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서 베드로는 장로중의 하나라고 설명하면서도 모든 다른 장로들에게도 자기가 경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그 장로들이 절대로 교만하거나 어떤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려 하지 말고 겸손히 섬김의 자세로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양 떼 중에서도 젊은 신앙인들로 자신이 하늘나라 가기를 진정 소원한다면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 마음에 드는 신앙인격을 통하여 제목과 같이 겸손과 순종의 신앙인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보시고 그의 신앙인격 수양이 겸손과 순종으로 하나님 기대에 쓰실만하다고 인정되실 때에 그를 높이 들어 쓰시게 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교회를 다닐지라도 교만하고 언행이 여러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상당히 기피하고픈 대상으로 “저 사람은 교회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지 않습니다. 또 그 인생은 버려져서 멸망할 수밖에 없고 멸망당할 때에 후회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1. 교회 지도자(指導者)의 마음가짐: 고난의 증인(證人)
본문속의 장로라고 하는 것은 교회의 지도자, 즉 목회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1절 말씀은 그리스도의 종된 사명자는 영광의 증인이 아니라 고난의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에 당하신 그 모진 행패와 수난과 고난들은 제자된 신분으로 지내오면서 잘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임당하시고 부활을 통하여 승천하신 후에도 성령을 보내서 성령 받은 사람들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실 때, 예수님의 고난을 먼저 증거하는 고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온갖 수모를 당하시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 당하신 고난의 과정을 생생하게 증거하면서 그 예수님이 바로 당신의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 할 때에 성령이 함께 역사하심으로 듣는 사람들도 믿어질 수밖에 없도록 체험도 주시고 감동, 감화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2. 교회 지도자(指導者)의 마음가짐: 청지기의 자세
2절 말씀은 우리에게 맡겨진 양 떼는 내 양 떼가 아니고 하나님의 양 떼라는 말입니다. 그들을 치되 부득이함으로 마지못해 억지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자발적인 의지와 사명을 앞세워서 하라는 것입니다. 또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라는 것은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팔거나 또 무슨 직분이나 사역을 빙자하는 일은 절대로 하나님이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3절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하신 말씀은 양떼들의 신앙을 지도할 때 입술로만 교리적인 것, 사명적인 것, 또 의지적인 것을 훈련, 교육시키려 하지 말고 목자 자신의 생활로 본이 되는, 보여주는 설교에 힘써서 양 떼로 그 목자의 신앙생활을 보고 본받아 참 믿는 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목자장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교회 지도자(指導者)의 마음가짐: 온유(溫柔)와 겸손(謙遜)
5~6절 “젊은 자들아 이와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는 것은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과 순종을 힘써 훈련하여 때가 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 들어 크고 요긴하게 사용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독일에 공작, 백작, 자작이 있고 후작이 있었는데 그 중에 으뜸으로는 공작이었습니다. 왕의 근친 중에 로드리스게라는 공작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왕의 직계후손이 없어 조카들 중에서 왕위를 계승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로드리스게는 분명 자신이 왕위에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겸손과 순종으로 백성을 섬기기 위한 교육도, 훈련도 받지 아니하고 아직 확정되지 않은 왕의 자리에 마치 자신이 오른 것처럼 교만하고 거만한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고 상당히 위압적으로 건방지게 행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술로 시간을 보내고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포악하고 못된 짓을 하곤 했습니다. 사실 이 사람이 왕의 친족 중에 가장 가까운 친족으로 생각하고 눈여겨 보고 있었지만 전혀 왕의 재목이 아님을 알고 왕위후보계열에서 제외를 시켰습니다.
