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16년 6월 26일
본문 : 히 9:19-28
<서론>
저는 피 흘림이 없는 종교란 제목으로 말씀으로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우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를 속하는 피의 제사가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고 그 가죽을 벗겨 옷을 지어 아담과 하와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피의 제사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지은 후 자기들의 벌거벗음을 보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수치심을 가리려고 애를 썼습니다. 인간적인 노력으로 죄와 수치심을 가리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종교들이 선행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고행을 함으로써 죄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피 흘림이 없은즉 죄 사함이 없다고 성경에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짐승을 잡아서 가죽옷을 입혀 주신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본론>
1.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인간
죄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과실은 다 먹되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귀의 꾐을 받은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도록 유혹을 했습니다. 원래 에덴이란 말은 아름다운 곳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동산에서 하나님과의 대화를 나누기 전에 마귀하고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꾐에 빠져서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냐면 선악을 구분하면 자기 주권 행위를 할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집에서 선악과 문제 때문에 다툴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우리는 시장에서 물을 사다 마신다." "그러지 말고 우물물을 길어서 마시자." 그러면 남편은 물을 사서 마시자고 그러고, 아내는 돈을 아끼기 위해서 우물물을 퍼서 가라앉혀서 마시자 하는데 어느 누구를 따라야 합니까? 두 사람을 다 따르자면 전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의 뜻을 따르려면 자기의견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아내가 주장하자면 남편이 자기 의견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 하나님도 계시고 아담과 하와도 있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아담과 하와가 반대를 하면 서로 싸움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주에 주인이 둘이 있으면 콩가루 집안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영국은 유럽연합국에 남아있겠나 안 남아있겠나 그것을 투표를 해서 어제 결과가 발표가 되었습니다. 거의 과반수의 수가 유럽연합에 남아 있자고 하고, 과반의 수는 있지 말자고, 그래가지고서 지금 콩가루 집안이 되었습니다. 나라를 이끌어 갈 주체적인 세력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이건 대단한 일인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하고 말다툼을 하는 그런 일을 하나님은 허락하길 원치 않았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서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한가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과 순종을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네 독자 외아들 이삭을 모리야 산에 데리고 가서 제물로 바쳐라." 하나님과 할 수 있습니다. 못합니다. 논쟁을 할 기회를 주지 않아요. 믿고 순종하던지, 불순종하고 반역하던지. 그 둘 중에 하나지, "왜 믿음으로 아들을 주셔놓고 난 다음에 아들이 이제 크니까 그를 잡아서 제물로 드리라고 합니까? 그건 아버지가 잘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면 하나님하고 논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담과 하와가 닮지 않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하니까 아브라함은 왜요? 라는 말 한마디도 묻지 않았습니다. 자기 아내하고 의논하지도 않았습니다. 당장 이삭을 불러서 모리야 산에 가서 하나님 제사를 드리라 하는데 모리야 산으로 가자. 아들에게 장작 걸머지고 칼 들고 불씨는 아브라함이 갖고 사흘 길을 갔습니다. 그래서 모리야 산꼭대기로 올라가는데 이삭이 가슴을 칼로 찌르는 질문을 했습니다. "제사를 지낼 장작과 불씨는 가지고 있는데 제물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아브라함이 뭐라고 말하던지요? "니가 제물이다." 그렇게 말했습니까? 아닙니다. "제물은 하나님이 준비하신다." 올라가서 장작불을 다 펼쳐놓고 이 제물로 이삭을 잡아야 되는데, 칼을 들고 이삭을 목을 자르라고 할 때 그때까지도 하나님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시험해 보았습니다. 1초만 늦었어도 이삭은 죽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손을 높이 들고 칼로서 막 목을 찌를라고 하는데 하늘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아들 이삭에 몸에 손대지 마라. 니가 니 외아들 독자 이삭도 하나님 뜻이라면 제물로 바치려고 하니 참으로 네가 하나님 사랑하는 줄 알겠다."고.
