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요나
(Photo : 기독일보) 장요나 선교사

파서데나에 소재한 드림교회에서는 장요나 베트남 선교사를 초청해 특별부흥집회를 19일(금)부터 21일(주일)까지 열었다.

장요나 선교사는 비라카미 선교회 본부장으로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비라카미 지역에서 미전도종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벽산그룹 기획실장을 거쳐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 요트경기장 건축을 진행한 유능한 사업가였던 그가, 아내와 자식을 등지고 물질과 명예를 뒤로한 채 베트남이란 타지로 향하게 된 것은 과로로 쓰러져 10개월간 식물인간으로 누워있으며 얻은 깨달음 때문이다.

2002년 강직성척추염으로 쓰러져 다리를 절며, 눈 한쪽은 시력을 완전히 잃은, 육체의 가시를 지닌 그는 연단에 오르자마자 타협이나 절충이 불가능한, 선교사의 삶을 위해 치러야할 대가에 대한 메시지를 쏟아냈다.

그는 마가복음 10장 29-31절을 본문으로 선교사의 삶에는 대가가 따른다고 말했다.

"환난과 박해가 어떤 이유에서 임하나? 출애굽기 20장을 보면, 하나님은 징계하시는 분이시다. 그 다음에 축복이 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는 게 아니라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연단하신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니 백배가 아닌 만 배로 갚아주셨다고 간증했다. 그러면서 재산과 가족을 모두 포기한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다.

"친척들에게, '네가 목사냐, 선교사냐'라며 핍박을 받았다. 아버지 장례식에서 설교를 하는데 '아버지가 흙으로 만들어지셨는데 다시 흙으로 돌아가셨다. 저는 베트남 땅에 가서 피를 흘릴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제 별명이 겨울빨래다. 아무도 못 말리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말씀과 같이, 가족과 재산을 다 버린 그를 통해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에 교회 217개, 병원 14개, 고아원, 초등학교, 종합대, 기독교 방송국이 세워졌다. 그는 이것이 대가를 치렀을 때 거둬진 축복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이 추수의 때, 선교의 때라며 선교사의 삶을 살아가기보다는 평탄한 삶에 안주해 사는 크리스천들에게 주께서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실 것이라 경고했다.

그는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하지 않는 단기선교를 '관광'이라 비판하며 베트콩이 베트남을 함락했을 때 대통령공원에 몰려온 많은 피난민 틈을 헤치고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부패한 정치인을 향해 회개하라고 외친 베트남 목사에 대해 전했다.

"바울도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죽음이 예비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간다. 예수님도 십자가가 예비되어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길로 가셨다. 결단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복음을 위한 충서임이 있어야 한다."

그는 우리가 흙으로 돌아갈 인간이라며 착각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쓸모없는 당나귀 턱뼈가 삼손의 손에 들렸을 때 이스라엘의 적국인 블레셋 사람 1천명을 넘어트릴 수 있었다. 길가에 떨어진 돌멩이는 쓸모없는 것이지만 다윗의 손에 붙들렸을 때 골리앗을 쓰러트리는 무기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드렸다. 쓸모없는 나뭇가지도 모세 손에 붙들려 홍해바다를 갈라 생명을 구원하는 역사를 일으켰다. 강직성척추염에 걸린 이 사람이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손에 붙들려 사용됐기 때문이다. 자아와 고집, 정욕과 탐욕을 버리지 않는한 하나님은 대가를 치르게 하실 것이다. 쓸데없는 것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있을 때 호렙산의 불길이 우리 안에 생길 수 없다."

90년대 초 홀로 베트남으로 건너간 그는 의사들이 고치지 못하는 환자들을 치유하며 순회사역을 펼쳤으며 오지에 교회와 병원을 세우고 한국 의료봉사단을 초청해 1만여명의 언청이 수술을 도왔다.

"늪지대를 배를 타고 다니며 환자를 돌봤다. 대나무와 야자수잎을 엮어 만든 집에 거동도 못하는 사람들이 누워있다. 돈 30불이 없어 굶어죽어 간다."

그는 기독교의 역사란 피의 역사라며, '순교'의 정신을 강조했다.

