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로드 한인교회 김칠곤 목사
크로스 로드 한인교회 김칠곤 목사

한국기독교의 역사를 보호하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세계 한인 기독교 방송협의회에서 주최하는 제 19차 총회에 개회 예배에 참석한 일이 있다. 그때 말씀을 전하신 목사님의 설교 제목은"교회여 연합하라"이었으며, 예배순서지 표지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는 메세지였다. 그것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세기12:3)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하란에서 가나안 땅에 가려고 하는 아브라함의 순종하는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그에게 주신 축복의 약속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은 이것으로 볼때 위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바라는 삶은 사람들이 서로 서로 사랑으로 연합하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데 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한다. 그래서 기독교는 '사랑의 연합 공동체'를 가꾸어내는 일이 주님 오실날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교회는 점점 세속화 되어 갈 뿐 아니라 이기적으로 개교회만 소중히 여기려 하기에 '교회연합'이라는 것이 찾아 보기 쉽지 않다. 한국 기독교 역사를 놓고 볼때 과거에는 나라의 위기가 처해지면 구국기도 운동과 교회연합 부흥을 통해 성령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것도 이제는 아 옛날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기적이며 분열화된 21세기의 한국 교회의 연합과 교회의 회복을 이루는데 있어서는 과거로 돌아가거나, 그 시대의 방법을 오늘날에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세대간의 대화를 나누는 통로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기독교 복음의 본질은 변하는 것이 아니기에 교회의 연합 운동은 문화가 달라도 계속되어져야 한다. 이것을 위한 실용적인 도구라면, 그것은 곧 '미디어'를 통해 교회의 연합을 이루는 것이다. 미디어가 이제는 기독교의 입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축복을 전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미디어의 역활이 중요하며 사람을 대신하는 미디어는 밝은 세상을 전하는 매체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은 밝은 세상보다는 어두운 세상과 사람들이 말하는 '네거티브의 말,말,말'에만 관심을 두는 상업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세상에 잘 못된 부분을 밝히고 새롭게 변화를 주는 일은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좋은 특성이다. 하지만 미디어가 사실이 아닌 개인의 신상을 밝히거나, 교회내부의 갈등을 사회에 공개함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 내리락 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댓글을 통해 주고 받는다. 이러한 것들을 보면, 오늘날은 정치, 경제, 종교와 구분 없이 누구든 미디어에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것에 대한 댓글을 보면 두가지의 현상을 볼 수 있다. 하나는 희망적이고 도전이 되는 것에는 모두가 한 마음을 가진다. 이 반면에, 네거티브의 말에는 항상 두 갈에의 반응을 보이고 그 가운데 사람들의 욕설이 주어진다.

후자의 경우에 끝 없는 비난이 양측에서 주어지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가는 말이 고아야 오는 말이 곱다."이다.  어느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들이를 가게 되었다. 한 참 걷다가 피곤함을 느낀 할머니가 "영감, 나 좀 업어줄 수 없어?"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업어주기 싫었지만 나 중에 들을 잔소리가 겁이나 할머니를 업어주었다. 업혀가던 할머니는 조금 미안했던지 "나, 무겁지?"라고 하였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그럼, 무겁지!"하고 퉁명스럽게 쏘아 붙였다. 할머니가 "왜?"하고 되묻자 할아버지는 "머리는 돌덩이지, 얼굴은 철판이지, 간은 부었으니까 그렇지"라고 대답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할아버지가 다리를 다쳤다. "할멈, 다리가 아파, 나 좀 업어 주라." 할머니가 갈때의 일도 있고 해서 할아버지를 업어 주었다. 이에 미안한 할아버지가 "나, 무겁지?"하면 자기를 따라할 것 같아서 "나, 가볍지?"하고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그럼 가볍지!"라며 "머리는 비었지, 입은 싸지, 허파엔 바람만 잔뜩 들었으니까?"라고 대답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가장 가까운 사이이다. 그러나 이런 말은 부부사이라 하더라도 서로에게 큰 상처를 준다. 이것으로 볼때 가장 가까운 사람의 관계라 할 지라도 서로가 지켜주어야 할 예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시작되는 말은 사람의 마음에 '크나큰 상처'를 줄수 있다. 이렇게 볼때 나와 가까이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를 해서도 아니되고 지난날 나를 신뢰하며 관계형성을 이루어 왔던 사람들을에 대해 공개적인 비난을 미디어를 통해서 드러내어서도 아니된다.

심리학자이며 하버드 대학교수 이었던 윌리엄 제임스 박사는 사람의 말이 인간의 운명을 결정지기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생각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말이 되기 때문이다. 말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행동을 조심하라, 왜내하면 그것은 습관이 되기 때문이다. 습관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인격이 되기 때문이다. 인격을 조심하라, 왜내하면 그것은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이 곧 말이고 그것이 삶을 결정지기에 말을 하는 것에 조심하라고 성경에서도 말한다.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몸을 어거하며" 말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기에 말을 하기 이전에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잠언15:14) 나의 일이 아니라고 남에게 쉽게 비난하여 상처를 주는 말은 해서도 아니되지만 그것이 결국에는 나에게 화살처럼 돌아오게 된다.

이러하기에 사람들이 입에서 하는 말이 비난과 조롱이 섞인 악한 말이 아닌 선한하고 사람을 살리는 말이어야 한다.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태복음12:34-36)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은 그 자신의 마음속에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기에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인식과 하나님의 방법으로 선한 생각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세상과 기독교인의 차별화 된 삶이다. 사람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헐뜯을 수도 있고, 축복할 수도 있다. 하나님이 믿는자에게 바라시는 것은 분노를 잘 다스리는 것인데 그것의 시작은 곧'입에 재갈을 무는 것'이며 인내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심을 보도록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