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
제21장 청소년 편집증의 치료 과정
청소년 편집증의 치료는 간단하지 않다. 그것은 치료자를 신뢰하는 환자의 태도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치료에서 환자와 치료자의 유대강화는 중요한 치료의 작업이기도 하다. 다른 치료와는 달리 편집증은 의심, 상대방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바탕이라는 점이 치료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더욱이 피해의식이나 피해망상이 있는 환자에게 그 신념과 망상 자체를 수정하려는 시도를 하면, 강한 저항을 보이게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치료는 이런 저항을 줄이면서 그 핵심적인 원인을 다루는 쪽을 지향해야 한다.
1. 편집증 치료의 기초
청소년 편집증의 치료는 일반적인 편집증 치료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편집증의 치료는 편집증 환자의 이해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점에서다. 편집증상을 가진 청소년은 대개 타협하기를 거부하는 특성이 있다. 그것은 자기개념이나 자존감이 낮으므로 치료자의 의견이나 말에 따르는 것을 속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점은 치료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므로 환자의 치료에서는 처음부터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는 치료가능성과 치료진행의 문제이다.
편집증의 치료가능성은 편집적 체계와 개인의 정신기능의 상태에 좌우된다. 치료받을 환자의 편집적 체계는 얼마나 공고화되어 있으며, 얼마나 깊이 자리를 잡고 있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는 치료과정에서 요구되는 과제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환자의 자아-자원의 정도 및 그 활용 가능성을 파악해야 한다. 치료는 사실상 이 두 가지에 기반을 두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편집증 환자에 대한 치료적 개입에 따른 몇 가지 핵심사항들을 살펴보자.
1) 정신치료에서 편집증의 치료
편집증의 치료에서 정신치료(psychotherapy)는 심리적인 방법으로 치료하는 것이다. 심리학자를 중심으로 인지행동치료를 적용한 편집증과 피해망상 치료가 활발히 시도되고 있으며, 그 성과 또한 만족스러운 것으로 보고된다. 치료에는 인지치료 외에도 학파의 특성에 따른 다양한 접근들이 시도되고 있다. 이런 다양한 치료들이라고 해도 한 가지는 공통적이다. 그것은 환자가 치료자를 신뢰할 수 있는 치료적 관계를 형성하는 일이다. 그런 치료의 분위기를 위하여 치료자는 치료의 시초에는 환자의 망상을 긍정도 부정도 해서는 안 된다.
다만 편집증의 정신치료에서는 정신역동적인 규명에 집중하여야 한다. 환자가 어떻게 해서 그런 망상을 갖게 되었으며, 또 그 망상이 그 환자를 위해 어떤 심리적인 작용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처음부터 환자의 망상에 정면으로 도전하거나 그 망상을 치료하겠다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 환자가 괴로움을 당하는 불면증, 초조증, 불안 및 짜증 등에 대해서 치료자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2) 편집증 치료의 핵심
청소년 편집증 환자의 치료에서 치료자는 모든 치료적인 행동을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이들에 대한 치료는 차분하고 천천히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치료자가 일단 그들과 천천히 신뢰를 쌓아가고, 그들에게 조용하고 정중하고 솔직한 존중을 유지하고, 그들이 예상하는 업신여김이나 냉대 없이도 불안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점차적으로 인식시켜 나가야 한다. 이렇게 해서 치료자와 환자와의 신뢰관계가 형성되면, 치료에서의 다른 방법들이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된다. 편집증 치료에서 그토록 중요한 치료자에 대해 확고부동한 신뢰감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치료자는 환자와의 약속시간을 어김없이 지켜야 하고, 환자와의 면담시간을 가급적이면서도 규칙적이게 해야 한다. 이것 또한 환자가 치료자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일환이다. 그렇다고 해서 치료자는 환자의 요구를 지나치게 만족시켜 주는 방식을 취할 필요는 없다. 치료시에 환자의 요구를 모두 응해주다 보면, 도리어 환자에게 불신감과 의심만을 조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치료 초기에는 환자의 비교적 건전했다고 생각되는 과거를 부각시켜 대화해도 좋다.
