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는 5가지 증거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이를 이제는 인간의 학문과 지식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를들어 과학자들은 과학 이론에 창조주가 존재함을 가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창조주의 부재를 증명할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과학적인 사실의 타당한 결론이 창조주 이어야 함을 인정합니다. 많은 분들이 관념적으로 하나님이 어디있냐고 반문하지만, 창조주의 존재를 부정하는 순간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을 자동적으로 믿어야 하는 어려움에 놓이게 됨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에 대해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증거 1 - 우주의 미세 조정
지난 50년동안 과학자들은 하나 하나씩 발견되는 사실들에 의해 충격을 받았는데, 그것은 우주의 물리 상수가 아주 조금이라도 지금과 달랐다면, 우주에 생명 특히 콩 이상의 크기의 생명체는 발생할 수 없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우주의 물리 상수는 우주를 구조를 결정하는 변하지 않는 수 인데, 이가 아주 조금이라도 지금과 달랐다면 우주 자체가 존재할 수 없었거나, 생명이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보겠습니다. 우주 상수(cosmological constant)는 진공의 에너지 밀도를 나타내는 값인데, 이 상수가 10-120 만큼 더 작았다면 우주는 팽창을 멈추고 다시 수축했을 것이고, 그만큼 더 컸다면 우주는 너무 빨리 팽창해서 별이 만들어 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주가 없거나 별이 없다면 당연히 생명의 발생은 불가능 했겠죠.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강한 핵력 상수의 편차가 10-31 만큼 더 높았다면 수소가 만들어질수 없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더 약했다면 수소외에 다른 원소들은 만들어 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생명체에는 수소가 반드시 필요하기에 수소가 없다면 생명이 발생 할 수 없고, 또 수소만 있다 해도 당연히 생명이 발생 할 수 없었겠죠.
이런 놀라운 미세 조정을 부정하는 과학자는 거의 없습니다. BGV Theorem으로 유명한 Alexander Vilenkin 박사는 미세 조정이 당연히 사실이며 이에 대한 논쟁은 없다고 얘기 합니다. 또 아래에 링크 할 Why some scientist embrace the multiverse?(왜 어떤 과학자들은 다중 우주를 주장하는가?) 라는 기사에서는 컨퍼런스에 참가한 30여명의 저명한 과학자와 수학자들을 인터뷰하며, 그 중 우주의 미세 조정을 부정하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음을 확인합니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믿기 싫어하는 과학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객관적으로 어떠한 설명이 가능한지 알 수 있습니다.
위에 얘기한 Alexander Vilenkin, 노벨상 수상자인 Steven Weinberg, 유명한 이론 물리학자 Leonard Susskins 등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미세 조정에 대한 설명은 사실상, 창조주가 존재하거나 무한한 수의 다중 우주가 있어서 그 중 우연히 우리가 생명체가 존재 가능한 우주에 살게 되었다는 두가지 가능성만이 있음을 제시 합니다.
리차드 도킨스가 노벨상 수상자인 스티븐 와인버그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우주의 미세 조정을 받아들이는 것을 상당히 불편해 하고 거북하다(disturbing)라는 표현까지 쓰면서도 그는 창조주가 미세 조정에 대한 유이한 설명임을 얘기해야만 했습니다.
창조주 혹은 다중 우주....
인간이 과학적으로 창조주를 관측한 적은 당연히 없습니다. 그리고 관측할 능력도 안됩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인간은 무한한 다중우주를 관측한 적이 없습니다. 또 마찬가지로 관측할 능력도 안됩니다.
그렇기에 과학은 미세 조정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을 확인할 뿐 그 원인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제 부터는 믿음과 논리 추론이 추가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미세 조정에 대한 결론이 창조주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는 창조주가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또 일어났기 때문 입니다.
미세조정 우주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시뮬레이션 우주 - 하나님을 인정하기 싫은 천재들의 어리석은 생각들 왜 어떤 과학자들은 다중 우주를 주장하는가?
증거 2 최초 생명의 발생
우리는 미세 조정된 우주를 통해 이 세상은 무한한 다중 우주를 통해 생긴 우연의 산물이거나 창조주의 미세한 조정의 산물이다라는 무신론 과학자들의 결론에 동의를 하고 과연 무엇이 더 합리적인 생각인지를 하나하나 따져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하나의 통계학적으로 불가능한 우연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것은 최초 생명의 발생 입니다.