여러분, 우리가 특별한 수입이 있으면 마음에 자꾸 성령께서 "십일조 떼라. 십일조 떼라." 그럽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버지 다음에 생기는 게 있으면 떼고 요번은 그냥 통과되게 해줍시오." 안 떼요. 믿고 순종하는 마음을 거기에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인지 아닌지 알려면 믿음과 순종을 우리가 시험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고 순종은 살든지 죽든지 흥하던지 망하던지 성하던지쇠하던지 하나님이 하라면 한다." 그것이 참 신앙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께서 하나님께 참 신앙을 보여 달라면 하나님은 믿음과 순종을 꼭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합격이 되면 하나님이 대단히 기뻐하시고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믿음과 순종에 낙제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데 따먹고 하나님과 일대일로 살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8절로 10절에 보면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야훼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야훼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야훼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죄를 짓자 영광의 옷이 사라지고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은 것을 보게 되니 챙피하기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셨는데 벌거벗고 하나님을 영접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별 도리 없이 하나님께 나타나지 못하고 숨었습니다. 아담을 찾는데 부끄러워서 옷을 벗어서 못나가겠습니다. "너가 왜 부끄러우냐? 너 벌거벗은 것을 보고 부끄러우냐? 선악과를 따먹었지?" "예, 따먹었습니다.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하와가 나를 꾐으로 내가 먹었습니다." 사람들은 꼭 변명 말합니다. 선악과는 따먹었는데 따먹은 이유는 하나님께 책임이 있습니다. "왜 그런 여자를 만들어줬냐? 하와를 안 만들어줬으면 내가 선악과를 안 따먹었을 것인데, 하와를 만들어 주셔서 그 하와가 꾐으로 내가 먹었다." 그 하나님께서 하와보고 "왜 남편을 꾀서 선악과를 따먹게 했냐?" "마귀가 와서 날 꾀니까 먹었습니다." 자기 책임을 걸머지지 아니하고 다 이웃에게 책임을 미뤘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과 하와는 그들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하여 죄와 마귀의 종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34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에덴동산은 좋다, 아름답다는 의미인데 죄와 마귀에 의해서 저주와 죽음의 동산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사는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굉장히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 계시니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좋고 아름다운 환경을 만든다고 늘 마음에 생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을 아름답게 만들지 아니하면 마귀가 와서 죽음이 꽉 들어찬 곳을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내 환경 전체에 아름다운 곳이다. 좋은 곳이다. 하나님이 계시므로 좋은 일이 생겨날 것이다.' 긍정적이고 좋은 것을 생각을 하면 여러분 환경이 아름다워집니다. 그리되면 적극적인 믿음을 가지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좋은 날입니다. 하나님 섬기고 찬송을 하는데 얼마나 좋습니까? 에덴동산은 좋은 동산, 아름다운 동산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쫓겨났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심으로 말미암아 에덴보다 더 좋은 천국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좋은 하나님의 에덴보다 더 좋은 천국을 마음에 모시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삶에 합동하여 유익이 되고 좋은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창세기 3장 17절에 보면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며 그 소산을 먹으리라' 아담은 환경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농사를 지어먹고 살겠다고 했습니다. 아주 환경이 거친 삶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기가 막히게 좋은 환경을 주셨습니다. 그 보혈을 통해서 죄를 사해 주셨고 허물과 죄를 씻어주시고 병을 고쳐 주시고 저주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주시고 죽음을 극복하고 영생복락을 주셨으니 그런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하고 지나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 여러분 속에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것을 많이 이루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인생은 살아가는 환경을 자기가 잘 선택해야지 환경을 잘못 만들어 놓으면 원망 불평 탄식이 나오고 좋은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2.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옷
