Men my age dictate this war. Why should we be allowed to send our children to fight it?)
자막이 다소 의역된 감은 있지만, 그 의미는 제대로 전달되고 있다. 애초 전쟁을 일으킨 이들이 원흉이지, 해안에서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는 이들이 죄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구함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놀란 감독의 해석 역시 기독교적 인간 이해에 기반을 두고 있다. 죄를 짓는 것은 사람이지만, 죄의 뿌리는 죄 그 자체라는 기독교적 가르침이 놀란 감독의 주장에 반영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레비나스의 시각으로 본 덩케르크 해안의 참상은 사람의 부정적 모습을 폭로하는 시각을 대변한다. 반면 놀란 감독의 눈으로 본 덩케르크 해안의 비극은 그런 부정적인 모습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악으로 고통받는 피해자를 조명하는 데 여념이 없다.
종합해 보면, 이렇든 저렇든 그들은 구조받아 마땅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죽음에 내몰린 병사들이 생존을 위해 내보이는 비천하고 구차한 모습은, 역으로 그들에게 그 무너진 현실로부터 탈출해야 할 책임을 상기시켜 준다. 반면 그들이 그런 상황에 내몰린 것이 원래 그들 자신의 잘못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들은 누군가에 의해 구함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그들은 가해자이기 전에 피해자이며, 구제돼야 할 대상임에 분명하다.
<덩케르크>에서는 구원받는 자들뿐 아니라 구원하는 자들의 이야기도 중점적으로 조명되고 있다. 그들의 희생적 숭고함은 덩케르크 해안의 참상에 대비돼, 몇 배 더 고결한 모습으로 비쳐진다. 사선(死線)에 선 군인들은 죄성에 사로잡힌 가해자인 동시에 그렇게 죄성에 사로잡히도록 내몰린 피해자다. 이 가련한 처지로 인해 구원의 자격은 충분하게 확보된다. 그리고 이처럼 구원의 정당성이 명확히 제시되었기 때문에 병사들을 구원하는 자들의 이야기가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놀란 감독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덩케르크>는 기독교적 관점으로 볼 때 구원을 받아야 할 자들의 자격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이는 영화에서 더 중요하게 다뤄지는 내용, 즉 구원하는 자들의 이야기를 조명하기 위한 전제가 되고 있다.
과연 <덩케르크>는 어떤 방식으로 구원하는 자들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가? 이 구원자들이 죄악으로 점철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부여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신 분들은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