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곳곳이 덥다고 아우성이고, 그 더운 곳에 우리 아웃리치 팀들이 나가 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시애틀은 아침 저녁 춥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 그리고 간간히 뿌려주는 비까지 더 필요한 것 없는 좋은 여름 날씨를 보내며 살고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하다는 말이 날씨 때문에도 나오는 좋은 날들을 보내며 형제의 삶에도 좋으신 하나님의 복이 모든 영역에 임하시기를 기도하며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합니다.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형제와 나누면서 다시 한 번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혹시 믿음의 행위를 믿음으로 착각한 것이 아니었나? 그리고 그 행위들을 공로로 생각하고 보상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는가 제 자신의 상태를 돌아보는 귀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마귀는 복음을 왜곡시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복음은 전해 졌고 기쁨과 자유가 주어졌는데, 마귀는 그것을 왜곡시켜 짐을 얹어 놓습니다. 여러가지 행위를 해야만 진정한 구원을 얻는 것이라고 합니다. 몸이 상하는 정도의 고행을 해야만 구원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고, 다 드릴 수도 없는 양의 물질을 드려야만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비즈니스 거래의 관계가 되게 합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하나님께서 나에게 당연히 이만큼 해 주셔야 한다. 구원도 돈으로 살 수 있고, 병고침도 사업의 번창도 돈으로 살 수 있고, 돈이 아니면 나의 선행으로 충분히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 3 장을 "어리석은 갈라디아서 사람들아" 로 시작합니다. 마귀의 속임수에 놀아나는 갈라디아의 성도들에 대한 외침이고, 그런 속임수에 빠져 믿음과 행위에 혼동되어 있는 오늘날의 성도들에 대한 외침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교회들이 이 행위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불평하는 사람들 때문에 어려워지고,또한 그런 행위를 할 형편이 되지 못해 교회에서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 때문에 어렵습니다. 재벌 아버지에게서 조금이라도 더 상속을 받기 위해 잘 보이려 애쓰는 자식들의 모습, 좋은 것을 상속받지 않았다고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모습, 그런 모습을 욕하며 보는 우리들이지만, 혹시 교회 안에서도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원이 복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 만으로 만족한다고 사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입니다. 그외에 베풀어 주신 모든 것은 보너스입니다. 주실 수도 있고 다시 가져가실 수 도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그 영원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고, 그렇게 사는 것이 믿는 자로서의 삶입니다. 갈라디아서의 말씀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사랑하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되돌아가는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