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주위에는 너무 끔찍한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습니다. 갑작스런 자연 재난으로 인해 수 천명이 죽고, 무서운 전염병으로 인해 수 만명이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고, 명분없는 테러로 인해 지구촌 곳곳에서 죽임을 당하는 무고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환경변화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내일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그리 놀라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일이 자기 자신과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자기와 관련된 일에는 엄청나게 놀랍니다. 자기에게 닥친 별것 아닌 어려움을 보고 깜짝 놀라고, 자기 삶에 닥친 크지 않은 고난 앞에 소스라치듯 놀라고, 자기 몸에 일어나는 조그마한 이상 증세를 보입니다. 마치 그 일로 인해 세상이 끝난 것처럼 놀라고, 자기 생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크지 않은 사고가 발생해도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놀랍니다. 만약에 자기가 죽을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면 그 어떤 사람의 위로의 말도 자기 귀에 들리지 않게 됩니다.
이런 자기 중심적인 시대에 우리는 부활절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은 예고없이 일어난 일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스스로 말씀하신대로죽으신 지 삼 일만에 무덤에서 살아나심으로 인해 발생한 실재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세상에 과시하기 위해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모든 인류에게 죽음은 더 이상 끝이 아님을 몸소 보여 주시기 위해 죽음에서 살아나셨습니다. 나아가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를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질 것임을 확증하기 위한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인류가 가진 죽음의 공포를 이기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미리 보여준 사람이 바로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입니다. 예수님깨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에 누이인 마리아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5-26) 이 질문은 부활주일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질문입니다. 부활주일은 예수님의 질문 앞에 우리 스스로가 대답해야 하는 날입니다.
부활주일은 부활이 "남의 일이냐?" 아니면 "나 자신의 일이냐?"를 확인하는 날입니다. 부활주일은 부활이 "우스운 야야기냐?" 아니면 "실재상황이냐?" 를 확인하는 날입니다. 누가 어떤 대답을 선택하든 상관없이 부활은 실재상황입니다. 부활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알리는 실재상황입니다. 부활은 죽음의 권세 아래 억눌려 사는 인류에게 가장 큰 희망을 주는 실재상황입니다. 부활이 실재상황임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부활주일을 맞이할 때마다 부활이 실재상황임을 새롭게 깨닫고 그 실재상황이 주는 기쁨과 감사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차고 넘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