이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앞에 그냥 나갈 수가 없습니다. 벌거벗은 몸으로 못 들어가지 않습니까? 한번 만나더라도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리고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고 부끄러움을 일시로 좀 가리우고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실 때 하나님이 직접 짐승을 잡아서 가죽을 벗겨서 피를 쏟고 그 가죽으로 옷을 지어서 아담과 하와에 입혀서 하나님 만나러 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죄의 값은 피를 흘려야 됨으로 그들은 그때 이후로부터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하루에 몇 번 나와도 다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피 흘림이 없을 때 죄 사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피를 쏟는 것을 말합니다. 모두다 핏 값으로 죄를 덮고 아버지께 나오는 것입니다. 짐승의 피로써 영원히 죄를 사함 받지 못합니다. 짐승의 피는 죄를 덮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 섬길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주어서 피의 힘을 빌려가지고서 섬기고 난 다음에 곧장 하나님 앞에서 물러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벌 받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야훼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 옷을 지어 입힌 것도 장차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여서 그 피로서 죄를 갚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죽인 의로운 벌을 안 받는, 죄를 한 번도 짓지 않은 것 같은, 의로운 옷을 입혀서 줄 것을 예언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보면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짐승들 잡아 피를 흘린 모형을 짐승들 속에서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영원한 핍니다. 예수님이 영원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영원한 하나님이 영원한 피를 흘렸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셔 들이면 그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여러분 죄를 씻어 주시되, 영원히 씻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죽 옷은 의의 선물인데, 예수님의 의로움은 낡아지지 않습니다. 한번 예수를 믿어서 의롭다 함을 얻었으면 그 의는 영원히 여러분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실제로 보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의 피가 죄를 씻으면 영원히 용서받은 사람이 되고, 예수님이 가죽옷을 해 입혔는데 그 가죽옷은 의를 상징하는데 그 의는 무슨 의냐?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상태가 여러분 믿음으로 받는 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가면 죄를 보혈이 철저히 씻어버리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분 생애 속에 죄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고 또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영원히 의롭다 함을 얻었는데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상태 같은 의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은 적도 없고, 죄를 덮어쓴 일도 없으니까 철저히 의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기쁘시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갈 때 여러분께서는 죄를 회개할 것은 여러분이 해야 될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는 항상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상태인 의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가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담대함을 버리지 않고 주님께 나가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품어주시는 것입니다. 피 흘림의 제사 없이는 결코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우리가 이제는 그 피가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언제든지 예수의 보혈을 의지하고 씻음과 영광을 누릴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3. 가인과 아벨이 각각 섬긴 제사와 제물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 나가 가인과 아벨을 낳았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장성해가지고서 각각 독립 집안을 세웠을 때,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는 시기가 왔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아버지 어머니로 모신 가인과 아벨은 항상 제사 드리는데 굉장히 신경을 썼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가인과 아벨에게 "일 년에 한 번씩 하나님께 꼭 제사를 드리는데 짐승을 잡아 피를 흘려 제사를 드리라."고 신신당부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인본주의적인 성격을 가지고서 '자기가 원하는 데로 제물을 만들어서 제사 지내면 됐지 뭘 꼭 하나님께 나갈 때 제사드릴 때 짐승의 피를 흘려야 되냐?' 그래서 제사를 드리는데 가인은 자기 마음대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사람 손으로 만든 농사지은 농산물을 가지고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재단을 쌓았는데 불이 내려와서 응답을 해줘야 되는데 불이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자기가 기른 짐승들 중에 양을 잡아서 짐승의 피를 뿌리고 기름으로 향기로운 냄새가 나도록 제사를 지내니까 하나님이 기쁘게 아벨의 제사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러니 가인이 화가 났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주면, 제사를 지내면 그냥 받아 누리실 것이지, 꼬치꼬치 캐고 이렇게 까다로운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아벨은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 밝고 맑고 환했습니다. 그러니까 가인이 동생 아벨하고 이야기 하다가 돌로 동생을 쳐서 죽여서 살인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담과 하와의 인생이란 완전히 패배한 인생인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아름답고 좋은 곳에서 쫓겨났지요. 남편과 아내와 서로 말다툼을 하고 의견 불일치가 있지요. 자식 가인과 아벨을 길렀는데 형제간끼리 싸워서 형이 아우를 쳐 죽였죠. 아주 엉망, 그런 집안이었습니다. 제물은 하나님이 준비해야 되지 사람이 하나남이 만족하도록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물도 하나님께서 짐승을 잡아서 제물로 드리라고 한 것을 불순종한 것에 불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으로 보내서 사람의 죄악을 짊어지고 청산했는데 이걸 하나님 아버지가 예비한 것입니다.
