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개혁의 비전과 성경의 권위회복
한국교회가 직면한 부패와 무능력을 고치기 위해서는 지난 오백년 동안 계승해 내려 온 종교개혁의 핵심적인 교훈들에 대해서 주목하게 된다.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친 핵심 내용들을 살펴볼 때에, 한국교회가 총체적 개혁하고 갱신해야만 하는 것들을 찾아 볼 수 있다. 교회의 개혁을 열망한다면, 종교개혁자들이 역점을 두고 노력하였던 일들, 그들이 성취했던 역사적인 업적들을 살펴보아야만 한다. 지금 한국교회에 가장 필요한 두 가지 영역을 살펴보고자 한다. 종교개혁의 영향력과 교훈들 속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 사항들이었고, 한국교회도 철저히 되새겨야할 본질적인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로, 종교개혁의 정신은 성경에 근거하여 온전하고 보편적인 기독교 교회를 재건하려 했음을 재론하고자 한다. 이런 성경중심적인 사고방식은 지금도 한국교회를 갱신하고 개혁하는 본질적인 내용이 되어야만 한다. 한국교회의 강단과 예배가 성경의 본질로 되돌아 가야만 한다.
둘째로는 성도의 봉사와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인간의 부패한 본성에 대해서 성경의 선언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우리 인간은 그 누구도 예외없이 죄를 범하였고, 부패와 오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의 본질을 말씀과 성령으로 갱신하고 고쳐나가지 않는다면, 사울 왕이나 다윗 왕이라도 결국에는 망하고 만다. 그런데도 한국교회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철저하게 반성하는 일은 도외시하고, 명예욕과 물질욕에 빠져있다. 교회들마다 지나친 세속화된 경쟁의식에 휩싸여 있으며, 개교회주의에 빠져있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각 교회가 전도와 양육활동을 하거나 예배와 선교 사역 등 핵심적인 목양적 활동들을 전개하면서도 이기적인 양적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성경적인 메시지는 사라지고, 자기 교회만을 정당화하고 자랑하려는 상업주의에 빠져버렸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과연 우리가 누구인가를 겸허하게 되돌아 보아야만 한다. 부패한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그 어느 누구도 예외적일 수 없다는 성경적인 인간론을 뼈저리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우월인간의 본성과 본질에 대한 엄숙한 재발견이었다는 점을 밝혀보고자 한다.
인간이란 무엇이며 (시편 8:4), 과연 사람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 한국교회는 지금 겸허하게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들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교황이나 성직자들이나 수도자들마저도 하나님 앞에서는 별수 없이 죄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종교개혁자들은 순수한 성경의 가르침을 외쳤던 것이다.
성경은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며, 과연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 존재인가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인간의 부패에 대한 통렬한 분석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16세기 종교개혁은 결국 사람들이 성취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사람들을 깨워서 일을 도모하도록 도와주셨다. 그들은 자신들이 부패한 존재라는 점을 받아들이고, 단 한 번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받아들였다. 지상에서는 완벽한 교회가 없기 때문에,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하는 교회"(Semper reformanda!) 가 되어야 한다고 확신하였다.
하나님의 동산에서 쫓겨 난 후에, 엉겅퀴와 가시로 뒤엉킨 세상 속에 교회가 세워진 까닭에, 각 교회가 처한 시대마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엄청나게 많은 세속의 영향이 들어와 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발생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아는 자연적 지식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땅 위에 살아가는 일반적인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계시들을 목격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인식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롬 1:18-25).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정확한 분별력이 필요하며, 갱신을 요구하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이 추구했던 교회의 갱신과 개혁적인 제안들은 성경의 권위에 철저히 의존하였다. 비록 그들 사이에 서로 해석의 차잇점들 있고, 간혹 대립되는 부분들이 있다하더라도, 로마 교회의 전통이 아니라 성경에만 의존한다는 정신이 철저했다. 로마 가톨릭에서 주장하던 전통이나 교회의 수장, 교황이 권위의 핵심이었으나,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최종권위를 바꾸었다는 점은 획기적인 변화를 초래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에 의해서 모든 교리들을 판단하라고 성도들에게 촉구하였다.
종교개혁 이전에 로마 가톨릭 미사의 내용에서는 설교가 없었다. 유명한 설교자들과 함께하는 특별한 행사에서만 강연이 있었을 뿐이다. 비로소 종교개혁자들에 이르러서 말씀의 선포가 정규적으로 강조되었고, 성도들의 교화를 이루고자 노력했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미숙한 대중들이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한 토론주제들을 다루었을 뿐이었고, 청중을 잠에 빠져들게 하지 않으려고 달콤한 이야기나 재미있는 생각들을 사용하였다. 성경 말씀은 거의 들을 수 없었고, 자신들의 경박한 말을 두둔하려고만 끌어왔을 뿐이다.
