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새크라멘토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미 연합감리교회 캘리포니아 네바다연회 연례회의(Annual Conference)에서는 8명의 목사가 정회원 목사로 안수,11명이 준회원 목사로 컴미션을 받았다.
그 동안 부교역자로 한어성인사역을 담당해 왔던 산타클라라연합감리교회(이성호 목사 시무) 김영래 전도사 역시 이번 연례회의때 목사 안수를 받게 됐다.
김 목사의 목회비전은 "소외없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그 공동체의 지경을 넓혀 가는 것"이다. 이 비전에는 하나님 나라 확장의 꿈이 담겨있다고 말하는 김목사는 비전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소그룹 사역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스로 목사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김 목사. 그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나며 어머니의 기대를 받았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났습니다. 어머니께서 목사가 되기를 바라셔서 목사가 되라고 늘 권면하시며 많은 기도를 드리셨지요"
어머니가 품으신 꿈을 뒤로 하고 공학을 전공해 대학을 갔고 엔지니어가 되길 꿈꾸던 김 목사다. 그런 그가 목회를 꿈꾸기 시작한 건 한 차례의 방황 뒤였다.
대학시절 갑작스런 아버지의 건강악화와 함께 경제적 어려움이 밀려 왔다. 그는 “하나님 믿는 가정이 왜 이런 어려움을 겪어야 하나?,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시는 것인가?” 하는 의심과 불만에 휩싸이며 교회를 떠났고 영적인 방황을 하게 되었다.
"불만 가운데 방황을 했지만 마음은 더 괴로웠습니다" 그런 가운데 우연히 들은 한 설교테잎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을 설교한 것이었다. "애굽의 왕자로 살던 모세가 광야로 쫓겨나 40년간 양치기로 살며 고생했지만 80세의 나이에 하나님을 만났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변신해 가는 과정을 가지고 설교를 하신 말씀이 큰 감동이 되었다"
그 후 김목사는 한번도 나가지 않던 새벽기도회를 매일 출석하며 냉랭하던 모태신앙에 불을 붙여가기 시작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불러주셨습니다. 목회자로요. 기쁨과 감사함으로 부르심에 응답하고 목회자가 되기로 했지요. 어머니의 기도가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졸업후 6년간 반도체 엔지니어로 근무하다가 2000년 회사를 사직했다. 이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목회자가 되고자 Washington D.C. 웨슬리 신학교(Wesley Theological Seminary)에 입학, 목회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김 목사는 소외된 사람이 없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꿈에 부풀어 있다.
그 동안 부교역자로 한어성인사역을 담당해 왔던 산타클라라연합감리교회(이성호 목사 시무) 김영래 전도사 역시 이번 연례회의때 목사 안수를 받게 됐다.
김 목사의 목회비전은 "소외없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그 공동체의 지경을 넓혀 가는 것"이다. 이 비전에는 하나님 나라 확장의 꿈이 담겨있다고 말하는 김목사는 비전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소그룹 사역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스로 목사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김 목사. 그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나며 어머니의 기대를 받았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났습니다. 어머니께서 목사가 되기를 바라셔서 목사가 되라고 늘 권면하시며 많은 기도를 드리셨지요"
어머니가 품으신 꿈을 뒤로 하고 공학을 전공해 대학을 갔고 엔지니어가 되길 꿈꾸던 김 목사다. 그런 그가 목회를 꿈꾸기 시작한 건 한 차례의 방황 뒤였다.
대학시절 갑작스런 아버지의 건강악화와 함께 경제적 어려움이 밀려 왔다. 그는 “하나님 믿는 가정이 왜 이런 어려움을 겪어야 하나?,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시는 것인가?” 하는 의심과 불만에 휩싸이며 교회를 떠났고 영적인 방황을 하게 되었다.
"불만 가운데 방황을 했지만 마음은 더 괴로웠습니다" 그런 가운데 우연히 들은 한 설교테잎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을 설교한 것이었다. "애굽의 왕자로 살던 모세가 광야로 쫓겨나 40년간 양치기로 살며 고생했지만 80세의 나이에 하나님을 만났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변신해 가는 과정을 가지고 설교를 하신 말씀이 큰 감동이 되었다"
그 후 김목사는 한번도 나가지 않던 새벽기도회를 매일 출석하며 냉랭하던 모태신앙에 불을 붙여가기 시작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불러주셨습니다. 목회자로요. 기쁨과 감사함으로 부르심에 응답하고 목회자가 되기로 했지요. 어머니의 기도가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졸업후 6년간 반도체 엔지니어로 근무하다가 2000년 회사를 사직했다. 이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목회자가 되고자 Washington D.C. 웨슬리 신학교(Wesley Theological Seminary)에 입학, 목회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김 목사는 소외된 사람이 없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꿈에 부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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