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동안 농림수산부와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등 정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들은 세계인구의 25%인 이슬람교도의 식탁을 사로잡자는 모토를 가지고, 또는 710조원의 할랄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취지하에 기업들을 대상으로 할랄식품과 할랄인증에 대한 세미나를 앞 다투어 개최하며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그런 노력 탓인지 요즈음 한국의 식품업계에는 "할랄 인증" 열풍이 불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밀가루 제조업체인 동아원은 87 종류의 일등급 밀가루에 대하여 말레이시아에서 할랄 인증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제과 업계 중에는 크라운제과가 죠리퐁과 콘칩 등 4종류의 과자류에 대해 싱가포르에서 할랄 인증을 받았다. 농심과 풀무원에서 생산되는 라면들과 CJ제일제당의 김치와 햇반 등 43개 제품이 말레이시아에서 할랄 인증을 획득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A프랜차이즈가 받았다는 할랄 인증은 한국이슬람중앙회(KMF)에서 발급받은 것인데 이는 해외에서는 인정되지 않는 국내용이라고 한다.
대체 "할랄"이 무엇이기에 대한민국의 내노라 하는 대기업들이 그 인증을 받으려고 총력을 기울이는 것일까? 할랄이란 "이슬람의 율법에 의해서 허용된 것"이라는 뜻이 있다. 무슬림들이 "먹어도 되는 음식들"을 말하는 것이다. 반대로 허용되지 않는 것은 하람이라고 한다. 한국 식품업체들이 할랄 인증을 받으려고 애쓰는 이유는 전세계 17억 무슬림들을 고객으로 삼을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 때문이다. 이들은 할랄 인증을 받은 것는 곧 위생적이며 맛과 질과 신선도가 우수한 웰빙식품으로 공인받는 것을 의미한다고 굳게 믿는 것 같다. 언론에서도 할랄식품을 보도할 때면 깨끗하고 안전한 식품으로 취급된다는 멘트를 함께 내보내곤 한다. 그러나 사실 할랄 인증은 위생이나 성분 등 식품 자체의 품질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고 이슬람의 율법과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꾸란에 의하면 "죽은 고기, 피, 돼지고기, 알라의 이름으로 도살되지 않은 것, 목 졸라 죽인 것, 때려죽인 것, 추락 등 사고로 죽은 것, 서로 싸워서 죽은 것, 다른 짐승이 일부를 먹다 남긴 것, 우상의 제물로 바쳤던 것"을 먹지 말라고 기록하고 있다.(꾸란5:3)
그런데 꾸란 2장 173절에는 "고의로 먹은 것이 아니라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먹었을 경우에, 또는 알라에게 불순종할 의도가 없었을 경우에는 먹었어도 죄가 되지 않는다. 알라께서는 잘 용서하시고 자비하신 분이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 이러한 것들을 먹지 말라는 꾸란 5장 3절을 중요시할 것이냐, 아니면 필요할 때는 먹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2장 173절을 중요시할 것이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한발리, 말리키, 하나피, 샤피이 등 4개의 학파에서 주장하는 할랄 인증의 기준이 각각 다르고, 지역마다 나라마다 차이가 나는 것이다. 한국이슬람중앙회가 할랄 인증을 한 것은 말레이시아 할랄 인증위원회가 규정한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따라서 그 권위를 국제적으로 인증 받지 못하고 국내용에 머무는 것이다.
