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처치
크리스토퍼 스미스·존 패티슨 | 새물결플러스 | 358쪽 | 16,000원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사진 한 장을 보았습니다. 강연이었는지 세미나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진에 올라온 현장 앞 현수막에는 '이런 교회 다니고 싶어요'라는 제목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 현수막 제목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교회를 다니는 곳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각 지체로서 교회를 이루고 교회가 되어 살아가며 교회 됨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물론 사진 한 장만으로 그 모임 성격을 규정할 수는 없음이 당연합니다. 그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모르고, 그 모임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주제를 나눴는지 알 수 없을 뿐더러, 그에 대한 평가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타이틀은 저로 하여금 위와 같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사진에 올라온 모임 내용과는 별개로, 현수막에 적혀 있는 문구의 문자적 의미만으로 '다니는 교회'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자면, 결국 우리에게 그런 생각을 갖게 한 것은 현대 교회의 문제라 여겨집니다.
책 <슬로처치>는 모든 것을 빨리 손쉽게 하는 효율 중심의 현대 사회를 빗대는 말인 '맥도날드화'를 빌어, 그러한 가치관과 방식들이 오늘날 교회에도 만연해 있음을 지적합니다.
저자들은 성장중심적 사고의 교회들이 '기독교의 진리'를 상품처럼 사고 파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경고하며,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의 관계조차 공동체의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훈련은 뒤로한 채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완성에 이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고 말합니다(26쪽). 저자는 이를 산업화된 사회가 교회에 끼친 영향이라 말합니다.
"서구 기독교는 산업화의 기계론적 이념을 그대로 교회 현장에 활용했다. 산업화한 농업이 생명의 원천인 땅을 살려내기보다는 기계를 사용해 비료와 살충제를 뿌려댄 것처럼, 교회도 쉽고 간편한 방법으로 규모를 키우려 했다(27쪽)."
저자들은 산업화된 농업과 음식 문화를 비판하며 등장했던 '슬로푸드' 운동을 빌려, '슬로처치'를 말합니다. 즉 '효율', '측정(수량)', '예측', '통제'의 가치를 떠나, '윤리', '생태', '경제(하나님의 화목)'로 재구성된 가치를 따르자는 것이지요.
저자가 말하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향해 일하시는 '동역'과 관련되어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이 동역을 위해 사람들과 '화해'하시고, 그 '화해'가 이뤄지기까지 '오래 참으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화해'와 '오래 참음'의 방식을 본받아, 모이는 교회를 넘어 흩어지는 교회, 사회 저변으로 스며드는 교회가 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슬로처치가 지향하는 교회의 방향은 교회 건물 안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 주위의 형제와 자매와 이웃, 심지어 나의 원수까지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몸 된 자로서의 삶을 일구어가야 한다(55쪽)."
이 흩어짐을 생각할 때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양성에 대한 인정입니다. 산업화의 큰 특징 중 하나는 획일화입니다. 획일화된 상품, 획일화된 구조, 획일화된 문제 해결 방식 등이 그것이지요. 이에 대해 저자들은 말합니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역은 창조 세계의 다양성을 회복하고 화해를 이루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이 사명을 이루어가려고 하시는가? 맥도날드화의 가장 큰 결점은 포괄적이고 획일화된 문제 해결 방식을 선호한다는 점이다(93쪽)."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저자들은 책을 첫 번째 코스: 윤리(사람에 대하여), 두 번째 코스: 생태(화해와 노동), 마지막 세 번째 코스: 경제(감사와 환대, 그리고 식탁교제) 순으로 구성하여 '슬로처치'에 대한 견해들을 밝힙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의 대부분은 대형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형화를 추구하기 위해 이미 대형화된 교회를 모델로 삼고, 그 교회에서 행한 '방법론'들을 모방하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삶을 들여다 봄', '말씀을 들여다 봄'은 소외되고, 획일화된 '방법론'이 주를 이루어 교회의 생리가 '프로그램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부터인가 '세미나'가 많아졌지만, 많은 목회자 세미나들이 진지한 질문과 고민을 함께 나누는 자리가 아닌, 성공 사례를 제시하며 '방법론'을 전수하는 자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흩어져 있는 각 교회들은 그 자리에 맡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각 교회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처한 환경과 자리에 따라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또한 교회를 이루는 '사람'을 볼 줄 알아야 함을 생각해 봅니다. 현대 교회는 많은 에너지를 사람이 아닌 건축물 등에 쏟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은 '사람'입니다. 본질을 보지 못하고 비(非)본질적인 것에 집착할 때, 우리는 본질이 변질되어 가는 것을 목도하게 됩니다.
저자들은 본질을 놓치고 비본질적인 것만 행하는 부분과 관련하여 '자선(慈善)'의 예를 듭니다. 무엇이 '자선'이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손쉽게 주는 자와 받는 자의 계층을 구분함으로써 정작 그 '자선'이라는 행위를 통해 이뤄져야 할 '화해'과 '관계'가 무시되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슬로처치'는 오늘날 우리가 양이 아닌 질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하며, 우리(교회)를 통해 행하시는 하나님의 화해 사역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환대와 나눔의 삶을 살아갈 것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서두에서 '다니는 교회'라는 표현에 대해서 언급을 했습니다. 목회자들이 '성도들이 다니는 교회'로서만 교회를 생각한다면, 결국은 질이 아닌 양에 집중하며,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방법론 자체를 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양'과 '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제 우리는 '다니는 교회'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이루는 교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슬로처치>는 그런 부분에 대해 우리가 고민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안내해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진용 목사(기독교대한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