반면 환자의 망상이나 편집적 사고를 멸시하는 언급을 삼가야 한다. 오히려 그런 망상 때문에 환자가 괴로워하고, 또 건설적으로 생활하지 못하는 점을 부드럽게 지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이끌어 가다 보면, 중요한 지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오게 될 것이다. 그것은 환자가 그의 망상적인 믿음에 어느 정도 회의를 느낄 때이다. 이때 치료자는 비로소 환자로 하여금 진정한 걱정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격려해 주면서 현실평가력을 강화시켜 줄 수 있게 된다.
3) 공격성의 완화와 해소작업
편집증의 치료에서 공격성의 완화작업이나 해소작업은 필수적인 요건이다. 이 과정은 물론 상당히 복잡하고 힘든 과정이기에 치료자에게는 어떤 시도를 통해서든지 환자의 공격욕구를 완화시키는 일이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과정에서 공격성의 완화와 해소는 그들로 하여금 타인과 올바른 관계형성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런 관계의 형성을 통해서 그들에게는 사랑과 미움의 감정을 조절하게 해 주는 효과를 산출하기 때문이다. 공격성의 완화는 다른 사람과의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관계성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지만, 이는 사랑과 미움의 조절을 습득할 때만 이루어질 수 있다. 치료에서 중요한 일의 하나가 바로 이 공격성의 완화 또는 해소가 일어나도록 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치료자가 반드시 유념해야 할 일이지만, 이런 공격성-완화의 문제는 치료자를 신뢰하고 따르는 관계가 형성되고 나서야만 가능해진다.
치료자와 그들과의 신뢰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되면, 그들은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를 모색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이런 현상은 가장 기대하는 측면으로서 유대관계가 강화된 상태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때 환자의 망상에 대한 연상을 시켜나가면서 망상적 해석이 아닌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는 등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환자는 자신의 망상에 대한 회의를 하게 된다. 동시에 치료자에 대한 의심이나 불신이 있다면, 그것도 자유로이 이야기시켜 나감으로써 그러한 의심과 불신의 배경에 놓여 있는 이유를 설명해 줄 수도 있다.
이런 신뢰적인 유대과정을 통하여 그들은 자신의 공격성을 점차 완화 및 해소시켜 나갈 수 있다. 그 결과로 환자는 자아의 강화를 이룸에 따라서 그 자신의 주체성을 찾을 수 있다. 이로써 환자는 믿음의 마음이 생기고, 불안과 초조증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어기전을 강화하게 된다. 환자가 이런 정도에 이르면 현실적인 갈등을 잘 처리해 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정도까지는 도달하지 못한다고 해도 적어도 그의 망상에 어떻게 적응해 갈 수 있는 방법 정도는 습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상에서 기술한 편집증 치료의 핵심은 다분히 이론적인 측면이라는 인상을 줄 것이다. 실제로 편집증 환자의 정신치료는 쉬운 일이 아니며, 단시일에 효과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약물요법과 정신치료를 병용했을 때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약물과 정신치료의 병용과정에서도 상당 기간 강력한 치료를 했을 때에만 호전되는 경우가 2/3정도는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편집증 치료의 단계
청소년 편집증의 치료는 일반적인 치료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이런 점은 편집증의 치료에서 그 방법을 달리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더욱이 편집증 환자는 외압에 의한 집단치료보다는 개인치료가 더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것은 편집증의 치료에서 일정한 단계를 중요시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1) 편집증 환자의 이해
청소년 편집증의 치료는 다른 정신질병과는 약간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편집증이 갖는 특이한 측면으로 볼 수 있는데, 거기에는 그들이 지나치게 자신을 방어하려는 경향 때문에 치료에 어려움을 야기한다는 점이 일차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치료자를 신뢰하지 못하는 그들의 철저한 의심이나 자기방어는 치료의 방해적인 요인이라는 점에서 그들에 대한 이해는 선행되어야 한다.
