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살아가는 것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덴마크 철학자 키로게고르는 인생의 선택은 "이것이냐 저것이냐(to be, or not to be)"라고 말을 했다. 그는 인생의 선택을 두가지로 보았는데 하나는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가려는 선택이고 다른 하나는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도덕적 그리고 윤리적인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섹스피어도 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선택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a question)"이 말은 섹스피어가 인생에 있어서 중대한 결정을 하는 순간에 그의 선택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 올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한 것에 의한 것이다.
성경에서도 인간의 선택을 두 가지로 말을 한다. 그것은 '생명의 길과 멸망의 길'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고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13-14) 이러한 두 가지 길의 선택은 삶에 확연한 결과를 가져 온다. 그것은 '성공과 실패', '저주와 축복', '멸망과 영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인간이 스스로 삶을 선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 순간의 선택이 때로 평생을 좌우한다"라고 말을 한다.
인생에 있어서 중대한 결정을 하는데 그것을 돕는 것은 인간의 '이성과 감성'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의 출발은 과연 어디에서 시작한 것이며 인간이 결정하는 판단의 가치 기준으로 보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그것은 이성적인 판단이다. 이것을 인본주의 시각에서 인간은 누구나 합리적인 판단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인간은 각자가 정당한 권리와 사랑의 감정을 표현할 자유가 있다고 여긴다. 인간이 가진 이성의 시작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부터 진리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은 '거룩하시고, 선하시고 완전하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사용하도록 하신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게 부여 받은 자유의지를 악으로 사용하게 된다. 인간이 가지는 사악은 인간이 죄(罪)범하도록 원격 조정하는 사단의 권세이다. 그것을 영어에서는 사단(Satan), 혹은 마귀(Devil)이라고 말을 하는데 그는 인간에게 생각의 착각을 주어 인간의 정체성에 혼돈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삶의 전부인것 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잘못 선택하도록 도울 뿐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전능한 권위에 도전하도록 유혹하는 것이다. 사단은 인간이 잘못된 선택을 하도록 하고 그 결과로 인간을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게 하고 하나님을 불신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들을 성경에서 찾아 본다면 하나님이 에덴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의 열매를 먹지말라고 하신다. 그리고 아담에게 말하기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7) 이것을 알고 있는 사단은 하와를 유혹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게 한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탑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게 된 배경은 사단이 하와에 무엇이 옳고 그름인지 판단하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며 사단의 유혹에 의해 한 순간 인간이 신의 권위를 가질 수 있다는 감정이 머리속에 자리잡게 되어 선악과 열매가 보기에 너무나 탐스럽게 보였다. 하와의 선택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인식이 아닌 사단이 자신에게 준 말에 영향을 받은 감정적인 선택이었다. 이로 인해 자신의 죄를 합리화 하기위해 그의 남편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게 하고 그 결과로 죄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수치를 느끼게 된다.
아담과 하와의 잘못된 선택은 하나님께 대한 불 순종이며 이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게 된다. 성경에서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그것은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이야기이다. 그 둘은 처음에 한 집에서 같이 생활을 했지만 나중에 식솔들이 많아지고 그 속에서 갈등이 주어지자 아브라함이 서로의 갈길을 정하는 과정에서 조카 롯에게 살아갈 땅을 먼저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 준다. 그때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13:9)
이말을 들은 조카 롯은 소돔과 고모라의 땅을 택하게 된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앞에 전제된 두가지 예를 보면 분명 이러한 선택의 핵심은 지극히 세상적이고, 착각과 혼돈, 인본주의 그리고 성공과 안전지대(safe zone)에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의한 것이다. 이것은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사단의 유혹일 것이며 사람들은 쉽게 삶에 중대한 것을 결정하려고 한다.
이러한 기준에 의한 선택은 인간 자신이 생각을 할 때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며 나에게 좋을 것이라고 여기는 감정적인 변화에 의해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선택하고자 하는 것이 나에게 좋을 것 같다고 여기면 그것이 옳은 것처럼 착각을 한다. 그리고 처음에는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여겨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을 드러내어 놓는다. 그런데 그러한 선택은 올바른 것이 아니다. 물론 인간이 뭔가를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올바른 선택을 하는 일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영적인 분별력이 필요하다.
오늘날 세상속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세상과 교회 안에서 자신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보지 않고 오직 타인의 모습만을 바라보고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신앙관과 삶의 가치를 형성하려고 한다. 이러한 부작용에 의해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전부이고 자신이'좋아하는 선택이 올바른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진정한 자유의지를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16:7) 인간이 살아가는데 선택은 인간 자신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선택과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다.
크릭사이드 한인교회 김칠곤 목사 웹: thecreeksidechurch.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