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자존감은 회복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에는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가 함께 들어있다. 먼저 좋은 뉴스부터 말하자면 자존감은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갑지 않은 뉴스는 자존감 회복의 과정에는 손쉽고 빠른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존감에 대한 글을 마무리 하면서 오늘은 자존감 회복에 필요한 요소들과 방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어리석게 느껴지는 질문으로 시작하자. 우리는 자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자신에 대해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으며, 자존감과 관련하여 특별히 자신에게 입히고 있는 상처와, 자신을 불신하는 위험함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나에게 스스로 입히는 상처가 무엇인지 알아야 건강한 자기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 손상된 자존감의 원인이 다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물론 우리의 자존감을 낮게 만든 환경적 요인들은 분명히 존재했다. 우리는 죄로 물든 세상에 살고 있고,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의 자존감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사람들 역시 죄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최선이 우리에게 최상의 사랑이 아니였으며, 그들 역시 상처를 가지고 서투르게 우리를 대해 왔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타인에 의해 생긴 부적절한 자존감의 원인을 밝혀내는 작업에 몰두하기보다는 오히려 우리 스스로 입히고 있는 상처에 대해 알고 그것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통제(control)가 가능한 것은 타인도 환경도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자존감을 세워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의식적으로 사는 삶의 태도가 있어야 한다. 의식적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의 행동과 삶의 목적, 가치와 목표에 관련된 것들을 적극적으로 알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의식적으로 사는 노력을 하지 않고 가장 쉽게 정신을 배신하는 방법은 자신을 당혹스럽게 하는 현실에서 도망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보고 싶지 않거나 알고 싶지 않으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태도로 현실을 무시하며 사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늘 이런 말을 하게 된다. “나도 내가 ~하다는 거 알아. 하지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질질 끌면서 계속 그 상황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형태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자기 행동의 의미와 동기를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자기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는 패턴을 반복하는 것이다. 의식적 삶이란 아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며, 경험하고 아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스스로 변하거나 성장할 수 있다는 자신의 힘을 과소평가한다. 어제의 ‘나’와 내일의 ‘나’가 같을 것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하며 자신의 발전 가능성을 한정 짓는 경향이 우리에겐 있다. 자아는 포기하거나 부정당해서는 안되며, 실현되고 축복 받아야 한다.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이 바로 우리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존감을 세워가기 위한 또 다른 요소는 자기를 수용하는 것이다. 나를 소중히 여기고 존중해야 하며, 나의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성폭행이나 왕따 같은 끔찍한 폭력적 상황을 경험한 후에도 불행의 원인을 자신에게 찾으며 죄책감과 열등감을 갖기 쉬운 것이 인간의 연약함이다. 자기를 위로해야 하는 상황에서 조차도 자신을 비난하는 경우가 우리에겐 얼마나 많은가? 부당한 상황에 처했을 때 화가 나는 것은 죄가 아니며, 상처 받았을 때 슬픈 것은 부적절한 감정이 아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화남과 슬픔을 느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단순히 해석하는 무지를 우리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화나고 슬픈 그 감정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며 표현하는 방법인 것이다. 절망하고 분노하고 좌절하는 그 지점이 어느 때보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야 하는 순간이며, 그 간절함이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선명히 경험하게 되는 순간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그 자리를 내어 놓는 것이 신앙인의 모습일 것이다. 나의 감정을 들여다 보는 용기조차 갖지 못하고, 나의 감정을 살피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게 되면 결국 영적 가면을 쓰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실 영역을 제한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부디 알아야 한다. 모든 아픔이 내포하는 두 가지 가능성은 치유의 가능성과 인격적 성장의 가능성이며, 치유와 인격적 성장을 위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기다리는 신앙적 태도는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자존감 회복을 위한 세 번째 요소는 행동함이다. 자신의 가치를 정확히 알고 자신감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과 같은 의미이며, 자신에 대한 확신에는 단순한 판단이나 감정을 넘어서는 힘이 있다. 이 확신은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며 행동할 수 있도록 이끈다. 반대로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이 확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이 둘은 서로 원인이 된다. 그리하여 우리의 행동과 자존감 사이에는 끊임없는 순환고리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 자존감의 수준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영향을 끼치고,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자존감의 수준에 영향을 끼친다. 늘 생각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높은 자존감을 갖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작은 것부터 행동으로 옮겨야 하며, 작은 성공들이 쌓여가는 경험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행동할 수 있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행동을 이끌어 내는 자존감의 연료는 ‘신념’이다. 이 연료 탱크를 무엇으로 채울 지는 결국 내 삶의 목적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결정될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라는 것과 창조주가 만든 목적과 섭리에 부합되는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가 가장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우리가 그 사실을 계속 회피하는 것은 ‘내가 보고 싶지 않거나 알고 싶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고 싶은 우리의 습성 때문인 것이다.
LA를 올라갈 때마다 늘 공사 중인 5번 프리웨이를 만난다. 도로를 보수하고 넓히는 작업 탓에 겪어야 하는 교통체증이 달갑진 않지만, 그 모습이 건강한 자존감을 회복해 가는 우리의 과정과 많이 닮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하나님이 당신의 그 아름답고 존귀한 이미지 대로 우리 안에 심어 주신 귀한 보물을 찾아가는 길이 쉽고 편하지는 않을지라도 진정한 우리를 찾아가는 그 아름다운 여정에 하나님의 개입하심과 우리의 적극적 노력이 함께 하길 기대하며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