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목소리가 참 좋다는 과분한 칭찬을 자주 듣는 편이다. 조금 겸손하지 못한 고백일지 모르겠으나, 가끔은 그 당연한 칭찬을 듣지 못하면 은근히 서운한 마음이 들어 혼자 멋쩍은 웃음을 지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 기억은 어김없이 아스라한 변성기 시절, 거실 한구석에서 늘 친구처럼 나를 반겨주던 검은색 피아노 앞으로 나를 데려간다.
남자는 한 옥타브가 낮아지고 여자는 한 옥타브가 올라간다는 변성기 시절, 나는 유독 좋은 목소리의 소유자가 되고 싶었다. 조바심이 나던 사춘기 소년은 결국 아버지에게 길을 물었다. 나의 아버지는 젊은 학창 시절 테너 가수를 꿈꾸시던 분이었다. 평소에는 아주 나직한 저음으로 말씀을 나누시다가도, 조용히 애창곡 ‘가고파’를 열창하실 때면 테너 가수 뺨치는 고운 고음을 뽑아내시던 멋쟁이셨다.
질문을 받은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시며 비결을 일러주셨다. “목이 조금 아프더라도, 피아노 건반을 누르며 도·레·미·파·솔·라·시·도 여덟 음에 네 목소리를 정확히 맞추어 보아라.”
그날부터 나는 친구 같은 검은색 피아노 건반을 누르며 목청을 가다듬었다. 누군가는 철없는 시절의 우스운 일화라 할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도 아버지가 전해주신 그 방법을 굳게 믿는다. 좋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바른 마음의 자세와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버지는 피아노 건반을 통해 미리 일러주신 게 아닐까. 나아가 그것은 세상의 소리에 귀를 닫고, 오직 창조주께서 내게 주신 본연의 맑은 소리를 찾으라는 영적 훈련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른 새벽,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나직한 지저귐을 들으며 깊은 그리움에 잠긴다. 창조주의 호흡이 담긴 새벽 공기 속에서 목소리를 생각하면 할수록, 이제는 아무리 기억 속을 헤집어봐도 이 땅에서는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소중한 이들의 음성이 사무치게 그리워져 끝내 눈물이 고이고 만다.
언제나 세상 그 누구보다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불러주시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음성은 낙심할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우던 하나님의 위로와 닮아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50년 전 불의의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난 두 살 위의 형님이 떠오른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형님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살아있었다면 백만 불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청량한 사이다 같았던 목소리. 하나님은 왜 그리도 아름다운 목소리를 이 땅에 오래 두지 않으시고 그토록 일찍 하늘나라 성가대로 부르셨을까. 그 청량했던 형님에 대한 그리움이 이 새벽, 걷잡을 수 없는 파도처럼 밀려온다.
화려한 미사여구는 없었어도 오직 사랑과 다정함으로 가득 찼던 부모님의 음성, 그리고 청량함 그 자체였던 형님의 목소리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값비싸고 완벽한 ‘하늘의 기준음’이었다. 얼마 전 월드컵 개막식에서 전 세계를 울린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의 목소리가 짜릿한 전율을 준 이유도, 그 안에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영혼의 울림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물며 내 가슴에 영원히 박힌 가족들의 목소리는 오죽할까. 우리는 이렇듯 그리운 목소리들을 마음에 품은 채, 언젠가 천국에서 다시 만날 그날을 소망하며 인생의 빈칸을 채워간다.
젊은 날의 내 목소리는 어쩌면 내 주장만 앞세운 크고 높은 소리, 세상의 명예만을 좇던 시끄러운 꽹과리 소리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인생의 사계절을 지나며 하나님의 손길로 다듬어진, 낮고 다정한 예수님의 음성 닮은 목소리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
오늘 아침, 내 마음속 검은색 피아노 건반을 조용히 차례로 눌러본다. 먼저 떠난 소중한 이들과 주님이 하늘에서 듣고 미소 지으실 수 있도록, 그리고 지친 누군가의 영혼을 따뜻하게 깨울 수 있는 상한 심령의 소리를 준비하며, 새벽 제단 앞에 나지막이 기도를 읊조려 본다.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