그들은 치료자를 만난 처음부터 의심하는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이런 행동은 투사적인 동일시로서 치료자를 박해자나 악한 대상으로 보는 행동이기도 하다. 편집증 환자는 치료에서 공격받고 이해되지 않고 있으며, 기만을 당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경우에 치료자는 점차로 가중되는 악순환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편집증 환자의 감정에 공감해야 한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치료자가 그들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것을 가리려는 일종의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려는 태도를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치료 과정에서 나타나는 그들의 대응적인 행동은 악의를 가지고 하는 것이기보다는 거의 정서적인 생존의 수단으로서 방어하는 일환이다. 그러기에 그들에게서 나타나는 투사에 대해서도 치료자는 그들이 투사할 필요가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때 치료자는 환자의 증오, 사악함, 무능함, 절망 등의 대상이나 표적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감정에 대하여 치료자는 잘 대응해야 한다. 치료자가 그런 감정을 견디지 못하여 성급하게 되돌려 주려는 시도를 할 경우에는 환자는 내적 긴장이 증가하여 더 경직될 뿐이다. 이런 현상은 다른 것이 아니라 치료자가 그들을 치료할 때에 상당한 심리적 부담감을 일차적으로 짊어져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치료경험의 단계 활용
편집증 환자가 치료자를 당황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그들이 치료자에게 치료할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라는 방식의 비난이나 지적을 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에 대부분의 치료자는 역전이로 투사하여 자신을 방어하기 쉽다. 환자가 치료자를 부적합하다고 비난하는데 대한 방어적 수단으로 강한 역전이 저항을 투사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 다음의 임상적 경험의 단계를 유의해야 한다.
첫째로 치료동맹의 첫 단계를 조성해야 한다. 치료동맹을 맺는 초기단계에서 치료자는 가급적이면 편집증 환자에 대하여 방어적인 태도를 삼가야 한다. 비록 편집증 환자나 그 주변에 대하여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해도 편집증 환자의 추정에 대하여 도전적이어서는 안 된다. 다만 치료자는 더 자세히 질문하거나 편집증 환자의 지각이나 느낌에 대하여 공감해야 한다. 이런 현상은 실제로는 치료자와 편집증 환자의 관계나 대응보다는 치료자의 내적인 싸움을 의미한다. 때로 치료자는 편집증 환자에 대한 성급한 해석으로 대응하려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일어나는 투사를 제거하고 빈번하게 일어나는 역전이 경향에 저항하려 하기도 한다.
편집증 환자는 약속시간을 잘못 알고 찾아와서도 치료자가 약속을 어긴 것으로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 말에도 치료자에게는 지혜로운 대응이 필요하다. 환자에게 화내지 않으면서도 실수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게 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때 방어가 아닌 자세로 환자의 분노를 수용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물론 이런 상황은 치료자의 환자에 대한 이해와 인내심이 요구되는 무척 어려운 작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치료자에게는 앞으로의 치료를 위해서는 편집증 환자의 투사를 받아들이고,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정보를 찾는 노력이 요구된다. 치료자는 때로 사실과는 분명히 다르게 말할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 잘못 말하였을 가능성을 기꺼이 수용해야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런 치료자의 태도는 편집증 환자의 지각의 정당성과 논의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행동이 될 것이다. 이런 것은 치료자가 환자에게서 투사된 것을 해석하여 환자에게 되돌리려는 시도를 포기할 때만 성공할 것이다.
둘째로 편집증 환자의 보호요구에 공감해야 한다. 치료에서 환자는 치료자에게 보호받으려는 심리가 작동한다. 그것은 환자가 자신이 지각한 것에 대하여 치료자에게 광범위하게 말하는 경우이다. 이때 치료자는 환자가 말하는 도중에 끼어들어 질문하기보다는 침묵하고 경청하면서 환자가 더 많이 말하면서 자신을 열어 보이도록 도와야 한다. 이로써 치료자는 환자의 말하는 태도에서 특이한 경계심에서 생겨나는 긴장상태와 편집성의 원인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치료자가 그들에게 공감의 차원에 해당하는 말을 해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면, "그래서 당신의 신경이 상처를 입었을 것입니다", 혹은 "그래서 당신은 결국 지쳐 버리고 말았군요!" 등이다. 이렇게 말하면 환자는 치료자로부터 자신이 이해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환자의 이런 느낌은 대화를 진전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치료자는 더 자세히 이야기 하도록 격려하고 환자의 이야기 진전을 도울 필요가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치료자는 환자의 현재상태가 일어나기 전에 어떤 상황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셋째로 편집증 환자의 외부적 지각을 내부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환자의 문제의 근원이 된 외부적 지각을 내부적인 지각으로 전환하는 작업은 사실상 치료의 종합적인 목표에 해당한다. 실제로 편집증 환자는 이런 전환을 통해서만 치료가 가능하다. 따라서 치료자는 의심의 반복된 공세에 격분하거나 절망하지 않는 가운데 진행하여 환자의 느낌과 실상을 구별해 나가도록 도와야 한다. 때로 치료자는 환자의 인식에 도움이 되는 질문을 하여 인식전환을 도울 수 있다. 예를 들어 편집증 환자가 직장에서의 상관에 대한 증오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 "당신의 상관이 당신을 싫어한다고 말했나요?"하고 묻는 경우이다.