시아파 이슬람의 종주국인 이란의 할랄식품 인증 기준은 크게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된다. 1. 도살자는 무슬림이어야 한다. 2. 날카로운 칼을 사용해야 한다. 3. 짐승의 머리가 메카를 향하고 죽어야 한다. 4. 목의 4개의 혈관을 단 번에 잘라야 한다. 5. 도살할 때 "알라의 이름으로"라고 외쳐야 한다. 6. 목을 친 짐승을 거꾸로 매달아 그 피를 다 빼야 한다. 7. 짐승이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상태에서 도살하면 안 된다. 8. 비늘이 없는 생선은 먹을 수 없다. 9. 사냥한 짐승은 먹어도 되지만 사냥개가 일부분이라도 먹었으면 그 고기는 먹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여러 가지 요건을 다 갖춰서 가축을 잡기는 쉽지가 않다. 도살자가 무슬림이어야 하는데 그 많은 짐승들을 사람이 모두 일일이 목을 쳐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부득이 도축용 기계를 사용하여 짐승의 머리가 메카 쪽으로 향하게 하고, 스피커로 "알라의 이름으로"라는 말이 반복하여 들리게 한 상태에서 도살하고는 할랄 인증서를 붙인다. 혹시 녹음기가 고장 나서 "알라의 이름으로"라는 말이 계속 방송되지 않았다 해도 그 도축장에서 잡은 것은 이미 할랄 인증을 받았기 때문에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무슬림들이 할랄 인증이 된 고기만 먹으며 그렇지 않은 고기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중동의 이슬람 국가에서도 기독교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이 있다. 그런 식당은 건물 외부에 "이 업소는 무슬림이 아닌 타종교를 믿는 사람이 운영하고 있습니다."라고 알리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그 식당 음식이 맛있다고 소문이 나면 무슬림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많이 찾아온다. 물론 아무리 음식이 맛이 있다고 해도 비무슬림이 운영하는 식당에는 가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들을 우리는 원리주의 무슬림이라고 부르며, 쌀라피, 혹은 와하비 무슬림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고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또 한 가지는 할랄 인증의 기준이 영원히 불변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것은 수시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언제라도 샤리아 위원회에서 할랄 기준을 바꿔놓고 공포하면 즉시 바뀐 기준이 적용된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서양의 무역업자들이 중동에서 차를 마시는 문화가 발달된 것을 보고, 차를 마실 때 각설탕을 곁들여 먹게 하면 엄청난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들은 무슬림들에게 접근하여 각설탕을 권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급속도로 퍼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 때 한 이슬람의 이맘이 "각설탕은 비무슬림들의 손으로 만들어졌으므로 '하람'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러자 갑자기 수요가 대폭 줄어 버렸다. 깜짝 놀란 무역업자들이 이맘에게 찾아가서 충분한 대가를 약속하며 각설탕이 '할랄'이라고 공포해 달라고 부탁했다. 고민하던 이맘은 드디어 방법을 찾아내고 선언했다. "각설탕이 하람인 것은 맞지만 입에 넣기 전에 차에 담가서 꼬쓸(목욕)시키면 할랄이 된다." 그러자 모두들 안심하고 다시 각설탕을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사람들이 할람과 하람을 수시로 바꾸는 이맘들의 황당한 파트와에 익숙해져서 거의 신경을 쓰지 않지만, 아직도 중동에서는 차를 마실 때 각설탕을 차에 담갔다가 먹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맘 호메이니가 이슬람 혁명을 일으켰을 당시 이란에서 철갑상어는 비늘이 없기 때문에 먹을 수 없는 하람 생선이었고, 해외로 수출하는 용도로만 잡도록 허락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카스피안 해변에 가면 누구나 철갑상어 구이를 먹을 수 있고, 방문객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고급 메뉴 중의 하나가 되었다. 