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진화: 죄는 진화합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말이 있지요? 바늘 도둑이 하루 아침에 소 도둑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늘 도둑이 샤프 도둑 되고, 샤프 도둑이 만년필 도둑이 되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결국 소 도둑으로 진화되는 것입니다.
진화의 네 단계: 성경은 이러한 죄의 진화를 네 단계로 나눕니다.
(1) 첫 째, 양심에 찔리는 단계입니다. 죄를 범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찔려 죄책감을 느끼고 아파하는 단계지요.
(2) 둘 째, 찔림이 점점 무뎌지는 단계입니다. 첫 번째 단계에서 회개하지 않으면 도달하게 되는 단계입니다. 예전에는 죄를 하나만 지어도 아팠지만 이제는 열 개를 지어야 아프게 되고, 얼마 전에는 죄를 열 개를 지어야 아팠지만 이제는 백 개를 지어야 아프게 됩니다. 결국 백 개는 천 개, 천 개는 만 개로 늘어나지요.
(3) 셋 째, 더이상 찔림이 느껴지지 않는 단계입니다. 두 번째 단계가 지속될 때 찾아오는 단계로써 "영적 문둥병"이라고 불립니다. 아무리 죄를 지어도 아프지 않게 되지요. 이러한 자들은 회개할 이유를 찾을 수 없게 되어 회개하지 않고, 결국 양심에 화인 맞은 자가 되어 죄 속에 거하게 됩니다.
(4) 넷 째, 다른 죄인들을 옹호하고 그들더러 "잘했다" 칭찬하는 단계입니다. 세 번째 단계 속에서 오래 머무를 때 찾아오는 단계로써 로마서 1:32에 그들의 모습이 잘 나와 있습니다.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들은 마음에 찾아오는 거룩한 찔림을 외면치 말고 그 즉시 회개할 수 있도록 자신을 늘 마름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찔림의 복: 사도행전 2:27b에는 베드로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이 찔"리는 자들이 등장합니다. 여기에 "찔려"라고 번역된 헬라어 카테누게산(κατενύγησαν)은 카타누쏘마이(κατανύσσομαι)의 수동태 형으로써 '난폭하고 무자비하게 찔리다'는 뜻입니다. 좌우에 양날검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죄인들의 심령 속에 들어가 그들의 죄성을 난폭하고 무자비하게 찔렀던 것입니다.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던 이들은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대신 "우리가 어찌할꼬?" 간절히 호소하며 거룩한 찔림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반응합니다. 그러자 죄인의 회개를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죄의 일단계에 있던 그들이 이 단계로 진화하지 못하도록 거룩한 방해를 하십니다. 결국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쓰"는 거룩한 성도가 됩니다.
찔리기 위해서 할 일: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이러한 거룩한 방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행 2:37a)" 사도 베드로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찔림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듣다"라고 번역된 헬라어(ἀκούω)는 '소리를 듣다'는 의미가 아니라 '소리 속에 담긴 의미를 깨닫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자들이 거룩한 찔림을 통한 거룩한 방해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랍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죄의 네 단계중 어느 단계에 속해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거룩한 찔림을 받고 그분의 존전에 무릎을 꿇었던 적이 언제입니까? 지은 죄에 가슴아파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적은 언제입니까? 그랬던 순간들이 먼지묻은 기억 속 어딘가에 묻혀 있나요? 그렇다면 바로 지금이 하나님의 말씀을 펼 때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펴세요. 그리고 그 말씀을 읽으세요. 하나님께서 간절히 회개를 구하는 자들에게 성령의 검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오늘, 깊이 회개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내가 죄를 범할 때 마다 외면치 마시고 당신의 말씀으로 신속하게 찔러 주사 나로 하여금 즉시 회개케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