만약 그가 왕의 자질을 배우고 계율을 배우며 열심과 순종의 자세로 하나님을 섬기듯이 백성을 섬기겠다는 태도를 보였더라면 틀림없이 왕위를 계승했을 것인데 자신의 잘못된 처신으로 말미암아 왕위후보계열에서 배제된 것을 생각지 못하고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울분을 터뜨리며 점점 폐인이 되어갔습니다. 그 당시 독일은 기독교 국가였기에 주일이면 어김없이 교회에 가야했습니다. 그는 교회에 술에 취해 가기도 하고 흐트러진 모습으로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사냥을 갔다가 눈이 많이 내려 길을 잃고 산속을 헤매다 그만 낭떠러지로 미끄러지고 말았습니다. 한없이 미끄러져 내려가다 위압감을 느낄 정도의 골짜기에 이르러 비로소 그곳에서 인간 자신의 나약함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일국의 제왕이 될 꿈에 부풀었던 그가 평생 처음으로 대자연의 위대함과 웅장함에 스스로 위압감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정말 보잘것 없는 존재이며 허약하기 이를데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불안감과 두려움에 스스로 막막함에 빠져듭니다. 그때 그는 그 자리에 무릎 꿇고 “하나님, 저를 보고 계십니까? 제가 지금까지 나 아닌 나로 잘못 행세하고 광패와 교만을 일삼았습니다.”하고 기도하며 조금씩 겸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마침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함께 있던 사냥개가 주인을 종소리가 있는 곳으로 인도를 하게 됩니다. 개를 따라 가보니 아주 조그마한 기도원이 보였습니다. 그곳은 수도원이었습니다. 나이드신 목사님이 은퇴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평생을 하늘 나라가기까지 자기믿음을 알찬 결실로 채워가시기 위해 애써 기도하는 곳이었습니다.
개와 함께 어떤 사람이 다가오자 좇아 나와서 어디서 오셨냐고 물어보니 왕자라고도 말을 하지 않고 그저 길을 잃어버려 이곳 종소리를 듣고 찾아왔다고만 말합니다. 목사님이 이곳이 너무 누추해서 있을만하냐고 해도 자기 같은 죄인이 장소를 탓할 이유가 없다고 답할 정도로 겸손해졌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도를 하는데 통곡이 터져나와 “하나님! 제가 잘못 살아왔습니다. 오늘의 형편은 제 탓으로 만들어진 결과입니다.”하며 밤새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목사님이 먹을 것을 만들어 좀 드시고 기도하라고 했더니 “저는 그것을 먹을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용서 받아 내 마음에 평안이 임할 때까지 저는 계속 낮아져야 합니다. 제 자신을 낮추고 더 낮추어 더 내려갈 수 없는 밑바닥까지 내려가야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하며 사흘을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런 후 목사님으로부터 일주일 동안 가르침을 받으면서 더욱 성숙한 신앙인격을 갖추어 갔습니다. 그동안 왕궁에서는 사라진 사람으로 인해 많은 걱정 속에 있었는데 그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왕궁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17과 같이 이전의 로드리스게는 지나갔고 보라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인격으로 겸손하며 순종하는 새로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났습니다. 그런 후에 그 사람은 아주 조용하고 모든 사람을 대할 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자기가 가진 소유를 정리하여 빈민촌에 나눠주며 희생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겸손과 순종의 자세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공교롭게도 왕위에 올랐던 자가 병이 나서 죽기 전에 후임자를 세우는데 원로원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이 로드리스게를 뽑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원하지 않았지만 원로원에서 모셔다가 왕위에 오르게 했습니다.
이 같은 일들을 볼 때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더하시는데, 그런즉 겸손과 순종의 지혜를 배워서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고 성령에 이끌리어 쓰임 받고 하나님 더 잘 섬기는 목적으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에 붙들려서 하나님이 요긴하게, 또 높이 붙들어 쓰실 재목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신앙인격을 온전히 갖추도록 힘써야 합니다.
전도를 할 때도 자신이 낮아지고 낮아져서 오직 예수님만 보여지고 느껴지며 전달되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독자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되면 너희를 높이 쓰시리라”(벧전5:6)는 말씀처럼 되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