어느새 할랄식품으로 바뀐 것이다. 고등어나 새우도 비늘이 없어 원래는 하람이지만 중동의 이슬람권 시장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고 식당에서 여러 가지 새우요리가 판매되고 있다는 것은 그것들도 언젠가 할랄 음식이 되었음을 뜻한다. 또한 최근에 시리아의 내전 때문에 식량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여 굶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자 개나 고양이 고기를 할랄로 선포했다. 어떤 무슬림들도 개나 고양이 혹은 돼지는 못 먹는 하람 음식으로 알고 있는데 이슬람 성직자의 파트와(이슬람 칙령) 한 번에 할랄이 되는 것이다.(조선일보2013.10.17)
할랄(허락된 것)과 하람(금지된 것)은 음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최근에 하람이 할랄로 변경된 사례를 찾다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기사를 발견했다. 이슬람에서 여자가 자기 남편 외의 남자와 성행위를 하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하람(불법)이었다. 그런데 시리아에서 알라를 위해서 싸우는 전사들의 사기를 돕기 위해 여인들이 성접대하는 것을 할랄(합법)이라고 선포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성교(性交:sex)지하드:Jihad al Nika"라고 불렀다. 이 새로운 파트와(알라의 이름으로 내리는 유권해석)에 대해서 아랍의 여러 무프티(이슬람 고위 성직자)들은 이를 지지하는 새로운 파트와들을 다투어 발표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동참하도록 촉구했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유명한 이슬람 성직자 무함마드 알 아리피(Muhammad al Arifi)는 남편이 있는 여인도 '성교 지하드'에 동참하는 것은 할랄이라고 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의 원로 성직자인 너세르 알 아므르(Naser al Amr)는 이슬람 전사들의 주변에 여인이나 여자 아이가 없을 때는 마하람(혈연관계가 있어 결혼이 금지된 여인)과의 성관계도 할랄이라고 선포했다. (shia-online 2013.9.10)
여기서 보는 것처럼 이슬람의 율법에 의해서 규정되는 할랄과 하람은 언제 뒤바뀔지 모르는 가변적인 것이다. 그리고 할랄 인증은 순수하게 이슬람 율법에 관련된 문제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아랍지역의 도살장과 똑같은 도살장을 만들어 더 위생적이고 청결하게 운영한다고 해도 그가 무슬림이 아니라면 그 도살장에서 도축된 고기는 할랄이 될 수 없다. 그가 무슬림이라도 짐승이 죽을 때 그 머리가 메카를 향하지 않았다든지 또는 "알라의 이름으로"라고 외치지 않았다면 그 고기는 규정상 할랄이 아니다. 이처럼 할랄 인증은 위생이나 신선도나 건강에 미치는 영향 등과는 관계가 없으며 이슬람의 율법인 샤리아를 준수했느냐 하는 것이 최대의 관건인 것이다.
할랄 인증을 받았다고 해서 17억 무슬림들이 모두 할랄 음식만 소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저 환상일 뿐이다. 오히려 이슬람 율법을 철저히 지키기 원하는 극소수의 원리주의 무슬림들이 할랄 인증을 미끼로 지하드 자금을 끌어 모을 뿐 아니라, 이슬람의 율법인 샤리아의 권위로 경제계를 장악해서 세계를 이슬람화하려는 경제지하드라고 보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들이 많은 돈을 투자하면서, 때로는 무슬림들의 비위를 맞춰가면서 앞을 다투어 할랄 인증서를 얻으려고 매달리는 현상이 안쓰럽다. 마치 "우리가 보통 무슬림들보다 더 철저히 이슬람 율법을 지키겠으니 우리 물건을 팔아 달라"고 애원하는 모양새다. 전 세계를 샤리아로 다스리기 원하는 원리주의 무슬림들에게 돈 싸들고 제 발로 달려 들어가는 격이다. 지금까지 할랄 인증이 없어서 이슬람 지역에는 전혀 수출을 못했던 것도 아니다. 제품에 자신이 있으면 그들이 돈 싸들고 찾아오게 되어 있다. 좀 더 손쉽게 좀 더 많은 돈을 벌기 원하는 것이 기업의 생리이겠지만, 눈앞의 이익보다 신앙의 양심과 국가의 미래를 바라볼 줄 아는 성숙한 기업정신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요원한 꿈일까.
글ㅣ이만석 목사(이슬람전문가·한국이란인교회 담임·한장총 이슬람선교훈련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