이런 과정에서 편집증 환자가 "그렇지 않다"고 답변한다면, 그는 상관의 기분에 대하여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다는 방식이 된다. 이로써 치료자의 지극히 사무적인 언급이긴 해도 편집증 환자는 스스로 무엇인가를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물론 이때 치료자는 반드시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해야만 편집증 환자의 괜한 도전을 유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때 치료자는 그 일에 대하여 특정한 사람의 편을 들 필요가 없으며, 다만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함을 상기시키는 방식으로 인식의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넷째로 치료를 지속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치료의 지속적 진행은 사실상 치료의 목표에 접근하는 방법이다. 어떤 경우에도 치료가 중단되면, 일단 환자의 심리적 장애를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치료자가 치료를 장기간 지속하는 것은 편집증 환자에게 상당한 변화를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장기간이 반드시 치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치료의 장기간의 지속은 그만큼 환자의 증상의 호전이나 변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치료가 장기화 되면, 환자의 사고가 점차적으로 변화되거나 보완되는 효과가 있다. 치료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편집증 환자는 자신이 세상에 대하여 가졌던 지각하는 방법에 대하여 일단 의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의심은 변화에 긍정적인 현상으로서 나타난 것이기에 일종의 창조적 의심(creative doubt)이라고 부를 수 있다.
치료에서 그들은 창의적 의심을 통하여 자신의 내부에 있는 우울한 요소를 만나게 된다. 이 요소는 변화가능성을 위한 것으로서 그들 스스로가 경험을 조정하고 해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시작이 된다. 물론 이런 경험은 그들이 실제로 경험한 것이 아니라, 꾸며진 것으로 경험되는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자신이 무가치하고 열등하다는 느낌을 더 이상 오래 지탱하지 않게 되고, 전이(轉移)의 상황에서 우울했던 부분들을 훈습해 갈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적절한 환경이 주어지게 되면, 그들은 어린 시절의 인물과 관련되는 좌절, 인정, 사랑 그리고 친근함 등을 향한 동경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이 가졌던 애착들에 대하여 애도의 행동을 취할 수도 있다.
3. 치료 초기의 목표
치료시에는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들이 있다. 이 문제들은 치료자가 주의해야할 문제들이면서도 치료 초기에 목표를 두어야 할 것들이다. 치료는 먼저 다룰 것이 있고 나중에 다룰 것이 있다. 이런 것들이 순차적으로 진행될 때 치료는 원만하게 진행될 것이다. 치료자가 이런 점에 주의력을 기울이는 것은 치료의 진행을 원만하게 이끌어 나가는데도 유익하다.
그리고 이런 주의해야 할 문제들은 사실상 치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치료의 기초이면서도 나중에 도달할 치료의 최종목표에도 해당한다는 점에서 보면, 정신질병의 치료는 사실상 진정한 과정이 없을 정도이다. 어느 하나가 치료되면 사실상 전반적으로 치료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정신의 상태란 따로 구분하여 다룰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특성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거나 중첩되어 있다는 점에서다. 이때 다음의 몇 가지를 주의하여 치료해야 한다.
1) 치료자에 대한 신뢰의 향상
치료자에 대한 신뢰의 향상은 치료의 관건이다. 치료자에 대한 신뢰가 향상되면, 사실상 치료되는 효과를 갖는다. 치료자에 대한 신뢰의 향상은 중요한 치료의 과정이자 중요한 결과라는 점에서다. 실제로 편집증 환자는 대상에 대한 신뢰의 결여가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이들의 신뢰결여는 모든 편집증 환자들의 보편적인 문제이면서 임상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신뢰의 결여는 의심이라는 것으로서, 의심은 편집적인 성격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이다. 편집증 환자에게 의심과 편집적 방어는 자기 보호적 기능으로서 중요하게 사용되며, 현실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 옳다는 느낌을 보존하게 만든다.