우유로 잘 알려진 파스퇴르의 연구로 우리는 생명은 생명에게서만 나온다는 과학적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단 한번도 무생물에서 생명이 나온 것을 관찰한 적이 없습니다.
만약 우주가 창조주 없이 우연히 생겨난 것이라면 최초 생명은 어떻게 발생한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과학자들은 아직도 그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인간이 갖고 있는 지식으로는 최초 생명 이 발생 하는 것은 미세 조정 우주보다 훨씬 더 불가능 하기 때문입니다.
단백질 하나가 우연히 만들어 지기 위해서는 20가지의 아미노산이 100~수백개의 적절한 조합을 일으켜야 하는데 엄청난 경우의 수에 비해 단백질을 만드는 조합은 굉장히 적습니다. 게다가 그 조합은 적합한 모양을 구성해야 비로소 단백질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데, 그 확률 또한 아주 낮습니다.
Doug Axe 박사는 150개 아미노산이 연결되어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조합에 대한 확률을 연구하고 계산한 결과 대략 10-77 밖에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기에 아미노산 사이에 펩타이드 본드로 연결되지 않거나 L형 아미노산이 아닌 D형 아미노산이 하나라도 연결된다면 단백질이 되지 않고 붕괴가 됩니다. 150개 (실제는 149개)가 모두 펩타이드 본드 그리고 L 형 아미노산일 확률은 2-150 혹은 10-45 입니다. 즉 아미노산 150개가 우연히 합성되어 단백질이 될 확률은 10-166 정도 밖에 안되는 것이죠.
많은 무신론자들이 존경하는 과학자 칼 세이건은 아미노산 100개가 연결되는 단백질 하나가 우연히 만들어 만들어 질 가능성을 10-130으로 계산 했습니다. 만약 그런 단백질이 수백개가 필요하다면 최초 생명은 확률적으로 대략 10-40,000 정도가 됩니다.
이는 단지 확률적으로만 불가능 한게 아닙니다. 저명한 진화론자 Michael Ruse는 한 토론에서 자기의 눈으로 볼때 아주 단순한 세포 하나 역시도 디자인 된 것 처럼 보인다고 고백합니다. 다만 그는 이런 구조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알 수 없으니 포기하지 말고 창조주가 아닌 다른 원인을 통한 발생의 가능성을 알아보자고 주장할 뿐 입니다.
이처럼 생명의 복잡성 그리고 정교함은 누군가가 설계를 통해 만들었음을 나타내지 우연히 생겨났음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이를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창조주를 인정하기 싫은 인간의 죄성이 발현되는 것일 뿐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창조주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왜 과학적인 증거들은 알라가 아닌, 제우스가 아닌, 비슈뉴가 아닌 성경의 하나님의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생명이 자연적으로 발생할 확률이 입증하는 하나님 생명의 자연 발생이 불가능 한 이유 - RNA 월드 가설의 실패
증거 3 과학이 발견한 아담과 이브
1987년 캘리포니아 대학의 연구 팀은 전 세계에 다양한 민족 여성의 DNA를 채취해 조사했고, 그 결과에 충격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여성에게서만 유전 되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한 결과 다양한 민족의 모든 여성이 한 조상의 후손이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이와 마찬가지로 남자에게만 유전이 되는 Y 염색체를 조사한 결과 이 세상의 모든 남성 역시 한명의 공통 조상을 갖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를 성경의 이름을 따서 미토콘드리아 이브, 그리고 Y 염색체 아담이라고 명명합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 둘을 성경의 아담 그리고 이브과 연결시키기 거부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둘이 있었던 연대를 10만~20만년 전이라고 계산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이 두 사람은 전혀 만난적이 없으며 당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었지만, 오직 이 두사람의 자손만 남고 나머지 사람들의 자손은 모두 멸절했다는 다소 황당한 결론을 내립니다.
그렇다면 정말 이들이 10만~20만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었을까요? 어떻게 이런 계산이 나오게 된 것일까요?
