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힘’을 강조하는 죠엘 오스틴목사님 설교예화 중에서, 어떤 부인이 남편에게 물었답니다. “당신은 나의 쾌할한 성격 때문에 나를 좋아해요? 아니면 나의 미모나 학벌, 배경 때문에 나를 좋아하는가요?” 그러자 남편은 “나는 바로 당신의 그런 풍부한 상상력 때문에 좋아한다”고 대답했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은혜 중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어려움과 고난, 그리고 힘든 장애를 극복할 수 있게 ‘우리의 마음’을 지켜주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 사역을 하다보면 많은 장애인을 만나고 어려운 상황을 듣게 됩니다. 장애로 인해 발생되는 어려움은 일반인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많습니다. 제가 겪었던 어려움은 고등학생시절(한국에서) 계단과 시설부족으로 하루 종일 화장실을 가지 못한 것입니다. 아침 수업부터 저녁수업이 끝날 때까지 3년 동안 겨우 몇 번 가게된 것 이외에는 화장실 가는 일을 참아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저만의 경험이 아니고 모든 휠체어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이었습니다. 한국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장애인으로 사는 삶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특히, 이민자로서 장애인 삶을 사는 것은 일반 이민자 어려움의 몇 배를 겪어야 합니다.
한 번은 어느 장애인을 만났는데,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막 한국에서 미국에 온 것 같았고, 자신은 모든 것이 잘 된다는 신념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러가지 계획들을 나열하며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좀 더 오래 살아 온 제가 볼 때는, 그 계획들을 이루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 보이는 데 쉽게,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장애도 있고 재정적인 문제도 쉽지 않은데 어떻게 가능한가?”하고 물었더니 ‘인생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긍적적으로 풀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는가’물었더니, 아직 안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은 모든 것을 긍적적으로 보고,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장애의 극복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넘을 수 있는 문제의 것이 아닙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장애라는 문제는 결코 ‘장난’이 아닙니다. 이것은 죽느냐 사느냐의 너무도 어렵고 큰 싸움인 것입니다. 그저 느낌으로 ‘이길 수 있어, 한번 부딪쳐 봐야지’ 정도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을 걸고 죽움을 각오하는 싸움이 필요합니다. 한 예로, 3년 동안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화장실 한 번도 가지 못하고 공부하면서 일반학생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서 대학에 들어가는 일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 고난과 어려움, 그로인한 정신적 좌절은 사실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것이 아닙니다. 저는 후배 장애인 분들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너의 장애상태로는 현실적으로 절대 불가능하다. 할 수 있다는 망상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 너와 그리고 가족과 친구를 덜 힘들게 하는 것이다.”, “장애인 문제는 네가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의 어려움이 아니야. 너 힘으로는 100퍼센트 실패한다.”, “그러나 한 가지 유일한 방법이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가능하다. 이기려면 너 힘이 아니라 하나님 힘으로 싸우라!”
사실 장애를 가진 사람 중에 현명한 사람은 현실 상황을 보고 미리 포기합니다. 경쟁 사회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남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머리가 좋고 계산이 빠른 장애인은 미리 포기하고 좌절합니다. 모든 장애인은 골리앗과 같은 거대한 장애문제 앞에서 두려워 떨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골리앗은 당대 최고 장수요 최고 힘을 가진 거인입니다. 이와 같이 골리앗 공포증 앞에서 저희 장애인 현실은 메뚜기와 같은 나약하고 힘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이것은 상대가 되는 싸움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한 계산이 아닙니다. 아직 계산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능력입니다. 지금 하나님 능력이 Available합니다. 믿음으로 사용가능합니다. 왜 그 중요한 힘을 계산에 넣지 않고 미리 결론을 내립니까? 그것은 잘못된 계산입니다.
누구 말처럼 ‘내가 최선을 다 했는데, 안되면 말구’는 잘못된 계산입니다. 하나님 능력은 지금 바로 사용가능합니다. ‘나의 최선’은 100퍼센트 실패입니다. 골리앗과 같이 우리를 쓰러뜨리려는 이 위협적인 장애는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닙니다. 지금 바로 하나님 능력을 사용하셔야 합니다. 그것만이 장애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운데 장애를 허락하신 이유는 그 장애에 눌려 고통가운데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 장애를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사실 장애라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장애는 없는 것이 더 좋습니다. 왜 장애를 입어서 당사자는 사서 고생을 하고 주위 분을 힘들게 도와야 됩니까? 어떤 사람은 ‘장애’자체를 사랑한다고 하는데, 장애는 아담의 ‘죄의 댓가’일 뿐입니다. 장애는 그 자체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능력으로 극복돼야 하는 것입니다. 이 장애는 그 자체를 자랑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 즉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요 9:3)로 사용하기 위한 것입니다. 장애인은 노래연습을 안하고 막 불러도 은혜가 된다는 것은 장애에 대한 잘못된 이해입니다.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 희아 자매처럼, 비록 네 손가락이지만 믿음 가운데 열심히 연습해, 열 손가락가진 사람 못지않게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때, 장애는 극복되어 지는 것이고, 하나님 영광은 드러나는 것입니다.