편집적 의심은 이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자료를 편집적인 신념 속으로 동화시키려고 끈질기게 노력하게 만든다. 따라서 편집적인 의심은 지적인 호기심이 아니라, 현실적인 자료를 편집적 신념과 일치하도록 수정하고, 왜곡하고, 혹은 재해석하려는 계속적인 압력인 것이다. 치료자는 치료 과정에서 이 의심의 문제를 직면하여 적절히 돌파해야 한다. 치료는 사실상 이 작업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가는 치료의 관건이 될 것이다. 의심을 해소하고 신뢰할 수 있는 분위기로 이끄는 문제는 치료자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편집증 환자는 자신의 편집적 확신과는 다른 치료자의 어떤 설명이나 현실검증, 혹은 해석 등의 시도에 대하여 매우 심하게 저항한다. 그 때문에 치료에서 치료작업을 가로막는 장애를 해소하기 위해서 치료자에게는 신뢰 분위기의 조성은 우선적으로 중요시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치료자가 자신의 가장 큰 취약점을 공격한다고 느낀다. 치료의 문제는 그대로 환자에게는 공격의 문제가 된다는 역설(아이로니)을 극복해야만 하는 어려움이 되고 있다.
2) 자율성의 향상
자율성의 향상은 환자의 자아강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자율성의 부족은 지금 환자가 생활에서 문제를 느끼는 근본이다. 이런 자율성의 부족은 편집증 환자의 치료개선에 중요한 특징이 된다. 치료자가 환자의 겉으로 드러나는 편집적 방어의 경직성을 다룰 때에는 자율성이 부족하고 쉽게 퇴행할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환자의 자율성의 문제는 종종 과대주의에 포장되기도 한다. 과대주의는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인식하는 것으로 오인되어 치료자로 하여금 착각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런 이유로 치료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과대주의는 환자로 하여금 현실 인식, 특히 자신의 부적절성이나 한계를 인식하는 것에 부정하게 하고 왜곡하게 만든다. 더 나아가 편집증 환자의 과대주의는 자신은 특별한 존재이며 자신의 생각은 항상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기초로서 사용된다.
가장 병리적인 형태의 편집적 과대주의는 자신을 특별하고, 비범하며, 고유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정체성에 대한 망상으로 나타난다. 정신병적으로 편집적인 사람은 스스로를 역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위대하거나 중요한 인물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 동정녀 마리아, 성자 중의 하나, 혹은 중요한 정치적 인물이나 공적인 인물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편집증 환자의 상태에서 나타나는 과대주의는 종종 환자의 자기 존중감을 보존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치료자는 그러한 방어가 강하고 겉으로 보기에 침투하기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은 그들에게 취약감이 근저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자율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이때 치료자는 환자의 자율성에 대한 위협 아래에서 치료-상황을 형성하기 위하여 몇몇 주의사항을 먼저 다루어야만 한다. 그 중에 치료적 상황에서 위협받고 있는 편집증 환자의 자율성을 강화할 뿐 아니라 환자가 임상적 상황에서 경직되고 위협을 느끼는 거짓된 자율감을 유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3) 투사를 다루는 문제
투사는 편집증의 매우 특징적인 현상이다. 투사는 편집적 방어로서 매우 특징적인 기제이기 때문이다. 이 투사는 환자의 방어체계로서 다양하게 부정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 혹은 현실검증의 실패를 수반할 때는 치료적 맥락에서 특별한 문제를 야기한다. 그것은 치료자가 투사적 방어를 다루기 위해서 상당한 숙련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를 위하여 치료자에게는 일단 그들에게서 일어나는 투사의 정체를 알아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환자의 투사는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그들에게서 일어난 문제의 원인이나 책임의 소재를 외부로 전가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그들이 문제의 원인이 누구 때문이라고 타인을 중점적으로 거론하면, 이미 투사는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타인을 미워하면서도 타인이 자신을 미워한다고 흉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에 갖는 미움이 원인이라는 것을 이미 내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 속에 있는 특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투사가 타인을 비난하는 경향으로 나타나는 이유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내적인 갈등이나 내적인 부적절함 때문이 아니라 외부적인 힘과 외부의 영향 때문에 자신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불행에 대해서, 우울증 환자는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반면에, 편집증 환자는 타인들을 비난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편집증 환자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위협적인 자기비난을 회피하며, 동시에 어느 정도의 자기 존중감과 자기 정당화를 유지하게 된다. 그들에게 이 투사는 자신의 행동과 느낌, 그리고 신념이 반드시 옳고 진실하며 선하다고 느끼게 만들고 있다.