우리 사람의 생명은 우리가 만든 것은 아니거든요. 모든 생물은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기 때문에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을 위해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내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태어났기 때문에 죄가 추호도 유전되지 않았습니다. 아담은 인간적인 가정생활 해서 가인과 아벨을 낳았으니까 가인과 아벨은 유전적인 죄를 가지고 있던 것입니다. 아버지를 통해서 유전된 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아무 죄를 짓지 않아도 유전적인 죽은 피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인간은 자범죄를 지어서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전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없이 성령으로 잉태하고 33년 동안 사셨지만은 죄를 실제로 절대로 짓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을 이제 하나님께서 때가 오매 유전죄와 자범죄를 예수님께 덮어 씌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아버지를 통해서 유전적으로 가져온 죄, 그 다음에 우리 스스로가 지은 죄, 유전죄와 자범죄를 예수님께 다 아버지가 내어 맡긴 것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 인류의 죄악을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엄청난 고통을 겪었습니다. 죄를 지은 영혼은 죽으리라 했으니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분열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33살에 죽으실 것을 제자들에게 늘 말한 것은 예수님도 죽는 것이 겁이 났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보통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괴로운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두려워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 같은 사람을 주님이 책임지시고 여러분을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사람처럼 만들어 주시고, 유전적인 죄가 없이 의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이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면 즉시로 예수님은 여러분 속에 들어와서 개인적으로 죄의 문제를 깨끗이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청산할 때 십자가에 매달려서 여섯 시간 동안 한없는 고통을 느꼈었습니다. 아버지가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참아, 참아, 견디어, 견디어. 잘한다, 잘한다." 그렇게 격려를 해 주었으면 쉽게 죄악을 짊어질 수 있을 것인데,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버렸었습니다. 아버지가 격려해 줄줄 기대했으나 격려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얼마나 답답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 쇼하는 말이 아닙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런 심한 고통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사람을 사랑하고 구원한 것 보십시오. 강도 두 사람이 예수님 우편, 좌편에 함께 못 박혔는데 강도 두 사람이 처음에는 둘이가 다 예수님을 향해서 욕을 하였습니다. "너도 내려오고 우리도 구원하라"고. 그랬다가 마지막에 강도 한 사람은 회개를 했습니다. 평생을 강도짓만 하고 죽을 일만 했던 그가 마지막에 예수님을 향해서 "내가 알기로는 우리는 죽어 마땅하지만은 예수님은 죄를 지은 적이 없으십니다. 주님 주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 같은 사람도 기억해 주십시오." 그가 좋은 일을 한 적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 마지막 회개를 했습니다. "주님의 나라 임할 때 나를 기억해 주시옵소서." 그래 예수님이 그 사람보고 "오늘날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여러분 이 이야기가 간단한 거 같지만 실제로 간단하지 않습니다. 악의 죄악 덩어리인 이 젊은이가 마지막 숨 끊어지기 전에 예수님을 인정한 기도를 하고 난 다음에 낙원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여러분이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겠습니까, 못 받겠습니까? 여러분은 누구보다도 강도보다는 낫지요. 우리가 초등학교 학생이라도 계산해서 할 수 있는 수학이 있습니다. 0 곱하기 1은 뭡니까? 0이지요. 0 곱하기 10은 뭡니까? 0이지요. 0 곱하기 100은 뭡니까? 100이지요. 아니지요. 0 곱하기 1000은 또 하면 0입니다. 그 0이 뭐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에 조그마한 죄를 지은 사람도 은혜에 들어가면 죄 없이 돼 버리고, 큰 죄를 지은 사람도 들어가면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이 얼마나 크기 때문에 어떤 죄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스치고만 지나가도 죄가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 흘림이 없은즉 죄 사함이 없다'는 말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종교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기독교 은혜를 가진 종교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만들어 주십니다. 믿기만 하면 그 보혈이 적은 죄로부터 큰 죄를 다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상태를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보혈을 의지하면 여러분의 죄는 예수님이 영원히 청산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찾을래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철저히 죄를 주님께서 청산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다 버리고 다 달아났습니다. 열 두 제자가 다 달아났어요. 베드로는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러고 병 고쳐준 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지지하고 나온 사람들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버림받은 상황 속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하시고 운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여러분의 적은 죄, 큰 죄 다 청산하시고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 속에 살 수 있도록 공로를 세워주신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제물
히브리서 10장 1절에 보면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거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히브리서 10장 3~4절)' 구약에 짐승 제사를 드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예를 들어 보여 주시는 것이지, 짐승의 피가 사람의 죄를 영원히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한 제물인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의 죄악을 영원히 청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여러분이나 저나 하나님이 오라고 부르시면 우리가 가슴을 펴고 희희락락하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죄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버린 것 때문에 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가 죽어서 하나님 앞에 나가지 않아도 됩니다. "허허허허~하하하하~ 아이고 하나님 고맙습니다." 즐거운 웃음으로 웃고 긍정적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가슴에 모셨으니까는 초등학교 산수 숙제를 하는 어린이처럼 0 곱하니 아무리 해봤자 다 0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피를 진정한 모습을 보고, 마음에 끌어안고 믿고 있으면 죄 사함이 영원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후로 성령이 같이 와서 성령이 여러분을 점점 의롭게, 거룩하게 살도록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는데 실제적인 변화는 성령이 변화를 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힘으로 거룩하고 성결하게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써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니 성령이 들어올 수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들어와서 성령이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을 갖다 주시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여러분에게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적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구원을 받고, 변화를 받고, 하나님 백성으로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5. 십자가와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7장 46절에 보면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처참한 고통을 여러분 대신 받았습니다.
