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생각에서 좋은 행동이 나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생각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뭣인가를 해야 할 때, "자지 말고 10분만 눈만 감고 있어야지"라고 다짐합니다. 그런데 깨면 아침이 됩니다. 반면에 불면증으로 고생할 때,"자야지"하지만, 더 잠이 오지 않습니다. 이 말은 생각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맹인을 고치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나병환자를 고치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 생각나는 것은? "예수님은 능력이 대단하시구나, 기적을 행 하시는구나" 이런 것만 생각한다면 건강하지 않은 것입니다. "기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본인도 기쁘지만, 가족들도 참 기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이런 생각이 든다면, 그의 태도는 건강한 것입니다. 사람이나 사건을 보고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생각과 좋은 행동의 뿌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은 기뻐할 줄 모르는 병든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병자를 고쳤다하면 기뻐해야 하는데 심각하게 "안식일에 고쳤네. 안식일을 어겼네."라고 인식을 했습니다. 이런 태도가 병든 생각과 병든 행동을 이끄는 것입니다. 성경은 기도하라, 생각하라, 행 하라를 말하기 이전에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말씀합니다.
하나님도 창조를 마치신 후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기뻐하셨다는 말입니다. 이렇듯 대상을 바라보고 기뻐하는 것이 능력입니다. 어떤 일을 못하더라도 기뻐해 줄 수 있는 것은 큰 도움이 됩니다. 어렵고 힘든 일에 기꺼이 돕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인은 같이 돕지 못했어도 그런 사역을 하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새벽기도를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새벽 기도하는 것을 기뻐해 줍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의 믿음의 본질이 있습니다.
그것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을 했다, 무엇을 이루었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바라보고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장차 올 메시야를 바라보고 기뻐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나 믿으면서도 심각한 사람이 있습니다. 비판하고 공격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가 부흥했다 하면 알아보지도 않고, 나쁜 가능성을 상상합니다. 불신자들이 많이 돌아왔다고 해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기뻐할 수 없는 것은 병든 것입니다. 그리고 기뻐할 수 없으면 그 어떤 것도 복이 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