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손병렬 목사는 동아대를 나와 장신대 신대원(M.Div.)를 졸업하고 서소문교회(김호일 목사) 부목사를 역임, 이 교회 후원으로 풀러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박사(D.Min)를 마쳤고, 나성영락교회 부목사를 거쳐 2004년 5월 남가주동신교회 담임목사로 취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도행전의 교회관을 바탕으로 '충만한 교회, 행복한 교회'를 추구하는 남가주동신교회 손병렬 담임목사와의 만남은 특별했다. 내년이면 창립 30주년을 맞는 교회는 오렌지카운티 지역의 유서깊은 한인교회중 하나다. 구수한 된장 맛 물씬 나는 깊은 신앙의 연륜이 배어나는 이 교회는 젊은 손병렬 목사의 부임과 함께 새로운 도약의 한때를 맞고 있다.

교회는 '예배-교육-봉사-선교'로 맞물려 돌아간다
교회는 연륜답게 기본기가 튼튼하다. 초대교회를 교회 모형으로 지금의 교회가 위치한 오렌지카운티 지역을 중심삼아 성도 한 명 한 명의 신앙 변화를 '예배'와 '교육'으로 이끌면서 점차 지역사회 '봉사'와 해외 '선교'까지 복음을 펼쳐가는 전형적인 나선형 구도를 그리고 있다.

모든 사안이 계획대로 준비되고 실천되는 톱니바퀴같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손 목사가 부임하면서 창조와 혁신이 더해져 교회는 한층 조화로운 성장을 보이고 있다.

교회의 저력은 먼저 '예배'에서 찾을 수 있다. 손 목사의 설교는 박희민 목사(나성영락교회 원로)와 닮았다. 나성영락교회 음악담당 부목사 시절 부지런히 박 목사의 성실한 설교준비와 긍정적인 메세지 전달 방식 등을 습득한 결과다. 힘든 이민생활로 지치기 쉬운 성도들이 말씀을 통해 삶의 위안을 얻는 것은 물론이다. 여기에 그 주의 설교 내용에 맞춰 손 목사가 직접 인도하는 찬양은 음악목사 출신답게 성도들을 예배에 한층 몰입시키는 큰 힘이 되고 있다.

'교육'은 2세 사역에 대한 투자가 유별나다. 이는 단순히 물질적인 투자를 넘어서는 개념으로 교회는 '팀목회'를 성장 전략으로 내세운다. 담임목사와 EM 목사, 교육목사가 하나돼 함께 전도전략과 교육계획을 수립해 1세와 1.5세, 2세가 모두 교회에 정착하고 선교동력화 될 수 있는 교회를 꿈꾸는 것이다. 이 팀목회는 교회의 교육적 기능에 집중돼 있으며 이를 통해 교회의 일군과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될 인재를 양성하는데 주력한다.

최근 본당 2층 건물전체를 2세를 위한 교육공간으로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한 점은 교회의 2세를 향한 열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손 목사는 "KM, EM, 교육부 모두 좋은 관계를 맺고 한몸처럼 움직이고 있습니다. 먼저는 KM이 성장하면서 EM과 교육부를 투자하는 식입니다. 이들이 교회의 주인으로 정착할 수 있게 적극 협력하고 있고 지역사회를 넘어 미국 사회에 건강한 영적 리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라고 전했다.

다음으로 '봉사'는 이 교회의 주특기라 할 만 하다. 플러톤 주택가에 위치한 교회는 다민족들의 거주공간 한가운데 파묻혀 있다. 그런 만큼 지역사회와의 관계성이 중요한데 교회는 지역사회의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교회의 대사회적인 면에서 칭찬을 많이 듣는다. 특히 매년 지역사회 청소년을 선정해 지급하는 장학금 제도는 교회 이미지 신장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서론은 길었지만 역시 결론은 '선교'다. 사실 이 모든 훈련과 선행을 놓고 손 목사는 "성도 한 명 한 명을 영적으로 성장시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가기 위한 노력"이라 강조한다. 이제는 800여 명이 모이는 중형교회로 성장한 만큼 국내외 선교지를 다각도로 섬기는 모습도 아름답다. 실제 교회는 예산의 20%는 선교에 투입하고 있고 최근 필리핀 선교센타를 놓고는 한번에 2만5천불 이상을 지원하기도 했다.

손병렬 목사는
가난한 불신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 신앙적인 핍박이 심해 교회에서 잠을 자야하는 경우도 많았다. 상황은 힘들었지만 목회자를 소명으로 알고 우선은 '창조의 신비를 알아야겠다' 싶어 생물학을 전공했고, 미래의 목회자상을 그리며 음악대학을 드나들며 성악과 지휘법 등을 같이 익혔다.

이어 장신대 신대원을 입학했지만 가난의 그림자는 질겼다. 은혜롭게도 하나님을 향한 그의 신앙도 더욱 질겨졌다. 더 악착같이 주경야독을 이어갔고 서소문교회 담임을 지낸 김호일 목사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길이 열려 풀러신학대에서 수학하게 되었고, 나성영락교회 부목사를 거쳐 남가주동신교회에 청빙돼 첫 담임목사로 성공적인 목회를 이어가고 있다.

취재를 마치며
손병렬 목사는 만들어진 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힘겹게 내면서 오늘에 이른 목회자다. 신앙을 시작한 가정환경부터가 그랬다. 신앙적인 배경도, 그를 위해 기도해 줄 이도 없는 가운데 하나님만을 보고 한걸음씩 전진해온 신앙여정이 애잔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손병렬 목사를 오늘처럼 들어 쓰시는 것만 같다. 더불어 이 모든 길을 여신 이가 사실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임을 깨닫는 순간, 우리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의 세계를 더욱 묵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