그들은 자신의 진화론적 시간을 바탕으로(인간과 침팬지의 서열차이에 진화의 시기를 적용) 미토콘드리아 DNA에 약 600세대 마다 돌연변이가 하나씩 발생할 것이라고 가정 했습니다. 이에는 어떠한 과학적 실험이나 관찰이 없는 순수한 가정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직접 인간 사이의 변이를 연구 합니다. 그들은 327세대를 나타내는 134개 가족에서 357명의 MtDNA를 조사했을때, 그들은 40세대에 한개 정도의 돌연변이가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Nature Genetics에 보고 되었죠. 즉 돌연변이는 진화론자들의 예상보다 15배나 빨리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를 단순 적용시키면 아담과 이브는 6,000년에서 10,000년 사이에 있었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또 2008년에 있었던 연구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21.6개 뉴클레오티드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음을 밝혔습니다. 이는 수십만년을 가정했던 진화론자들에게는 놀라울 정도로 작은 숫자이며 공통 조상이 20만년보다 훨씬 더 가까이 살았다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Ann Gibbons라는 진화론자는 자신의 논문 Calibrating the Mitochondrial Clock 에서 이렇게 씁니다.
"원인이 무엇이던 진화론자들은 빠른 변이 속도의 영향에 대해서 걱정을 한다. 예를들어 10~20만년전에 아프리카에서 살았다고 여겨지는 미토콘드리아 이브를 새로운 시계를 사용하면 6,000년 전쯤 살았다고 계산되어지기 때문이다. 아무도 이게 사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략... 하지만 변이 속도에 대한 연구 몇개로 모두가 진화 역사를 다시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빠른 변이는 기껏해야 몇백년 정도 된 일이라고 생각하는 옥스포드 대학의 유전학자 Martin Richards는 "아무것도 아닌일에 소란 떨고 있다."고 말한다.
과학은 공통조상이 6,000년 전 사람이라고 결론 내리지만 과학자들은 과학적 결론 대신 자신들의 관념을 선택합니다. (그림을 누르시면 논문 원문 링크가 되어 있습니다.)
과학은 우리의 공통 조상이 6,000년전쯤 사람이라고 가리킵니다. 이는 성경에서 얘기하는 연대와 거의 비슷하게 일치 합니다. 만약 진화론자들의 주장이 맞다면, 약 3,500년전 성경의 저자는 어떻게 공통 조상의 존재를 예측했으며, 그 시기는 왜 6,000년 전 쯤이라고 쓰여졌을까요? 이것이 단순한 우연일까요?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는 증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증거 4 - 정확한 하나님의 예언 성취 - 70 이레
성경에는 다양한 형태와 장르의 글들이 있지만,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예언의 성취 입니다. 예언은 하나님의 전지 전능함과 성경의 정확성을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증거인것 같습니다. 특히 성경은 예수님께서 직접 "나에 대해 쓰여졌다. (요한복음 5:39 & 요한 복음 5:46)" 라고 하신것 처럼,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에 대한 책 입니다. 성경에는 아주 많은 예언이 구체적으로 성취 되었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예언을 소개해 드리기 원합니다.
다니엘서에 있는 70이레 예언은 예수님이 언제 이 세상의 왕, 메시아로 드러나시고 또 죽음을 당하게 되는지에 대한 예언 입니다.
아래에 이해하기 쉽게 만화로 그려진 설명에 대한 링크를 아래에 드리고자 합니다. 저의 글이 지겨우시면 재밋게 그려진 만화로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서 9장은 예레미야의 70년 예언을 발견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하여, 그것을 놓고 다니엘이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다니엘이 기도 할때에 천사가 와서 다니엘에게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언합니다. 그것은 24절부터 있는 하나님이 이세상의 70 이레를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레는 7년입니다. 즉 이 세상이 앞으로 70×7년 즉 490년이 남았다는 것입니다.그런데 490년을 세개로나눕니다. 49년(7이레)과 434년(62이레) 즉 69이레와 장차 있을 한 이레... 즉 언제인지 모르지만 세월이 한참 지난 후의 마지막 한 이레 (7년) 입니다.