그런 확신 때문에 그들은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거나 현실인식이 자신과 다른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그 결과로 그들은 상대방의 견해는 잘못되었고, 어리석으며 옳지 않고, 심지어 악의를 가지고 있다고 간주해 버린다.
4) 망상을 다루는 문제
편집증의 치료에서 망상은 현실과는 전혀 다른 자신만의 생각이다. 이 망상은 편집증 환자로 하여금 어떤 생각이라도 가능하게 만든다.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도 그들은 타인들이 자신을 보고 있으며, 자신에 관한 일을 생각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심지어 그들의 망상은 거대한 국제적 음모를 포함하는 광범위하고 복잡한 음모의 대상이라고 확신하는 경우처럼 훨씬 더 정교한 형태를 띨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유대인이 전 세계적인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믿었던 히틀러의 망상은 유명한 예이다. 그러한 망상 속에서 환자는 자신이 많은 사람들에게 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음모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런 문제는 비록 그가 악의적이고 파괴적이라도 환자는 타인의 관심을 많이 받는 사람, 그리고 타인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려는 것이다. 편집적 망상은 그들에게 현실감과 계속적으로 대립적이게 만들기 때문에 그들은 현실경험에 반응하여 자기의 신념을 수정하는 데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지적하듯이, 대체로 망상적 관념 안에는 현실적인 기반, 즉 그들이 자신의 신념에 매달릴 수 있는 기반을 주는 '진실의 핵'이 어느 정도는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 망상은 또한 자신의 실수에 대해 인정하는 것을 위협적이거나 고통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심리체계에 기반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환자는 자신의 이론적 견해 안에 어떤 잘못이나 불일치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을 마치 자신의 인격적 결함을 인정하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이다.
5) 투사와 망상을 이해하는 문제
치료에서 투사와 망상의 문제는 환자의 병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특별한 치료적 개입의 문제를 가져온다. 환자의 편집적인 투사체계가 부분적으로 정신병적인 망상적 고착과 확신의 수준에 도달한다면, 그것은 치료적인 변화 가능성을 전망할 때 좋은 전조가 아니다.
고착은 대체로 편집적 구성이 망상적으로 되거나 현실검증의 실패에 의해 특징되거나 또는 정신병의 다른 징후를 수반한다고 해서 치료자는 치료적 개입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 치료적 전망이 밝지는 않지만, 치료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 치료자들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정신병적 신념이 치료를 통해서 어느 날 갑자기 변화하는 것을 보고 종종 놀라기도 한다. 이것을 두고 시간이 해결했다고 하기도 하고, 그냥 저절로 어떻게 된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편집증 환자가 치료될 가능성은 긍정적인 진단적 평가에 달려 있다. 특별한 종류의 압력이나 퇴행적인 세력에 직면하여, 다소 일시적인 편집적 반응을 나타내는 환자는 치료적 개입에 있어서 전망이 좋은 것으로 보인다. 다소 일시적인 편집적 반응은 더욱 원시적인 자기애적인 성격 구조나 경계선 성격 구조의 환자에게서 종종 나타나는데, 이런 사람은 비교적 퇴행하기 쉽고 퇴행할 잠재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환자는 퇴행적 위기에서 편집적 형태로 반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편집증은 의미 있는 심리치료 작업에도 비교적 적합하다. 그러한 환자의 편집적 태도는 심각하게 고착되어 있지 않으며, 그의 자아상태도 지원능력이 비교적 견실하기 때문에 좋은 치료결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