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연합감리교회 박세용 목사
시애틀 목사회 회장 박세용 목사 

주님이 부활하신 일요일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여인들이 목놓아 울었던 날은 금요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두려움과 절망감에 목자 잃은 양처럼 뿔뿔이 흩어진 것도 금요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요일이 오고 있습니다.

물질을 최고로 여기는 사람들은 세상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며 오직 돈 밖에는 믿을 게 없다고 말합니다.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권력이 최고라 여기며, 어떤 비리도 못 가릴게 없는 듯 행동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아직 금요일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바로잡으시는 일요일이 오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우리를 고난에 빠지게 하는 힘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금요일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제 일요일이 오고 있습니다.

하루 하루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아 살기조차 버거우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부부사이에 혹은 자녀와 부모사이에서 때로는 형제자매의 불화로 지옥 같은 삶을 사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경제적 혹은 신분의 제한으로 살아갈 맛을 느끼지 못해 무덤에 있는 것 같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억하십시오. 아직 금요일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일요일이 오고 있습니다.

어떤 유혹에도 믿음을 지키며 선한 일을 하며 살지만 때로 지쳐 낙심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아직 토요일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다가와 친밀하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셨듯이 때가 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어 우리 이름을 부르시며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일요일이 오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디에 머물고 있습니까? 절망스런 금요일입니까? 칠흑같이 캄캄한 토요일입니까?

우리 삶에 주님이 역사하시는 그런 날이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그 날은 오고야 맙니다.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과 제자들처럼 우리들도 고난의 금요일을 사느라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토요일을 지내느라 예수님이 가까이 오셨어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럴지라도 주님은 우릴 잊어버리지 않으시고 우리를 결코 모른 체 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이 역사하시는 일요일이 오고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금요일에 있을지라도 일요일이면 달라진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를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듯이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고난이 고난으로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때에 끝나게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너희가 나를 죽일지라도 나는 다시 살아나리라" 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이 역사하실 일요일이 오고 있음을 알았고 믿었습니다. 그분이 친히 역사하시는 일요일이 오고 있습니다.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목사가 복음의 불모지 한국땅에 첫 발을 내디딘 130년전 4월 5일은 오늘처럼 부활주일이었습니다. 그때, 아펜젤러 목사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부활주일에 이곳에 왔습니다. 그 날에 죽음의 철장을 부수신 주님께서 이 백성을 얽매고 있는 사슬들을 깨치시어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자유와 빛을 얻게 하소서!" 이것은 아펜젤러 목사 혼자의 바람이 아니라 모든 선교사들의 소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그들이 꿈꾸었던 것은 교인숫자나 교회 크기에 상관없이 진리이신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자유와 해방이었습니다. 그 은총은 교회 안에서 시작되어 교회 울타리를 넘어 사회로 넘쳐흘렀고 온 겨레가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뿌린 복음의 씨앗은 열매가 되어 우리 안에 여전히 자라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이제 우리가 사는 여기에 주님이 베풀어주시는 자유와 해방의 역사가 이어지길 소원합니다. 주님이 역사하시는 일요일이 오고 있음을 믿고 오늘도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데 앞장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