그런데 이 70 이레의 시작을 언제로 얘기했냐면, 예루살렘을 다시 건설하라는 명령이 있을때부터 하나님이 세우시는 지도자(메시야-즉 예수님을 가르킵니다.)가 올때까지 69이레가 지날것인데, 그때에 하나님이 세우시는 지도자가 죽임을 당할것이다. (26절)
오늘 이 날자 계산을 하기를 원합니다. 정리하면 이 당시에는 예루살렘이 파괴 되고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가 있던 때이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다시 복원하라는 명령이 있은후 483년에 메시야가 죽을것이다.. 라는 내용입니다.
우선 예수님이 언제 십자가에 달려 죽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AD30~33년중의 한 해이고, 누가복음의 기록에 의하면 AD32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유월절에 즉 니산월 14일날 돌아가셨습니다.
성경에 예루살렘을 다시 재건하라는 내용이 네번 정도 나오는데, 세번은 예루살렘에 성전 즉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곳을 재건하라는 명령이었고, 오직 한 군데만 예루살렘 도시를 재건 하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 이십 년 니산 월 에 일어난 일입니다. 왕이 포도주를 달라고 해서 나는 포도주를 가져다가 왕께 드렸습니다. 전과 달리 슬픔에 가득 찬 나의 모습을 보고.... 왕이 나에게 물었습니다. "그대가 여행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소? 언제쯤 돌아올 수 있겠소?" 왕은 나를 기꺼이 보내 주려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말씀드렸습니다. <느헤미야 2:1,2:6>
느헤미야 2장에 보면 아닥사스다왕 20년 "니산"월에 일어난 일이라고 1절에 설명하면서 6절 왕이느헤미야에게 성을 재건하라고 명령을 합니다. 이 때가 역사학자들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BC 445년 혹은 BC 444년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기록에 날자가 없이 달만 적혀져 있을때는 그 달의 1일인 경우가 많기에 니산월 1일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이때 이후 483년이면 메시야는 왕으로 선포되고, 죽임을 당해야 맞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은 1년이 365일이지만 지금의 달력은 저 때 보다 한참 나중인 4세기 쯤 생겨났습니다. 우리는 1년을 360일로 계산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첫번째 책인 창세기에도 한달을 30일로 잡아서 계산했 고,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도 한달을 30일로 잡아서 계산을 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한달을 30일로계산합니다.
어떤 분들은 윤달을 계산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만약 윤달을 넣어야 한다면 3년반을 42개월 그리고 1260일로 얘기한 요한계시록의 경우 윤달이 중간에 들어가야 하는 기간이므로 43개월로 얘기를 하거나 1260일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의 한달은 30일 1년은 360일 입니다.
483년x 360일은 173,880일 입니다. 즉 BC 445년 니산월에서 173,880일이 지나면 지금 우리의 달력으로 어느날일지 계산해 봤으면좋겠습니다. 1년은 거의 정확하게 365.2477일 입니다. 대충 365.25일이라고 잡죠.
그러면성경의 483년은 우리의 달력으로 약 476.057년 입니다. 0.057년은 날로 계산하면 365.25x.057=약 20일~21일 이정도입니다.
BC445+476년+20일=AD32년입니다. (31년이아닌이유는 AD 0년은 없기때문에)
그리고 20일정도 추가된다면 똑같은 니산월일 가능성이 높죠.
저는 이 70 이레 예언이 하루도 다르지 않고 정확하게 일어났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니산월이라고 달까지 정확하게 표기한 것으로 봐서 이 정도라면 하나님의 역사가 아주 정확하게 일어 났을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날자까지 정확하지 않더라도 다니엘서에서 메시아가 죽어야 한다고 예언한 시간에 예수님 외에, 자신이 메시야라고 주장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
상식적으로 이 70 이레 예언은 우연히 발생했다고 하기 힘듭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없다면 어떻게 이 예언이 성취가 될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은 언제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나? - 70이레 예언
증거 5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역사성 입니다. 세상에 많은 성경학자들이 있지만, 그 중에는 기독교인이 아닌 성경 학자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성경이 역사서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성경 "학자"가 되지도 않았겠지요.
오히려 그들은 성경이 다른 어떤 역사서 보다 사본이 잘 보존되어 있고, 원본에 가까운 책임을 인정합니다. 단지 그들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일들을 그대로 보지 않을 뿐 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과 관련해서 역사로 인정하는 5가지 팩트들이 있습니다.