장애는 우리 힘만으로는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 능력은 더욱 강하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 능력을 힘입고 장애(나약함)를 정복하며, 나약함을 통해 더욱 강하게 역사하는 하나님 능력을 이제는 오히려 세상을 향해 더욱 강력한 빛으로 비추기를 기도드립니다.
장애인 사역을 하다보면 많은 장애인을 만나고 어려운 상황을 듣게 됩니다. 장애로 인해 발생되는 어려움은 일반인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많습니다. 제가 겪었던 어려움은 고등학생시절(한국에서) 계단과 시설부족으로 하루 종일 화장실을 가지 못한 것입니다. 아침 수업부터 저녁수업이 끝날 때까지 3년 동안 겨우 몇 번 가게된 것 이외에는 화장실 가는 일을 참아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저만의 경험이 아니고 모든 휠체어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이었습니다. 한국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장애인으로 사는 삶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특히, 이민자로서 장애인 삶을 사는 것은 일반 이민자 어려움의 몇 배를 겪어야 합니다.
한 번은 어느 장애인을 만났는데,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막 한국에서 미국에 온 것 같았고, 자신은 모든 것이 잘 된다는 신념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러가지 계획들을 나열하며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좀 더 오래 살아 온 제가 볼 때는, 그 계획들을 이루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 보이는 데 쉽게,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장애도 있고 재정적인 문제도 쉽지 않은데 어떻게 가능한가?”하고 물었더니 ‘인생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긍적적으로 풀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는가’물었더니, 아직 안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은 모든 것을 긍적적으로 보고,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장애의 극복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넘을 수 있는 문제의 것이 아닙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장애라는 문제는 결코 ‘장난’이 아닙니다. 이것은 죽느냐 사느냐의 너무도 어렵고 큰 싸움인 것입니다. 그저 느낌으로 ‘이길 수 있어, 한번 부딪쳐 봐야지’ 정도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을 걸고 죽움을 각오하는 싸움이 필요합니다. 한 예로, 3년 동안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화장실 한 번도 가지 못하고 공부하면서 일반학생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서 대학에 들어가는 일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 고난과 어려움, 그로인한 정신적 좌절은 사실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것이 아닙니다. 저는 후배 장애인 분들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너의 장애상태로는 현실적으로 절대 불가능하다. 할 수 있다는 망상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 너와 그리고 가족과 친구를 덜 힘들게 하는 것이다.”, “장애인 문제는 네가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의 어려움이 아니야. 너 힘으로는 100퍼센트 실패한다.”, “그러나 한 가지 유일한 방법이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가능하다. 이기려면 너 힘이 아니라 하나님 힘으로 싸우라!”
사실 장애를 가진 사람 중에 현명한 사람은 현실 상황을 보고 미리 포기합니다. 경쟁 사회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남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머리가 좋고 계산이 빠른 장애인은 미리 포기하고 좌절합니다. 모든 장애인은 골리앗과 같은 거대한 장애문제 앞에서 두려워 떨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골리앗은 당대 최고 장수요 최고 힘을 가진 거인입니다. 이와 같이 골리앗 공포증 앞에서 저희 장애인 현실은 메뚜기와 같은 나약하고 힘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이것은 상대가 되는 싸움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한 계산이 아닙니다. 아직 계산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능력입니다. 지금 하나님 능력이 Available합니다. 믿음으로 사용가능합니다. 왜 그 중요한 힘을 계산에 넣지 않고 미리 결론을 내립니까? 그것은 잘못된 계산입니다.
누구 말처럼 ‘내가 최선을 다 했는데, 안되면 말구’는 잘못된 계산입니다. 하나님 능력은 지금 바로 사용가능합니다. ‘나의 최선’은 100퍼센트 실패입니다. 골리앗과 같이 우리를 쓰러뜨리려는 이 위협적인 장애는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닙니다. 지금 바로 하나님 능력을 사용하셔야 합니다. 그것만이 장애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운데 장애를 허락하신 이유는 그 장애에 눌려 고통가운데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 장애를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사실 장애라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장애는 없는 것이 더 좋습니다. 왜 장애를 입어서 당사자는 사서 고생을 하고 주위 분을 힘들게 도와야 됩니까? 어떤 사람은 ‘장애’자체를 사랑한다고 하는데, 장애는 아담의 ‘죄의 댓가’일 뿐입니다. 장애는 그 자체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능력으로 극복돼야 하는 것입니다. 이 장애는 그 자체를 자랑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 즉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요 9:3)로 사용하기 위한 것입니다. 장애인은 노래연습을 안하고 막 불러도 은혜가 된다는 것은 장애에 대한 잘못된 이해입니다.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 희아 자매처럼, 비록 네 손가락이지만 믿음 가운데 열심히 연습해, 열 손가락가진 사람 못지않게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때, 장애는 극복되어 지는 것이고, 하나님 영광은 드러나는 것입니다.
장애는 우리 힘만으로는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 능력은 더욱 강하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 능력을 힘입고 장애(나약함)를 정복하며, 나약함을 통해 더욱 강하게 역사하는 하나님 능력을 이제는 오히려 세상을 향해 더욱 강력한 빛으로 비추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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