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0장의 선한사마리아인 비유를 보면, 한사람이 쓰러져 있습니다. 그 사람은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장애인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이 사람이 왜 쓰러졌습니까?’ 이유는 강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강도를 왜 만났습니까? 강도하고 원한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은 원래 강도가 많았습니다. 강도당한 사람은 사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사실 그 길을 가는 사람은 강도가 나오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아무 죄도 없습니다. 만일 이 사람이 오늘 나오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이 강도를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장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장애는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든 오는 것입니다. 만일 주위의 장애인 분들이 안 태어났다면 장애가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장애를 입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죄에서 이미 죽은, 사망선고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인이기에 그 결과로 누군가는 어려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장애 중에서 가장 심한 상태의 장애가 뭡니까? 죽은 시체입니다. 장애의 최고상태가 죽음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그 장애를 향해 나아가고 있고, 또한 누구나가 그 상태를 겪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누가 좀 더 먼저 그 죽음 쪽으로 가까이 나아갔는가’, ‘누가 조금 일찍 죽음의 현상들을 몸에 지니게 되느냐’ 하는 차이지 인간 모두는 결국 똑같은 종착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최고의 장애상태라는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장애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장애를 입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입는 것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죄 때문에 장애인들이 대신 장애를 입게 된지도 모릅니다.

사실은 우리 인간은 완전히 죽은 사망의 늪에 빠진 소망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 대신 죽어주셔서 우리를 구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건강, 모든 풍족한 것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목숨과 바꿔준 것입니다. 사실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는 3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강도와 제사장과 선한사마리아인입니다. 첫 번째로 강도는 “내건 당연히 내거고, 너 것도 내것이다” 라는 완전 세상적 가치관으로 수단과 목적을 가리지 않고 물질을 추구하는 불신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두 번째인 제사장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비유하는데, 소위 자기 것만 챙기는 ‘얌체 크리스찬’이요, 그럴듯한 설교만 듣기 좋아하고 실천은 하지 않는 ‘설교중독자 크리스찬’ 같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은 네것이다”라고 생각하며, 남을 도와 줄 일도 없고, 나도 도움받을 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이며, 언젠가는 한계 상황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는 단지 도움만 받겠다는 이기적인 모순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 세 번째인 사마리아인은“내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생명을 구원받았는데, 다시 하나님께 조금도 돌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 쓰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뭐가 궁해서 그걸 도로 받습니까? 필요없습니다. 그래도 받아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받을 때 주세요, 제가 하나님이면, 가져 갈 땐 왕창 가져가고 돌려 줄땐 조금만 내어주며 생색내는 것은 안 받습니다. 본전은 어디가고 이자는 어디 갔습니까? 장애인들을 돕는 것은 사실 돕는 것이 아닙니다. 도움 받은 것을 아주 조금 주인에게 되돌려 주는 것입니다. 이자는 물론 본전도 안 계산하고 말입니다.

장애인을 돕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만일, 선한 사마리아인이 길을 가는데, 성경대로라면 누군가가 Tm러져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무도 없습니다.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길에 없습니다. 그런면 어떡합니까? 그냥 지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사장을 욕할 것이 없습니다. 사마리아인도 그냥 지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그 사마리아인 앞에는 절대 ‘선한“이란 수식어가 붙지 못합니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께 어떤 영광도 돌릴 수 없습니다. 뭐, 누가 있어야 봉사를 하든지, 사랑을 베풀지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래도 누가 쓰러져 있어야하지요. 예수님이 칭찬할래도 아무 내용이 없는데 뭘 칭찬합니까?

여러분, 장애인들과 도움이 필요한 상처 입은 영혼들이 여러분 주위에 있는 것을 축복으로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릴 절호의 찬스입니다. 하나님이 없다면 모를까 하나님이 다 지켜보고 계신데, 나중에 그래도 뭐 칭찬받을 일은 만들어야지요. 하나님은 바로 상처 입은 자들을 세우기 위해서 예수님을 죽이시면서까지 세상에 보내셨고, 교회도 바로 그런 상처입고 죽어가는 영혼을 도우며 살리기 위해서 세우신 것입니다. 장애인이라서 중요한 것이 아리라, 그가 상처입고 쓰러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중요한 것이 우리에게도 중요한 것이 되길 기도드립니다.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그 간절한 마음이 여러분의 삶의 목표가 되시길 부탁드리며, 더 큰 믿음으로 주님께서 맡기신 일들을 감당하시어 하나님의 큰 칭찬받는 축복의 통로의 삶을 사시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