첫번째 의문 : 성경이 사실이 아니라면 왜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이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했다고 기록했을까?
예수님을 장사 지내는 유대인 지도자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
성경에서 아리마대 요셉은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으로 나옵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제자들이 가장 치를 떨었을 예수님을 잡아 죽인 바로 그 기관이죠.
이건 마치, 일제 시대에 고종 황제의 시신을 갖고 있는 일본 황실에 조선 사람은 두려워서 차마 시신을 달라고 하지 못하는데, 일본 순사가 와서 시신을 달라고 요청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로마의 반역자로써 처형을 당한 것입니다. 장사 지내도록 그 시신을 달라는 것은 "나도 반역자요!" 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자신의 목숨을 건 행위죠.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독립 투사같은 영웅적인 행동 입니다. 그런 행동을 예수님의 11제자가 아닌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이 했다는 것은 성경을 기록한 제자들에게는 부끄러운 일이며, 당시 가장 않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단체 사람이 했다고 지어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사실 성경 기록이 거짓이라면 왜 신뢰를 받을수 없는 여자들의 목격을 기록했는가?
지금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당시에 유대 사회에서 여자의 위치는 굉장히 낮았습니다. 유대 역사학자인 요세푸스에 따르면 여자들은 법정에서 증인으로 참여하는 것 조차도 허용 받지 못했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다는 것이 지어낸 얘기였다면, 그리고 그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믿게 하고 싶었다면, 왜 성경의 저자들은 그 것을 발견한 것이 여자들이라고 했을까요? 당시의 문화에 비추어 당시 사람들에게는 여자들의 증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신빙성이 없는 얘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세번째 사실 : 다양한 장소와 각기 다른 상황에서 여러 개인들과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부활 하여 나타났습니다.
사실상 모든 역사 학자들은 다음 증거들을 통해 이것이 역사적 사실임을 인정합니다.
1) 사도 바울이 얘기한 예수님을 본 증언자들의 이름들은 그 일이 실제로 일어 났음을 보증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15장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셔서 묻히셨다가 구약의 약속대로 3일 후에 살아나셔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시고,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시고, 그 후에 한번에 오백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도 나타나셨으며 그 사람들 중에는 이미 죽은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다고 얘기 합니다. 또 예수님을 믿지 않던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에게, 또 자신에게도 나타났다고 증언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울이란 이름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사람 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바울은 사도들과 친분을 갖게 되었고, 그들 모두의 증언을 듣고 기록한 고린도서가 신화처럼 무시 될 수 없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이 나타나신 얘기들은 여러개의 독립적인 증언들을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얘기는 누가와 바울이, 12 제자에게 나타난 얘기는 누가와 요한과 바울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또 여자 제자들에게 나타난 얘기는 마태와 요한에 의해 증언 되었습니다. 성경의 기록에 대해 부정적인 독일의 신약 성서 비평가 Gerd Ludemann 마저도 "베드로와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음 이후 부활하신 예수님을 봤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확실하다고 봐야 한다!" 라고 결론 지었습니다.
네번째 사실 :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들이 갖고 있던 부활에 대한 믿음과 다른 예수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1)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처한 상황을 생각해 보면, 제자들은 하나님이라고 믿던 예수님이 죽었을 때, 그들은 절망했을 것입니다. 당시 제자들이 갖고 있던 믿음은 현재의 이스라엘 민족이 갖고 있는 메시아 상과 같았습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바로 전에 예수님이 왕이 되면 자신을 가장 높은 자리에 앉혀달라고 부탁을 했었고, 다른 제자들은 그것을 놓고 다투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승천하기 직전에도 제자들은 이스라엘을 회복 하실 때가 지금이냐고 물어봅니다. 그들이 기대한 메시아는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당시의 로마보다도 더 강한 나라로 만들어 줄 사람이었지, 십자가에서 로마의 반역자로써 죽음을 당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2) 당시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사후 세계관은 이 세상에 종말이 오기 전까지는 사람이 살아나 부활하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는 성경에 분명히 드러나는데요.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장면에서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나사로가 다시 살아 날것이라고 말씀하시자 이렇게 대답 합니다.