친 제자들이 다 뿔뿔이 도망을 치고 외롭게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한 청년이 벗음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더라(마가복음14장50~52절)' 이 청년이 누구냐하면 마가요한일 거예요. 마가가 마가복음을 적었는데 거기에만 그 사건이 적혀있고 다른 성경에 적혀있지 않습니다만, 자기가 홑이불을 몸에 감고서 따라가다가 잡히며 이불 벗어버리고 발가벗은 몸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것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버림받았습니다. 그 많은 사람을 병을 고쳐주고, 도와주었건만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배반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개를 좋아하는지 아십니까. 개는 절대로 배신을 하지 않습니다. 도둑놈도 개는 자기 주인이면 따라갑니다. 제일 배신하는 동물이 누구냐, 사람인 것입니다. 사람은 예수님을 그렇게 따라다니던 열 두 제자도 다 배신했고, 예수님에 의해서 치료받았던 사람들도 다 배신했습니다. 그 다음 회개하고 성령이 와서야 변화를 받았지. 여러분도 배신합니다. 저도 배신합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변화시켜 주셔야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우리가 배신한 죄를 회개하고 성령이 배신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배신에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습니까. 결국은 십자가에서 마귀가 예수님을 마지막으로 인수인계했습니다. 아버지가 버림하고, 열 두 제자를 버림을 합하고, 예수님이 치료해준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신하시고(하고), 천지간에 버림받은 처참한 고통을 주님 다 경험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마지막 인간의 조상으로 우리를 위하여 죄를 대신해 주셔서 성령으로 거듭나게 해 주셨으니, 예수님의 그 은혜를 믿음으로 모셔드리고 배신하지 말아야 됩니다.
<결론>
로마서 5장 18절로 19절에 보면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5장17절)' 우리는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새롭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 값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사람처럼 되고, 모든 허물이 씻음을 받고, 그 예수님의 피 값으로 속사람이나 겉 사람이 병에서 고침을 받았고, 치료 받고, 예수님의 십자가 매달려 고통당하심으로 저주에서 해방이 되고,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해서 영원히 사는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사실을 단단히 마음에 새기고, 늘 묵상할 때, 묵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믿기 전에 여러분과 믿고 난 이후에 여러분, 얼마나 다른 사람이 돼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여러분 하나님 성전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여러분과 함께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여러분을 도와주셔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무엇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속에 성령이 와 계시므로 성령이 여러분을 도와주시도록 간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말씀을 성령이 묵시를 통해서 깨달아 알게 해 주시고, 또 말씀 쫓아 마음속에 믿음이 생겨나게 하시고, 믿음으로 기도해서 하나님이 기적이 일어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생활 속에 묵시가 항상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성령이 여러분 계시를 주셔서 깜짝 놀라게 진리를 깨달아 알게 해주시고, 그 다음에 기적이 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기적이 그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기적을 행하는 하나님이 안 계십니다. 근데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와 있기 때문에 우리가 믿고, 기적을 기대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우리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라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시편 103편 1절~3절)' 우리의 모든 죄악을 사해주신 것을 늘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병을 고치시며' 병 고침도 끝까지 우리가 믿고 기도하고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멸망을 당할 처지에 있을 때 주님이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이루어주시는 것을 잊지 말라고 성경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우리의 생활 속에 하나님의 묵시와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그렇게 믿음으로 기대하고 나가면 지상 낙원으로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다가 천국 영생을 얻어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돌아가신 사실을 우리가 늘 기억하고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버림을 당하고,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세상에 버림을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여러분을 배신 안 하셨습니다. 다 예수님을 배신했지만은 예수님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았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우리의 병을, 우리의 저주를, 우리의 죽음을 대신 짊어지고 여러분을 끝까지 책임지신 것입니다. 우리를 끌어안고 책임을 져주신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 생활이 나와 같이 사시는 생활을 하시고 계십니다. 오늘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 속에 와 계시고, 여러분과 함께 사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주님을 찬미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