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교리문답
마르틴 루터 | 최주훈 역 | 복있는사람 | 373쪽 | 18,000원
서론
"교리문답서가 나온 이유? 태만한 목사와 설교자들 때문." 이 책을 손에 든 순간, 서문부터 필자의 심장을 쫄깃하게 했다. 위대한 신학자 루터가 교회를 위해 쓴 대교리문답이 바로 이런 사람들 때문에 쓰여졌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탄생하게 된 첫 대상은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그가 전했던 설교를 보완하여 개신교의 핵심 가치와 신앙의 기둥을 세우고자 함이었다.
1517년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 루터는 작센 지역에 있는 여러 교회들을 시찰하게 된다. 교회 안에는 기독교 사상과 복음을 왜곡하고 오용하여 방종에 빠진 목회자들이 많이 있었고, 성직자라 할 수 없을 만큼 도덕적으로 해이하고 권력에 아부하며 사는 자들도 있었다.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 받았지만 세상의 종이 되어, 교회에서 마땅히 행해야 할 기본적인 가르침과 설교들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교회도 약해져가고 성도도 구별이 없어져 가며 성직자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루터는 성도와 목회자의 재교육을 위해 기독교의 기본적인 다섯 가지 기둥을 바르게 세워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한다. 이는 십계명과 신조와 주기도, 세례와 성만찬으로, 주님께서 이것들을 제정하신 이유와 목적, 그리고 이것들의 의미와 효력을 문답식으로 풀어간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는 지금까지 보았던 교리문답과는 다른 느낌이다. 왜냐하면 우선 이 문답이 설교체이며, 그 언어와 강도 또한 직설적이고 도발적이기 때문이다.
오직 성경
그러나 필자는 이 문답서를 찔리면서, 때로는 흥미롭게 읽으면서 루터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우선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그는 책 전체에서 '말씀의 능력(Only Bible)'을 지속적으로 들려준다. 당시 하나님의 말씀을 장신구로 여기고 인생의 달콤한 교훈 정도로 우습게 취급하는 세태 속에서, 그는 말씀은 악마를 공격하는 불화살이고 심각한 질병을 고치는 해독제요 치료제라 한다.
또한 이것은 일용할 양식과 같아서 매일 우리에게 닥치는 시련과 위험과 유혹에 맞서 당당히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루터는 우리를 공격하는 사탄과 육체의 욕망과 세상의 권세 앞에서 말씀의 검으로 이길 것을 권면하고, 또한 마음 중심에는 항상 말씀이 새겨져 있어야 한다고 한다. 당시 배경을 보면, 교회에 말씀이 자유롭게 허락됐음에도, 그는 이 진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에 심각한 위기를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기도와 세례나 성찬에 있어서도 말씀 자체를 강조한다. 인간의 조건과 거룩함으로 은혜를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태와 상관없이 그 자체가 주님의 말씀이고 명령이기에 가치와 효력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또한 시대의 아들이고 어느 시대나 그 이론이 나오는 배경(직통계시와 재세례파에 대항하여)과 한계가 있기에, 세례시 사용되는 물에 말씀이 담겨 있어 분리될 수 없다거나 성찬시 사용되는 떡과 포도주에도 말씀이 함께하고 있다는 내용은 지나친 성경론 같았다.
하지만 그는 말씀이 우리의 어두운 것을 드러내 고치고, 살려내 거룩하게 하는 능력에 초점을 맞춘다. 목회자는 이 진리 연구에 힘써야 하고 이것으로 교회를 지켜내야 한다고 권면하며, 그 일에 수고하지 않는 목회자는 개집이나 지켜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또한 성도들도 말씀을 입에 두고 암송하고 묵상하여 진리의 사람이 되기를 힘쓰기를 격려하고, 교회는 장소와 시간과 인원과 모든 순서를 말씀의 능력이 밝히 드러나도록 구성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처럼 그는 말씀의 능력을 대교리문답 전체에 녹여놓았다.
조화-구원과 사회적 책임
그리고 두 번째 특징으로 '조화-구원과 사회적 책임(from law to gospel)'이 있다. 루터는 말씀의 절대성과 우위성을 강조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종교개혁 후에도 여전히 개혁되지 못하고 있는 교회의 현실과 타락하고 무능한 성직자, 무지한 채 살아가는 성도들 때문이다. 이제는 교회가 교황의 독재 밑에서 벗어났지만, 또 다른 여러 교황이 교회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루터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교회에서 오직 말씀으로 깃발을 들어야만 했다.
그런데 필자가 대교리문답을 보며 놀라웠던 사실은, 왜곡된 율법으로부터의 구원과 교황으로부터의 해방이, 개인의 구원으로만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이 허락하신 계명을 지킬 수 없는 인간의 무능 앞에서, 신조를 통해 인간에게 부여하신 하나님의 의와 사랑과 손길을 연결시킨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어 하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개인 구원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것과 함께 대교리문답에는 정부와 사회와 연약한 자를 향한 구원의 소식도 많이 포함돼 있다. 교회와 국가에서 복음의 정신에 입각하지 못한 채,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고 사적 이익을 위해 사는 자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한다. 또한 사회적인 힘이 없어 소외돼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긍휼이 있음을 증거하고, 교회는 그런 자들의 편을 들어야 한다고 가르쳐준다.