▲루터(앞줄 가운데)의 칭의론은 성경에 무지한 성도들을 깨우쳤다. |
루터 (1483-1546)와 칼빈 (1509-1564)은 말씀과 연계된 성령의 사역을 강조하였는데, 말씀으로 인해서 믿음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거나 가르침을 받는 동안에 그리고 성경을 선포하는 복음을 들을 때에 성령께서 반응을 일으킨다고 강조했다.
루터와 칼빈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의 성직중심주의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교회 내에서는 오직 공식적인 대언자의 신분을 가진 자들을 통해서만 어떤 특수한 방식으로 성령이 역사하신다고 주장하였다. 로마 가톨릭에 의하면, 이 직분이란 기독교 신앙의 해석자들로서 인정을 받은 주교들의 상하조직체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회복은 초대교부들의 삼위일체 신론을 회복하게 되는 성과를 가져왔다. 루터와 칼빈과 크랜머 등은 성부와 성자, 특히 성령의 사역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로마 가톨릭 신부였던 레이몬드 브라운도 종교개혁자들의 강조점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종교개혁은 서구 기독교회 사이에서 하나의 전쟁이었다. 서구 교회의 전통을 따라서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다는 신앙으로 통일되어 있었으나, 어떻게 성령이 교회 안에서 기능을 감당하느냐를 놓고서는 나뉘어졌다."
칼빈은 죄로 인하여 부패되고 어두워진 인간에게는 오직 성령의 내적증거 (testimonium internum Spiritus Sancti)가 함께 하므로써 하나님의 객관적인 말씀에 대해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로마 가톨릭 교회 안에서 공적인 지위를 가진 신부가 7가지 성례라는 수단을 진행할 때에 참여하는 자들에게만 은혜가 주입되어진다고 가르쳤다. 칼빈은 구원의 적용사역에서 핵심은 성령의 역사임을 성경대로 회복시켰고, 성령의 주권을 강조하였다. 워필드 박사는 이런 점에서 칼빈을 "성령의 신학자" (The Theologian of the Holy Spirit)이라고 특별하게 지칭하였다. 마치 루터를 "칭의의 신학자," 혹은 초대교부 중에서 아다나시우스를 "성육신의 신학자"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하게 칼빈의 공헌은 높이 평가를 받고 있다. 종교개혁 시대의 전환점에 이르게 되면, 영국의 존 오웬이 제시한 주제별 강해와 설교에는 성령의 인격성, 점진적인 성화의 과정, 성령의 작동들에 관하여 다루었고, 4세기 가이사랴의 바실이 남긴 「성령에 관하여」에 대조되는 기념비적인 저술을 남겼다.
루터의 칭의론은 성경에 무지한 성도들을 깨우쳤다. 루터는 「소요리문답」 서문에서 성경에 대한 무지가 만연했음에 놀라움을 표현한 바 있다. 종교개혁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 우선성에 공감한 것은 그들의 양심이 참으로 하나님 앞에 있다는 깨우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루터와 칼빈이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여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이들은 같은 신념과 비전을 공유하고 있었다. 칼빈은 프랑스와 독일 경계선상에 있던 스트라스부르그에서 박해를 피하기 위해서 옮겨와 살고 있던 난민들을 위해서 목회자로 사역하였다. 그는 독일어를 잘 하지 못했지만, 루터의 글을 라틴어로 읽었다. 루터의 계승자 필립 멜랑히톤과는 공적인 회의에서 여러 차례 만났고, 개인적으로 서신을 주고받았다. 칼빈은 루터를 존중하여 여러 차례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하였다: "하나님께서 루터와 그 외의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서 구원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도록 횃불을 들게 하였고, 그들의 사역에 기초하여 우리들의 교회들이 세워지고 지어졌다."
루터, 칼빈, 불링거 등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되었다. 오직 성경으로만 (sola scriptura)이라는 원리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루터가 로마서 1장 17절과 하박국 2장 4절에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으로 자신의 주장에 대해서 확신할 수 있었다.
하나님과 인간과 교회와 세상에 대해서 정확한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하나님의 계시는 모든 인간의 지식과 사상을 능가하는 절대적 기준이며, 반드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사람이 자신의 체험이나 지식을 평가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궁극적인 진리이며, 사람의 소리는 거짓일 뿐이다. 성경에서 나오는 가르침에서 보면, 사람의 생각은 완전히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존하심과 계시하심을 인정하는 사람들로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다른 종류의 사람들은 이런 계시의 교훈을 거부한다. 계시의 수용여부에 대해서 칼빈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구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오직 하나님의 계시만이 인간의 윤리와 삶을 설정하는데 있어서 올바른 동기와 목적을 제공하여준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용하신 인간의 용어를 사탄도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인간들이 점차 성경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큰 혼란이 초래되고 말았다. 종교개혁자들 사이에서도 미세한 부분에서는 합의된 해석에 이르기 어려웠다. 훗날 기독교와 자유주의 신학의 갈등도 이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언어로 표현되기에 참된 종교를 구별하기 어렵게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