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동하게 하셔서, 터키를 찾아와 난민촌에서 나그네의 삶을 사는 이들의 의식주와 관련된 기본적 생활을 돕고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사역을 하기 위해 저는 난민촌을 찾았습니다. 2박 3일 일정으로 디야르바크르, 씨르트, 바트만, 샨르우르파 등 시리아와 이라크를 접하고 있는 터키 동남부 일대의 난민촌 답사를 다녀온 것이지요. 그래서 다음에는 그 이야기를 자유로운 형식으로 나누고자 합니다.
11월 23일 마르딘(Mardin) 공항에서 내려 차를 렌트하여 마르딘 주변을 돌아보다, 저녁 7시가 넘어 디야르바크르로 핸들을 돌렸습니다. 다음 날 디야르바크르에서 사역하시는 K선교사님을 만나 도움을 받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디야르바크르 근처에 츠나르(Çınar)라는 작은 도시가 있는데, 그곳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었습니다. 츠나르 근처 인적이 드문 호숫가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숙박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 2박을 차에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양치와 세면용으로 사용할 큰 물통 한 개와 식용으로 쓸 작은 물병을 몇 개를 사서 차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2박 3일 동안 '씨밋(Simit)'이라 불리는 도넛 모양의 빵을 식사 대용으로 6개 사서 갔습니다. 한 끼에 한 개씩 먹으면 되리라 나름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기름도 아끼려고, 시동도 끈 상태에서 그냥 차 문만 잠그고 내복과 체육복 바지와 청바지와 파카를 껴입고, 추워서 잠이 안 올까 염려하여 멜라토닌이라는 수면유도제까지 먹고,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습니다. 피곤했는지 금방 잠이 들었는데, 얼마나 잤을까... 서서히 두툼한 이불과 옷을 통과하여 살 속을 파고드는 한기 때문에 도저히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가 조금 넘었더군요. 하는 수 없이 차에 시동을 걸어 히터를 틀어 놓고 자리에 누웠는데, 갑자기 난민들도 이렇게 추위 속에서 잠을 청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에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 최저 기온이 영상 1도였는데도 잠을 이룰 수 없었는데, 이제 본격적인 추위가 찾아오면 난민들 잠자리가 많이 힘들겠구나 하는 걱정이 많이 되더군요.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한 씨밋 1개와 물로 아침을 해결하고, 간단히 양치를 하고, 수건에 물을 적셔서 고양이 세수를 했습니다. 차에서 숙박을 해결하려니 모든 것이 힘들었습니다. 이틀을 이렇게 생활해도 힘이 드는데, 난민들은 짧게는 수 개월, 길게는 몇 년 동안을 이것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 생활하고 있으니 그들의 불편함과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이렇게 난민들의 어려움과 애로 사항을 조금이나마 체험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씨르트
디야르바크르에서 출발하여 약 3시간를 달려가서 씨르트(Siirt)라는 곳에 도착했는데, 이곳은 다른 지역과 다르게 어떤 독지가가 자신 소유의 주택 여러 채를 임시로 난민들에게 무료로 임대해 주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곳에도 이라크에서 넘어온 예지디 난민들이 약 500명 가량 생활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난민들의 관리 감독은 시에서 맡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예지디 난민들은 겉보기에는 좋은 주택과 조건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사실 그렇기도 합니다), 이것은 잠시 동안이라고 합니다. 주인이 무료로 난민들에게 임대를 해 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고, 실제로 조만간 주택을 비워 달라는 요청을 한다는 소문이 있어 주택 문제가 현실로 다가올 개연성이 다분한 실정입니다. 게다가 터키가 겨울 우기에 접어들어 내년 4월까지는 비나 눈이 계속 오고 추울 텐데, 주택에서 내몰리면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생필품도 많이 모자란 실정입니다. 식량 배급도 옥수수죽 같은 음식으로 하루 3끼를 해결하고 있어 영양 문제도 상당히 있다고 합니다.
난민촌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이들 중 초·중·고등학교에 다닐 어린이·청소년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이들이 난민촌에 머무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허송세월만 하는 것 때문에 고민이라는 것입니다. 영어나 컴퓨터 등 앞으로 인생을 살아갈 때 기본적으로 필요한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습니다. 또 청소년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근처 공장에 가서 노동을 한다고 합니다. 하루 20리라(8천 원 정도)의 일당을 받고 있다고 하는군요.
