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대 명예총장 조종남 박사는 '웨슬리의 선교와 신유'를 주제로 웨슬리의 일기에 기록된 사례들을 바탕으로 발표했다.
조종남 박사는 "잘 알려진 대로 웨슬리의 설교는 많은 영혼을 구원했고 진부한 교회를 갱신시켰으며, 부패했던 영국을 새롭게 하는 등 그의 선교운동은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했던 18세기 영국을 변화시켰다"며 "그러나 그의 설교가 능력으로 역사한 배경에는 그의 사역에 놀라운 성령의 역사, 특히 신유의 역사가 동반됐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웨슬리의 '올더스게이트 회심체험'은 잘 알려져 있다. 조 박사는 이에 대해 "웨슬리는 당시 성령의 증거를 통해 참 믿음과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을 뿐 아니라, 성경을 참 하나님 말씀으로 믿게 됐다"며 "이후에도 성령의 계속적인 역사에 힘입어 그의 설교사역은 힘차게 전개됐고, 웨슬리의 사역은 명실공히 초대교회에서 보듯 말씀 전파와 함께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는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웨슬리는 야고보서(5:14-15) 말씀을 통해 신유의 기적이 항상 있는 것으로 봤다고 한다. 조 박사는 "웨슬리는 신유 기도에 대해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 뿐 아니라 장로들도 병 낫기를 기도하면 된다고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조 박사가 제시한 1741년 5월 10일 일기를 살펴 보면, 웨슬리는 설교 중 허리와 머리가 아플 뿐 아니라 몸에서 계속 열이 났다. 그때 '믿는 자들에게 이적이 따르리라(막 16:17)'는 말씀을 떠올린 그는 주님께 간구했고, 통증은 사라졌다. 그는 이후 오랫동안(for many weeks) 아픔과 약함을 느끼지 않았다. 이후에도 자신의 치통과 발 부상 등을 기도로 치유받았고, 다른 사람의 파상이나 귀신 들림 등을 치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유의 은사가 일어났던 그의 사역은,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나 기사·이적을 믿지 않던 당시 영국의 교회 지도자들과 심지어 일반 신자들에게 '열광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에 웨슬리는 "우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눈으로 보지 않고 귀로 듣지 않고는 어떤 사실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등, 비판을 받을 때마다 자신의 사역을 변호했다.
조 박사는 "이런 비판은 동시에 웨슬리로 하여금 성령의 역사, 특히 성령의 직접적 역사에 대한 신학을 개진하는 기회를 제공했다"며 "웨슬리는 당시 은사중단론을 말하는 소위 정통신학자들에게 답하면서, 지금도 복음이 권능으로 전파되며 사람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살고 있다면 성령은 비상적인 극적 은사, 즉 카리스마타(charismata)를 나타낸다고 믿었다"고 풀이했다.
웨슬리는 성령의 역사가 초대교회 이후 나타나지 않는 것에 대해 "성령이 후퇴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이 식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신앙이 죽어있는 자에게는 성령이 역사하지 않고, 나아가 교회가 평온과 안전 속에 있고 그리스도인들이 안위와 명예를 지키고 싶어하기 때문에 기사와 이적들이 정지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조종남 박사는 "웨슬리의 사역에는 능력과 목적이 있었고, 그가 이끈 18세기 영국교회 부흥운동, 아니 전 세기에 걸친 복음적 부흥운동은 분명 성령의 역사였다"며 "그러나 이는 기이한 현상도 동반했기에, 당시 정통주의·국교회 신학자들에게 오해와 비판을 받기도 했다"고 정리했다.
조 박사는 "그러나 웨슬리는 설교를 통해 사역자들에게 신유사역을 권장하지도 않았고, 신유집회를 열지는 않았다"며 "그것은 당시 기사와 이적을 강조하면서 신비주의로 빠지는 위험성을 봤기 때문으로 사료된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비한 은혜를 과장하거나, 영적 무지로 인간의 감성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영적 흥분과 환상에 빠지는 신신비주의(Neo-mysticism)를 경계하고 있었던 것.
그는 "웨슬리의 후예들은 웨슬리의 사역에 놀랍게 동반했던 신유사역을 별로 언급하지 않는데, 자유주의화한 기독교는 기사·이적 같은 초자연적 사건을 믿지 않고, 그런 기독교에서는 신유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기 때문"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웨슬리의 후예들 중 '극단적 성결단체'라 불리는 만국성결교회 지도자들이 성결운동에 신유를 적절하게 증거했고, 이는 그동안 웨슬리의 후예들이 간과했던 그의 유산(legacy)을 암암리에 계승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각성은 오늘날 '세계복음화를 위한 로잔운동'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특히 1974년 발표된 로잔 언약을 보완한 1989년 마닐라 선언문에 대해 조 박사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복음(The Whole Gospel) 선포에는 기사와 이적이 동반함을 인지했다"며 "오늘날 선교에서 마귀와의 영적 대결(power encounter)이 따른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데서 볼 때 이 신유의 증거는 놀라운 것으로, 성결 전도를 능력 전도(power evangelism)로 변모시킨다"고 강조했다.
조 박사는 "전도는 신유의 역사가 동반돼 능력 전도가 되는 점은, 제가 직접 신유를 체험함으로 확신하게 된 것"이라며 "난관에 처한 여러 교회가 신유 사건으로 인해 형통하게 되는 것을 목격했는데, 이처럼 사역에서 신유 사건이 일어나면 사역자의 믿음은 더욱 견고해지고 확실해진다. 이는 제가 최근에도 체험한 바"라고 역설했다.
그는 "신유를 하나님의 구원이 육체에까지 구체적으로 임하는 것일 뿐 아니라 앞으로 구체적으로 도래할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는 것으로 이해할 때, 신유의 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좋은 소식으로 이해된다"며 "성결교회 초대 선배들이 성경에 나타난 신유를 적절히 전함으로 성결운동에 도움이 된다고 믿어 교회의 전도표제에 포함시킨 것은 매우 적절한 일이었고, 오늘의 교회에도 큰 도전"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