"그리스도의 보혈, 순교자들의 피, 선교사들의 피가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룬 역사가 우리를 이곳에 있게 한 것이다. 우리 안에 순교라는 뜨거움이 항상 있어야 한다. 양은 들어가는 곳마다 희생의 피를 흘려야 한다. 살려 가는 사람은 선교사가 아니다. 하나님은 죽을 추수꾼을 찾고 계신다.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한, 음부 같은 땅의 영혼들이 우리의 형제, 자매다."

"소금은 자기가 녹아져 없어질 때 그 존재의미가 있다. 촛불은 자기가 녹아지기 위해, 휴지는 더러운 것을 닦고 구겨지기 위해 존재한다. 모든 것이 존재 목적이 있는데 우리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이 마이크도, 이 마이크를 만든 기술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다. 그 기술자를 만든 하나님이 만든 것이다. 이것을 안다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깨달을 것이다."

그는 선교사에게는 집도, 가정도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한 모든 것 가운데 내것은 사실 하나도 없다는 것, 그가 코마상태에서 절실히 깨달은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신앙생활에 차원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접하는 자는 세상과 100퍼센트 끊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홍해를 건너면 광야가 나온다. 세상의 모든 문화가 광야다. 요단은 어떻게 건너야 하나? 예수님이, 모세가 도와주지 않는다. 자신의 순교 신앙으로 건너는 것이다. 주님의 피값으로 산 생명이니 그 사명이 나를 끌고 가는 것이다."

그는 선교자의 삶에서 누리는 기쁨을 나누기도 했다.

"예수님 사랑을 위해 아들과 아내도 다 버렸다. '사랑을 위해 사랑을 버린 이 마음'이라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열어보니 경찰이 와 있었다. 나를 잡으러 온 줄 알았는데 급성갑상선에 걸려 고쳐달라고 찾아 온 것이다. 그가 자기 머리에 손을 얹어달라는 시늉을 했다. 그를 위해 기도해줬는데 그가 눈물을 흘렸다. 하나님이 내 노래에 응답해주셨단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첫사랑을 나눌 때 기분이었다. 전도자의 삶은 절대 불행이 없다. 영혼을 구원하는 기쁨은 내 자식이 성공할 때 기쁨보다 더 크다."

그는 이 세상에는 사랑을 나눠주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자도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부요한 자도 없다며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영생으로 인도하는 게 가장 큰 사랑"이라며 이 안에 진정한 기쁨이 있고 반대로 "자기 것만 챙기고 자기 생각만 하는 자"는 불행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식물인간 상태에서 얻었던 깨달음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내 것이 아님'을 강조하며 "하나님 마음에 맞지 않으면 다 데려가신다. 여러분의 헌신에 따라 하나님이 축복을 정하신다. 내 지위, 내 남편, 자식, 냉장고 까지 내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라'고 당부했다.

프랑스 식민지가 되면서 선교가 시작된 베트남은 1911년에 이르러 C&MA에 의해 선교가 본격화됐다. 1922년부터 1940년까지 교회가 설립되고 많은 베트남인들이 개종했으나 1975년 공산화되면서 기독교 탄압이 시작됐다. 도시에 있는 일부 교회를 제외하고 다수의 교회가 폐쇄되고 신학교가 폐교됐으며 가정예배도 금지되고 설교를 하거나 모임을 위해 장소를 제공한 자들은 벌금을 물거나 감옥에 가야했다. 그러던 중 1980년대 후반 베트남 사회주의 경제가 파산직전에 이르러 민심을 수습하고 경제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일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주면서 폐쇄됐던 교회들이 문을 열 수 있었다.

베트남은 2004년 미국 의회에 의해 <종교탄압국가>로 지정될 정도로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심한 국가다. 2007년도부터 개방과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베트남 정부는 호치민시의 베트남 침례교회와 중부 다낭의 안식교회의 선교활동을 허용했다.

한편, 1978년 글렌데일연합감리교회로 시작된 드림교회는 2005년 Pasadena Hollistion United Methodist Church와 통합하며 드림교회로 명칭을 바꾸고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이루어 드리는 교회"라는 표어 아래 1,111운동(하나의 공동체, 10개 교회 개척, 100개 선교지 후원, 1천명 교인)을 펼치고 있다.

드림교회
(Photo : 기독일보) 파서데나에 위치한 드림교회에서 장요나 베트남 선교사를 초청해 특별부흥집회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