이곳에서는 원한다면 시 측이 아이들에게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이들이 난민촌에 머무는 동안 여러 가지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밤에 도착한 바트만 지역. ⓒ선교회 제공 |
◈바트만
바트만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이라크에서 넘어온 예지디인들의 난민캠프가 있는 곳입니다. 이곳도 바트만시에서 관리·감독을 하고 있어, 시 관리인들의 허가가 있어야만 출입과 구제활동 등을 할 수 있습니다. 바트만에는 늦은 밤에 방문해서 예지디인들을 만나는 게 힘들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관리인들이 K선교사님과 교제하고 있던 하와스라는 청년과 그 친구들을 불러내 면회를 허락해 줘서 교제할 수 있었습니다.
하와스라는 청년은 이라크에 있을 때 학교 선생님이었다고 합니다. 영어를 조금 할 수 있어서 대화하는 데 수월했습니다. 그는 이곳도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위한 학교가 없어 문제라고 했습니다.
이곳도 시의 관리·감독이 심해 마음대로 활동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곳도 난민들에게 휴대전화 소지와 외출을 허락하고 있어, 제한적으로나마 SNS를 통해 교제하며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길이 있었습니다.
◈샨르우르파
바트만에서 차를 타고 디야르바크르에 K선교사님 부부를 내려드리고, 디야르바크르를 지나 바로 샨르우르파(Şanlıurfa)로 향했습니다. 바트만에서 디야르바크르까지는 차로 5시간 넘게 걸리는 여정인데, 시간이 없는 관계로 밤길 운전이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야 했습니다. 이곳은 쿠르드족 민병대와 터키 군인들 간의 교전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지역이고, 요즘은 IS 대원들의 테러도 일어나는 곳이라 특히 밤길 운전은 위험했습니다. 실제로 곳곳에서 터키 군인들이 검문·검색을 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밤 12시경에 샨르우르파 인근 인적이 드문 곳에 차를 세워두고 대충 고양이 세수와 양치를 한 후 차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와야 해서, 새벽에 일어나 씨밋과 물로 대충 아침 식사를 하고 인근 난민캠프로 향했습니다. 샨르우르파 인근 수루츠(Suruç)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도 정부가 운영하는 난민캠프가 있습니다. 이곳은 다른 곳과 달리 시리아 코바니에서 온 아랍계 시리아 난민들이 모여 있습니다. 지금은 많은 난민들이 고향 코바니로 돌아갔고, 갈 곳 없는 나머지 난민들이 추운 겨울을 나고 있었습니다.
▲한 아이에게 귤을 건네줬다. ⓒ선교회 제공 |
아침 일찍 방문해 그런지 시에서 나온 관리인들과 난민들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캠프 울타리 주변을 돌아보고 있는데, 멀리서 제 아들보다 조금 커 보이는 한 아이가 달려 왔습니다. 관리자가 없어서 그런지 울타리 밖으로 자유롭게 나왔다 들어가곤 하였는데, 밖으로 나온 아이에게 아침을 먹었느냐고 물어 보니 먹었다고 했습니다. 배가 부르냐고 물으니 곤란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래서 차에 있던 귤 3개를 주었는데, 아주 좋아하더군요. 먹을 것을 좀 준비해 올 걸 하는 후회가 많이 들었습니다.
그 아이도 좋았는지 바로 달려와서 제 양쪽 볼에 키스를 하며 감사를 표했습니다. 마음이 짠해지며 코끝이 시큰해져 왔습니다. 아들 생각이 나 더 애틋한 마음이 들었나 봅니다. 이제 겨울이 다가오는데 거의 모든 아이들이 얇은 옷 몇 개를 겹쳐 입는 것으로 추위를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많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터키 동남부에는 아직도 많은 곳에서 정부와 시가 세운 난민캠프, 그리고 도시로 스며든 난민들이 각자 생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시간관계상 마르딘, 디야르바크르, 씨르트, 바트만, 샨르우르파만 답사를 다녀왔지만, 이 외에도 쉬르낙, 미디얏, 비란쉐히르, 실로피, 지즈레, 가지안테프, 하타이, 비스밀, 에르가니 등 많은 도시에서 시리아·이라크 난민들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전망
시리아 내전과 급진 이슬람 단체인 IS와 관련된 정세가 터키·이란, 미국, 러시아, 유럽 등 주변 국가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얽히고설켜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여러 국가에서 지금처럼 자기들의 이익만 앞세워 행동한다면 이 문제와 난민 문제 해법도 요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다국적군이 전투기와 미사일을 이용한 폭격 위주로 작전을 수행하고 있지만, 앞으로 IS를 박멸하기 위해 지상군을 파병할 가능성도 다분하고, 만약 그렇게 되면 다시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다시 난민들이 터키로 몰려올 것으로 예측됩니다.