"마르다가 그분께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할 때에 그가 다시 일어날 줄 내가 아나이다, 하매" <요한복음 11: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은 갑자기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시켰다고 믿기 시작 하고 그들의 목숨까지 내놓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사랑을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사랑하는 자식이 죽었다고 해서, 미쳐 갖고 그 자식이 부활했다고 믿는 부모를 보신적이 있습니까? 혹은 아내나 여자 친구, 혹은 남자 친구나 남편이 죽었다고 해서 갑자기 미쳐 가지고 부활했다고 믿는 사람을 보신적이 있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물론이고 예수님을 믿지 않던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예수 믿는 자들을 죽이려던 사도 바울까지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고, 당시에 살고 있던 수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믿음 때문에 목숨을 바칩니다.
Emory 대학의 신약학자 Luke Johnson은 "무언가 엄청나게 강력한 변화를 일으키는 사건이 있어야만 초대 기독교 당시 있었던 움직임을 일으킬 수 있다!" 라고 말했습니다.
다섯번째 사실 : 1세기 기독교의 폭발적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가졌던 예수님에 대한 반응은 무엇이었을까요? 우선 예수님은 공식적인 로마 반역자 이며, 나무로 만든 십자가에 달려서 죽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신명기 21:23>
당시 유대인의 개념상 로마를 정복하지 못하고 이스라엘을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로 만들어 주지 못했다면 메시아가 아니며, 나무에 달렸다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당시의 유대인들 그리고 심지어 이방인들까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생각했을까요?
당시 예수님을 죽인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핍박했으며, 전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역사학자들은 말 그대로 기독교의 폭발적인 부흥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왜 심지어는 이방인들 까지도 자기들과 상관없는 아주 작은 유대라는 나라에서 반역자로 처형당한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을까요?
저명한 신약학자 N.T Wright 역시 "예수님이 무덤에서 일어나 부활하지 않았다면, 초기 기독교의 부흥을 설명할 수 없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부흥은 불가능 했다는 것이죠.
자 그렇다면 정리를 해야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죽었다 살아나는 것이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은 기적입니다.
하지만 제가 제시한 다섯가지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인정하는 팩트들은 기적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역사학자 Bart Ehrman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는 위에 제시된 다섯 가지 팩트에 대해서는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지만, 단지 부활은 기적이기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동안 역사학자들이 내놓은 모든 자연적인 시나리오는 역사적인지 여부를 검증하는 기준에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가설만 검증 기준을 통과 했습니다.
역사학자들이 내놓은 자연적인 가설들 예를들면, 음모론 가설, 죽음을 가장했다는 가설, 헛것을 봤다는 가설 등은 학문적으로 사실로 여겨지지 않았고, 예수를 믿지 않는 성경학자 Bart Ehrman 박사 역시 그 중 어떠한 가설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고 단지 기절했다가, 인도로 갔다던지, 다른 곳으로 갔다는 식의 가설을 신뢰합니다.
그런 가설은 흥미롭고 부활이라는 기적보다는 그럴듯 하게 들릴수 있을지 모르지만, 객관적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 입니다.
우선 예수의 죄명은 로마에 대한 반란입니다. 당시 로마는 세계를 제패한 규율이 엄격한 군대였고, 사형수가 죽지 않았을 때는 담당 병사가 대신 죽어야 하는 규율이 있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죽지 않은것이 발견되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죽음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내용을 확인해 줍니다.
예수 님께 이르러서는 그분께서 이미 죽은 것을 보고 그분의 다리를 꺾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군사들 가운데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찌르니 즉시로 거기서 피와 물이 나오더라. 그것을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의 증언은 참되니라. <요한복음 19:33~35a>
원래 로마 군인들은 죄수가 죽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반드시 다리 뼈를 꺾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자신이 직접 목격했다고 증언하며 예수님의 다리는 꺾지 않았고, 다만 옆구리를 찌르니 물과 피가 나왔다고 증언 합니다.
이는 법의학적으로도 정확한데, 심장이 파열 되었을때, 24시간 이전에 파열된 심장에서는 피가 흐르고 심장 주위에 피가 고이는 주머니가 생기며 혈청이 가라 앉으면서 액체가 생겨 그 주위를 찌르면 많은 양의 물이 나온 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들로 예수님이 죽지 않았다는 가설은 역사 학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출처:Finger of Thoma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