그렇다고 루터가 국가와 권세자를 향해 비판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교회나 국가에 위임된 권세와 권한을 인정하고, 일반인들에게 그들을 마땅히 존경해야 한다고 권면한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순종은 거부하고,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권력에 순종하는 것이라 한다. 이로 볼 때 루터의 '율법에서 복음으로의 정신'이 개인에게만 국한된다고 지금까지 여겨왔던 것은, 교회의 오해였고 서구적 사고의 한계였던 것 같다. 지금이라도 대교리문답을 통해 율법에서 복음으로의 고귀한 가치가 드러났으니, 이를 통해 더 심도 있는 연구도 있게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해 보게 된다.
▲독일 드레스덴에 있는 마틴 루터의 동상. |
윤리적 실천
세 번째로 루터는 이 책에서 '윤리적 실천(from gospel to prayer)'을 폭넓게 강조하는데, 이게 믿음이자 거룩이라고 한다.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 사도는 우리에게 온전한 믿음을 알려줬는데, 우리가 알다시피 루터는 이 서신을 향해 '지푸라기 서신'이라 했다 한다. 그러나 과연 그게 사실인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물론 그 말이 공로사상에 저항하는 배경에서 나왔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그의 실천적 명령이 그것(지푸라기)을 반격하는 것 같았다.
루터는 사막이나 산 속에서 은둔하여 영성을 훈련하는 수도원보다 일상의 삶을 더 거룩하게 여기고 있다. 부모님께 순종하는 자가 어떤 수도사보다 훌륭하다고 하는가 하면, 집안일에 성실한 종이 어떤 사제보다 거룩하다고까지 한다. 또한 주어진 일에 충성하고 정직하며 속이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으며 이웃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 참된 경건이며 하나님께 복을 받는 길이라고 한다.
또한 국가와 정부의 권세를 가진 자가 양심적으로 다스리도록 도와주는 것이 신앙인의 기본 자세이고, 힘 있는 자에게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힘 없는 자의 손을 잡아주라고 한다. 이렇듯 그의 실천적 명령은 전방위적이고, 지속적으로 약자 편에 서는 것이 거룩한 일이라고 한다. 또한 루터는 이 모든 실천을 위해 하나님께 호소하는 기도의 자리로까지 인도한다. 절박하고 급박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우리의 합당한 필요까지 채워지도록 우리를 위해 구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루터는 주기도까지 연결시키며 복음이 실천되기까지 힘쓰라고 한다. 기도의 능력을 가볍고 우습게 여기지 말고, 힘을 내서 복음의 운동을 위해 외치라 한다. 기도는 요행을 바라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표현이니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까지 심어준다. 그러면 우리 삶에 복음이 실제적으로 역사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약한 기도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기도는 어떤 악마도 물리치고 시험과 시련도 이겨서 복음의 승리를 이루는 것이다.
결론: from gosepl to prayer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독일에서 루터를 전공한 저자의 말에 의하면, 루터가 살았던 시대와 현재 우리의 상황과 교회의 모습이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그런 시대 속에서 오늘 우리에게 개신교 최초의 문답서이고 칼빈의 <기독교 강요>의 기본 틀을 제공하며, 다른 신앙고백서에도 기초가 됐던 이 책이 출판된 것은 의미 있는 사건이다. 루터도 말하길 자신의 저서 중에서 가장 남기고 싶은 세 권 중 하나가 이것이라고 하니, 그 16세기의 책을 지금 21세기의 언어로 읽는다는 것이 감격이기도 했다.
오늘날 루터 또는 종교개혁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이 '이신칭의' 교리이다. 그러나 대교리문답은 거기에 국한되지 않았고, 하나님의 구원을 그것으로 축소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개신교 신학의 핵심을 설명하며 전방위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도록 그는 강력하게 외치고 있었고, 우리의 일상과 도덕을 거룩한 예배로 승격시키고 있었다. 또한 교회는 복음과 말씀이 하나님이 세운 성직자를 통해 멈추지 않고 강물처럼 흘러가는 생명의 근원지여야 한다고 한다.
그동안 서구화된 신학을 전수받은 한국교회는 개신교 신앙을 교회 안에 가두어 왔고, 한국적 맥락 속에서 교회와 사회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교단 간에 불필요한 논쟁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개신교는 교회를 넘어 사회, 국가, 문화, 교육, 정치, 경제 등 모든 영역에 적실성 있는 진리를 제시하며 거룩을 이루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을 맞이한 이 시점에서 한국교회가 루터와 이 책을 통해 온전한 진리를 잘 계승하고 역동적인 개혁의 정신을 재조명하여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사상을 잘 이어가기를 소망해 본다.
방영민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열린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