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속에서 영국이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설마~' 했던 일이 현실로 이루어진 게다. 영국 국민들은 유럽 경제 통합의 길을 모색해 오던 EU를 탈퇴함으로 고립주의의 길을 걷기로 선택했다. 공생, 상생, 동반자의 길보다 더 급선무가 '우리가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28개국이 함께 살자고 손을 잡았던 EU에서 탈퇴를 결정한 것이다.
그럼 글로벌 시대에 영국 국민들은 도대체 왜 그런 결정을 한 걸까?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현실에 있을 것이다. 최근 세계 경제는 난항을 겪고 있다. 경제 성장 둔화 내지는 침체의 길에서 허덕이고 있다. EU 국가들 대부분도 그렇다. 그나마 영국은 경제적 안정과 성장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EU국 국민들이 영국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값싼 노동력을 제공했다. 그러다 보니 영국 국민들이 직장을 잃게 되는 현상을 초래하게 되었다. 그래서 노동자 계층의 사람들은 동요했다. '이민이고 난민이고 상생이고 뭐고 다 싫다. 우리가 살고 봐야 할 것 아니냐?'
영국 국민들이 EU를 탈퇴하고자 결정한 또 다른 원인도 있다. 그들의 자존심이다. 'EU를 위해 의무와 책임을 잘 수행하지만, 돌아오는 게 뭐야? 누구 좋은 일 시키는데?' EU에서 독일이나 프랑스보다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니 대영제국의 체면이 손상된 게다. 자존심, 명예, 영국의 주권을 회복하고 싶은 게다.
'세계는 하나다'는 이상주의가 무너져 내렸다. 오랜 세월 동안 '영국이 EU에서 탈퇴할 건가? 잔류할 건가?'를 두고 난항을 겪었다. 지금까지 갈등과 분열을 거듭해 왔지만, 앞으로도 쉽게 잠재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고립의 길을 선택한 영국이 갈 길도 멀고 험난하다. 세계 경제에 엄청난 역할을 감당하던 영국의 금융산업이 불안해지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큰손들의 움직임들이 부산하다. 해외 투자에 대한 급격한 변화가 일고 있다. 금융시장과 증권시장이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다. 세계 경제의 대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세계 판도는 엄청난 지각변동을 하게 된다. 앞으로 네덜란드, 프랑스, 체코에서도 EU 탈퇴 바람이 불지는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한편 영국을 통해 EU를 움직여 오던 미국에 불똥이 튀었다. 영국이 고립의 길을 걸으니 앞으로 미국은 유럽과 어떻게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갈 것인가? 상대적으로 러시아의 영향력은 더 커질 것이다.
국제사회와 세계 경제는 그렇다손 치고, 한 개인의 인생 여정도 만만치 않다. 수많은 악재들이 숨어 있고, 베일에 싸인 불확실성 속에서 가슴앓이하고 눈물을 머금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듯 누구나 나름대로 '야심찬 인생 설계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야심찬 인생 설계도를 향해 힘차게 나가는 우리의 발걸음을 멈칫하게 만드는 '장애물들'이 있고, '뜻하지 않는 복병들'이 숨어 있다. 그래서 주저하고, 주저앉고, 포기하기도 한다.
모세의 대권을 이어받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야 하는 여호수아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인생의 장벽들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았다. 사실 어려운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을 때는,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부터 정비해야 한다.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일어나면 자꾸 '내 목소리'가 높아지고, '내 감정'이 앞서고, '내 생각과 방법'을 고집하게 된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사람의 목소리를 들리게 하지 말자고 요청했다. 잠잠하고 침묵하라고 요청했다. 성도의 침묵은 '저항적 침묵'이 아니다. '무지의 침묵'도 아니다. '자기 성찰의 침묵' 그 이상이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는 침묵'이다.
우리가 잠잠한 그곳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 보인다. 사람들이 너무 분주하고 시끄러우면 '닫힌 문'이 더 굳게 닫힌다. 굳게 닫힌 문을 여는 것은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 가능하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위해 '잠잠하고 침묵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감동에 주시해야 한다.
여호수아가 선택한 것은 '하나님의 말도 안 되는 명령' 앞에서 순종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기에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대로 움직였다. 리더십의 대가 존 맥스웰은 성공적인 리더는 자신의 강점에 70%, 자신의 약점에 5% 정도 초점을 맞추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가 내린 리더십의 결론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자신의 강점을 살리라. 둘째, 자신의 약점을 사랑하라. 셋째, 그 둘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강점도 약점도 사용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요단강에 '마른 땅'을 내고 여리고의 닫힌 문을 열어젖힐 뿐 아니라, 철옹성 같은 성벽을 아예 무너뜨리고 목표를 향해 전진하게 하신다.
때로는 '지루하게 계속되는 어려움과 문제' 앞에서 실망해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엿새 동안 동일하게 행했다. 여호수아는 '일곱째 날 새벽 일찍' 일어났다. '전과 같은 방식으로' 성을 일곱 번 돌았다. 아무리 지루하고 답답해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곱째 날'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집중했다.
사실 말이 그렇지, 그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일곱째 날까지 하나님께 집중하려면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으신 게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을 그만큼 신뢰하지 않는 게 문제다. 하나님은 일곱째 날 새벽이 되면 움직이실 것이다. 그때까지 지루하고 답답해도 잘 기다리고 견뎌야 한다.
누가 뭐래도 하나님께서는 1년 365일 밤이나 낮이나 자기 백성들을 위해 일하신다. 그러나 '새벽'에 철옹성 같은 여리고가 무너지고, 사단이 물러가고, 문제와 어려움이 도망하는 기적이 일어난다. 새벽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더 분명하게 분별하는 은총이 내려온다.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과의 만남을 이루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일이다.
그런데 새벽을 깨우는 게 쉽지 않다. 인간의 리듬을 거스르고 본성에 저항하는 일이기 때문에! 하루종일 지치도록 분주하게 활동하고 밤늦도록 컴퓨터와 텔레비전이라는 문화생활(?)에 젖어 있는 현대인이, 새벽 시간의 달콤한 잠을 깨운다는 건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 새벽에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걸 포기한다. 새벽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기적들을 모른 채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확실한 시대에 안정되고 고요한 마음으로 살아가려면, 새벽에 하나님이 주실 은총에 집중해야 한다. 사람들이 중국 선교에 헌신했던 허드슨 테일러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일생을 사역자로 보낼 수 있었습니까? 그렇게 행복하게 사역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럴 때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 헌신과 행복의 비결은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연주자는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 악기를 조율합니다. 음악회가 끝난 뒤 조율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이겠지요.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님의 뜻과 맞추는 일부터 합니다. 그러면 인생이 보람 있지요."
나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고 있는가? 새벽 시간을 하늘을 향해 열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면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현장을 열어 드리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