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로드 한인교회 김칠곤 목사
(Photo : 기독일보) 크로스로드 한인교회 김칠곤 목사

신학교 동기들 간에 대화 창구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밴드라는 사이트이다. 어느날 한 분의 동기 목사님이 "15분간의 생애"에 관한 글을 퍼와 동기들과 함께 의견을 나눈 일이 있었다. 그 내용을 보면 꿈이 많은 한 청년이 박사학위 졸업 논문을 제출하고 졸업식 때  학위를 받으려고 기다리는 중 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날 그는 심장에 통증을 느껴 심장 전문의사에게 찾아갔다. 의사는 청년을 진단한 후에 그에게 말하기를 "당신의 생명은 15분 밖에 남지 아니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청년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다. 5분이 지난 후에 그는 비보의 전보 받게 된다. 그것은 자신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기로 약속한 억만장자 삼촌이 갑작스럽게 죽은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5분이 지날 때 그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된다.

그것은 그가 쓴 논문이 학계에서 인정을 받아 최우수상 논문상을 수상받게 될 것이라는 기쁨의 소식이 었다. 마지막 시간이 될때, 그는 결혼할 애인게서 소식을 듣는데 아내가 될 부모가 결혼을 승락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남겨진 15분의 생애 시계는 완전히 멈추어 버렸다. 인간의 삶은 누구나다 영원할 수 없는 한정된 시간속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제한된 시간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짧은 시간속에서도 수 많은 '희노애락(喜怒哀樂)'을 경험하게 된다. 이 말은 사람들이 가지는 감정의 변화이다. 이러한 변화의 삶을 그래프로 그려 본다면 기쁨을 위의 곡선이라고 볼수 있고 ,고난의 역경을 아래 곡선으로 그려 볼 수 있다.

이것을 통해 인간의 삶속에서 주어지는 희노애락의 곡선은 분명히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일정한 주기적인 곡선을 그릴 수 있다. 이러한 곡선의 토대에서 보면 기쁨이나 즐거움을 가지기 위해서는 분명히 힘든 노고와 땀이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수고의 결과인 열매를 얻기 이전까지는 고난이 반드시 주어진다. 이것을 볼때 인간은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고난의 연속성에 있다. 한 사람이 살면서 고통과 고난을 경험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살아 있기에 갈등한다. 그리고 살아 있기에 사람들은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어려운 순간들에 대해 불평 불만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불평 불만을 하며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인생이 짧다. 루시우스 세네카의 말에 의하면 "인간은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을 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 처럼 행동한다." 인간의 삶은 하나님이 만드실 때부터 동일하게 만들지 아니했을 뿐 아니라 누구나다 생명의 시간을 동일하게 가질 수 있도록 계획하시지 아니했다. 주어진 삶속에서 각기 다른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이 하는 일 속에서 환난을 통해 소망을 이루게 하신다. 이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주어진 삶속에서 행복과 건강을 바란다. 이것을 가지기 위해 밝은 마음을 추구하며 살아가려 하고 건강한 음식을 가급적이면 섭취하려고 한다. 또한 현재 나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파악하기 위해 전문적인 기관에 의뢰하여 자신의 행복 치수가 얼마인지를 진단하려고 한다.

사람이 느끼는 행복의 치수는 각기 다르다. 그러나 그 치수가 다르다 할 지라도 공통적인 것은 삶속에서 누구나 스트레스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행복의 치수를 높게 느끼는 사람들을 보면 아무 일이 없을 때 보다 고난가운데 경험하게 된다. 이것으로 볼때 삶의 행복은 반드시 삶이 즐거울 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장수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삶을 강조한다. 그 중에 하나로 웃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웃움을 많이 웃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장수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의학계에서 연구해 본 결과 코미디언 들이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더 빨리 죽는 다고 발표했다. 그 이유를 알고보니 코미디언들이 빨리 죽게 되는 이유는 "감정의 기복과 기분의 변화가 심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마음에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는 것은 그것에 따라 삶의 태도가 바뀌어진다는 것이다. 지나친 감정의 변화는 삶에 큰 장애를 준다. 이것을 종합적으로 바라 볼때 행복은 나의 처한 환경과 관계 없이 나의 생각이 무엇이냐 이다. 아리스토 델레스의 말에 의하면 "좋은 삶이란 좋은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삶이다." 이 말은 건강과 행복한 삶은 환경에서 주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주어진 환경을 내가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느냐는 것이다. 하나의 사실을 보고 한 사람은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낼 것이며, 다른  사람은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 볼 것이다. 인간의 삶은 즐거울 때 보다 힘이 들고 어려울 때가 더 많다.

이러한 고난 가운데서도 자신의 삶을 기쁨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승화된 삶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은 주안에서 이루어져야 가능한 것이며, 그것을 위한 신앙인의 노력은 '고난 가운데서 기도'하는 것이다. 괴로울때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기도한다면, 주님은 그 사람에게 평안을 주신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난을 근심과 염려로 바라본다면 절대적인 축복의 결과를 보지 못하게 된다. 기도의 응답은 나의 염려와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길 때 주어진다. 그리고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게 됨을 경험하게 된다.  기도는 단순하게 자신이 평안을 느끼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도는 실제적인 효용성이 있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나에게 주어진 고난의 벽을 거두어 내는 것은 나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기도는 단순한 심리의 효과나 종교적 현상이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질병속에 고난을 당하고 있는 자도 기도를 통해 주님이 반드시 치유해 줄 것이라 믿어야 한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 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야고보서5:15) 하나님은 모든 병을 치유하실 능력을 가지신 '여호와 라파'이신 치료의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병자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의심해서는 아니된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물결 같으니"(야고보서1:6) 사람에게 주어지는 질병과 환란은 반드시 죄의 결과 라고 말할 수 없다. 어떤 경우는 질병은 죄와는 상관 없이 주어진다. 환난이 죄의 결과라면 그것은 삶의 정당한 결과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는 죄 와는 상관없이 욥에게 연단을 통해 소망을 주시는 것처럼 환난을 주신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지속적으로 기도하시기를 바라신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라"(누가복음18:1) 인간의 환난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제한적인 것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기도를 해야 한다. 행복은 바로 이런 것이다.

크로스 로드 한인교회 김칠곤목사 문의전화 425-773-9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