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기름부음
황의찬 | CLC | 328쪽 | 16,000원
훌륭한 발판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를 여러가지 관점에서도 분류할 수 있겠지만, 늘 빠지지 않고 분류되는 관점 중 하나가 바로 '은사주의'와 '비은사주의'일 것이다. 물론 비은사주의라 불리는 사람도 성령의 역사하심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은사들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둘의 차이는 '성령세례'와 같은 세밀한 부분에서 차이가 나타나는데, 점점 그 간격은 넓어진다.
본서(논문)의 저자는 신사도주의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기름부음'이라는 용어에 대한 호기심에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힌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결론을 말하자면, 본서는 신사도주의자들이 사용하는 '기름부음'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일반 성경의 순서에 따른 '기름부음'에 관한 개괄적 연구를 하게 됐다.
기름
'기름'은 성경 안에서 '피'와 함께 동전의 양면처럼 짝을 이루는 주제이다. 제사를 드릴 때 제단에 피를 붓지만, 하나님의 직분자를 세울 때는 그 머리 위에서부터 기름을 붓는다. 피가 생명을 의미하는 것처럼, 모든 생명체는 기름이 소진되면 그 생을 마감한다. 즉 피는 기름의 에너지를 통해 그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 동안 '피'에 대해서는 신학적 연구가 많이 돼 있었지만, '기름'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진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서는 '기름'이라는 주제에 대한 연구의 시작점이라는 것에 의의가 있다.
2장에서는 '구약의 기름', '기름부음', '기름부음 받은 자'에 대한 내용들을 개괄적으로 다룬다. 구약에서 나오는 기름은 제물로 드리는 기름, 축복으로 받는 기름,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하는 기름이 설명된다. 기름부음은 구약에서 어떤 명료한 패턴을 가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기름부음과 기름부음 받은 자에 대한 성별적 인식들이 정리되어진다.
3장에서는 '이스라엘의 메시아 사상'에 대해 살핀다. 사실 일반적으로 최초의 메시아 사상이 등장하는 구절로 창세기 3장 15절을 언급하지만, 그것은 후대의 관주적 해석에 근거한다. 실제로 메시아 사상의 전조는 주전 586년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기 직전 태동됐다. 그리고 메시아사상이 구체적으로 발전되기 시작한 때가 주전 3세기라는 데 학자들은 일치된 견해를 보인다.
여기서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이 시기 묵시적 성경과 영적 세계(천사와 마귀)에 대한 내용들이 성경과 신앙의 관심 주제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동안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자로서의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개념은, 초월적 구원자의 의미로 확장되면서 메시아 사상이 정립된다.
4장과 6장에서는 신약성경의 기름부음과 예수 그리스도, 초대교회 이후의 기름부음에 관해 다룬다. 5장은 성경적 기름부음에 대한 신학적 고찰을 하면서, 기름부음에 대한 전체적 개념을 성경의 연대기와 문화적 관점에서 조망한다. 7장은 성경적 기름부음의 목회 적용에 관하여 살피고 있다.
능력 대 이적과 표적
본서는 기름부음에 대한 메시아적 관점의 연구서이다. 그동안 '피'를 중심으로 메시아에 대한 연구가 주류를 이루었던 점에서, '기름'을 중심으로 메시아를 연구한 것은 신선한 출발의 신호탄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럼에도 오늘날 목회의 현장에서는 신사도주의에 영향을 받은 자들이 '보혈', '기름부음'이라는 용어들을 자주, 그리고 아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과거 구약의 제사장, 선지자, 왕과 같은 자들이 기름부음으로 세워졌고, 기름부음을 통해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임하였던 것을 현대적으로 '성령의 기름부음'이라 이해하고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적과 표적을 믿는 것을 넘어 이것들을 추구하는 것이 '큰 믿음'이라고 생각하며, 이러한 이적과 표적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신앙인들이 과연 성령을 받았는지(성령세례)를 의심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사실 성령세례의 부분은 아직 신학적 논의 중에 있으며, 다양한 관점들이 건전한 교단 안에서 각각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신사도주의자들 중에서 일부가 주장하는 방언이나 각각의 은사주의적 이적들을 통해 그 사람의 구원이나, 믿음의 정도를 규정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신약에서 성령의 기름부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적 사역을 이어가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성령)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게 '표적'과 '이적'을 요구한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 그리고 유대인들에 대해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을 언급하시면서, 이적과 표적을 요구한 자들에 대해 악하다고 꾸짖으셨다.
그러므로 '이적'과 '표적'은 기름부음(믿음)의 척도가 아니다. 분명 성령의 기름부음 안에는 '이적'과 '표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리처드 A. 브릿지가 언급하였듯, 신약성경에서 '이적'과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벗어난 악한 자들의 요구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이적'과 '표적'을 행하신 것이 아니라 '두나미스(능력)'를 행하셨다. 그 능력은 이적이나 표적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으로, '사랑'을 나타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만족적이고 자기성취적인 일부 신사도주의자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선물인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병을 치유받거나 경제적 회복이나 기적적 기도의 응답을 기대하면서 자기 목적과 자기 비전의 성취에 치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인정할지는 모르겠으나 결국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자기중심적 신앙인들이므로, 어쩌면 본서는 그들에게 더 유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은 기름부음(성령)을 권세, 능력 등으로 보기 전에, 먼저 기름부음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메시아는 자신의 비전과 목적을 성취하는 방편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능력이다.
결론
본서에 대해 필자는 두 가지 평가를 하고자 한다. 첫째 기름부음에 대한 연구로서는 대환영이다. 성경에서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름은 성령의 임재와 권능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기름에 관한 연구와 이해가 다각도에서 이뤄지는 출발점으로서 본서를 환영한다(다만 기름부음이 메시아 사상으로 이어진 것은 레이몬드 E. 브라운의 훌륭한 글에 예속돼 버린 것으로서 전체적으로 아쉬움을 남긴다. 머리말 내용처럼 신사도주의와 그에 반하는 은사에 대한 사도시대 종결주의자들에 대해 다루었다면 어느 쪽이든 비판을 받았겠지만 훨씬 다이나믹했을 것이다).
두 번째는 문자 중심적 전개이다. 이 부분은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회에서 갖는 성경 해석의 한계로서 극복해야 할 과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좀 더 깊이 있게 역사와 문화, 사회 등의 인문적 연구를 접목하여 연구가 되지 못한 것과 개신교 외 주변종교(성공회, 동방교회, 이슬람 등)의 관점과 견해들을 살피지 않은 것이 아쉽다(5장과 6장에서 시대적 특징과 로마가톨릭에 대해 아주 잠깐 언급되고는 있으나, 내용은 매우 형식적이다).
물론 한국적 상황에서 고대 히브리와 그 주변 문헌(증거자료), 이러한 주제에 관한 체계적인 인문학적 자료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며, 학위 논문이라는 한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본 연구는 시도가 매우 참신한 것으로서 그리스도교의 기름부음(메시아)에 관한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 준다. 본서가 앞으로 기름부음에 관한 연구의 밑거름이 되어, 메시아에 관한 부분뿐 아니라 더욱 넓은 스펙트럼에서 활발히 연구가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강도헌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운영자, 제자삼는교회 담임, 프쉬케치유상담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