▲샨르우르파 지역. ⓒ선교회 제공 |
◈사역
시리아와 이라크 고향 땅을 두고 떠나 온 난민들은 자신들이 가진 이슬람에 대한 정체성 혼란과 거부감이 아주 높아진 반면, 기독교인들이 사랑으로 섬기는 것을 보고 마음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복음 전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이기에, 주님의 이름과 사랑으로 섬긴다면 많은 영혼들이 주께 돌아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오고 얼마 후 혹독한 일제의 식민통치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우리 민족의 몸과 마음은 가난해졌고, 상한 심령으로 복음이 뿌려졌을 때 말씀이 잘 자라날 수 있는 옥토로 준비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복 주시고 세계 선교를 위해 사용하시려는 하나의 연단이었던 것처럼,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넘어 온 난민들에게 내전과 IS의 횡포를 허락하신 것에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계획이 숨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나서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며, 물심 양면으로 도움을 주고, 복음을 증거하는 데 온 힘을 다하길 바라실 것입니다.
◈마무리
이제 터키는 겨울 우기에 접어들어 내년 3월까지는 춥고 비나 눈이 계속될 겁니다. 식량을 우선적으로 제공하다 보니 겨울옷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거의 모든 난민촌의 형편이며, 일단 바람과 비를 막아 주는 텐트는 겨울의 한기를 막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이 역시 거의 모든 난민촌이 처한 상황입니다. 참고로 작년 터키의 겨울은 몇십 년 만에 최고로 춥고 눈이 많이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난민 문제가 IS의 테러와 다국적 연합군 이슈에 밀려, 작년과 올해 중반보다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상황입니다. 당연히 지원과 보급이 많이 줄고 있습니다. 많은 난민들이 터키 전역과 유럽, 고향으로 이동했다지만, 많은 난민들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난민들의 경우 그래도 갈 곳이 있고 경제 여건이 뒷받침되는 반면, 난민촌에 남아 있는 이들은 정말 아무것도 없기에 진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분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의 손길이 더욱 필요한 때라고 생각됩니다.
◈기도제목
-시리아와 이라크를 위한 기도: 주변 나라들과 세계 열강들의 얽히고설킨 이해 관계로 인해 혼란 속으로 빠져드는 시리아, 수많은 예지디인들을 학살하고 소녀들과 여성들을 납치하고 강간하는 ISIS(혹은 IS)가 하루속히 퇴치되어 시리아와 이라크 땅에 주님의 평화가 임하도록 기도해 주세요.
-난민들을 위한 기도: 장기간 지속되는 난민 생활로 점점 피폐해지는 시리아·이라크 난민들에게 복 주셔서, 물심양면으로 많은 온정의 손길이 끊이지 않아, 고통받고 있는 영혼들이 위로받고 소망을 갖고 모진 세월을 잘 버틸 수 있는 힘을 얻도록 기도해 주세요.
특별히 수백만 명의 죄 없는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탐욕과 죄악 때문에 고통당하며, 현재와 미래를 저당잡혀 아무런 소망 없이 살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현재의 생활에 있어 중요한 의식주 문제와, 미래에 다가올 중요한 교육 문제가 잘 해결되도록 기도해 주세요.
-후원을 위한 기도: 레팜이 이제 처음 시작하는 단계인데, 뜻을 합하여 일할 동역자들을 많이 보내 주셔서 고통당하는 영혼들을 더욱 많이 위로하고 돌아볼 수 있기를 기도해 주세요. 할 일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영혼들은 많지만, 사역자나 재정(후원금), 보급품이 턱없이 모자란 실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실한 주의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많은 후원자들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도록 기도해 주세요.
[성지선교회가 레팜선교회로 명칭을 바꾸고 새롭게 출발합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가장 시급하게 생각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기도하다, 약한 자들과 영혼들을 돌보고 구원하는 일이라 확신하고 모든 스태프와 선교회 시스템이 난민들 섬기는 것과 영혼 구원 사역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안락함을 모두 버리고 광야로 나가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레팜(Refugees Family) 선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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