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베네딕트 선교사. ⓒ유스미션 제공
원베네딕트 선교사. ⓒ유스미션 제공

<열왕기하 20:1-3>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히스기야 왕의 기도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병이 들어서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죽을 준비를 하라는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하나님께서 죽을 때를 알려주시고 남은 시간을 정리할 수 있도록 알려주신 것은 복입니다. 누구나 죽습니다. 그러나 그 죽을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히스기야 왕에게 죽음이 임박함을 알려주시고 정리할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은, 분명 히스기야를 향하신 하나님의 배려와 사랑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자신이 곧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히스기야 왕은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그의 눈물의 기도는 응답이 되었고, 생명을 15년이나 연장받았습니다. 그러나 15년 후에도, 히스기야 왕이 죽는다는 사실은 마찬가지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우상 숭배에 빠졌던 아버지 아하스 왕과는 달리, 하나님께 인정받을 만큼 여호와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정직히 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수리하고, 우상 숭배의 단을 제거하며, 유월절을 다시 제정하였을 뿐 아니라, 앗수르 침공으로 위험에 처했을 때 기도함으로 문제를 해결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분명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신앙적으로 훌륭했고 기도의 왕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모든 일에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15년의 생명을 연장받은 기도 응답 이후에 교만해졌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고 오히려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렸습니다.

<열왕기하 20:13-15>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이르되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 하니 이사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그들이 다 보았나니 나의 창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하더라"

히스기야 왕은 자신에게 병문안을 왔던 바벨론 신하들에게 왕궁의 모든 은금 보화를 보여주고 자랑을 합니다. 자기 보물들과 군기고와 창고에 있는 것들까지도 다 보여주며 자랑을 했습니다. 한 마디로 자기 자신을 자랑한 것입니다. 자신의 위대함과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며 과시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죽을 병에서 치유받아 15년의 생명을 연장받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병을 고치신 하나님을 높이거나 자랑하는 말을 바벨론 신하들에게 말했다는 기록은 성경에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 대신 자신이 소유한 것들을 자랑하는, 이것이 교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에 대하여 역대하 32:25에서는 그가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진노가 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기도의 응답을 받아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뒤에 오히려 신앙의 본질과 겸손을 잃어버린 듯한 모습입니다. 우리도 충분히 저지를 수 있는 실수입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은 후에 기도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자신의 기도생활과 기도방법을 자랑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간증하기를 좋아합니다. 간증은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자랑하게 만드는 위험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간증하는 일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히스기야 왕의 교만은 결국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할 빌미를 제공하였습니다.

<열왕기하 20:16-18>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이러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 대하여 히스기야 왕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열왕기하 20:19>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이해하기 힘든 반응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기도로 승리를 경험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도 경험했습니다. 자신이 병으로 죽는다는 말씀에 눈물로 기도했고 응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실수와 교만을 회개하지 않습니다. 유다의 멸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돌이켜 달라는 간구도 하지 않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다만 이사야 선지자에게 여호와의 말씀은 선하다고 고백한 후에, 자기가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평화와 안정이 계속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유다의 왕입니다. 백성을 돌보고 백성을 생각해야 하는 왕입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15년의 생명을 연장받은 히스기야 왕은, 자신의 평화와 안정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반응을 합니다. 그에게는 국가를 생각하는 마음도, 백성을 위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히스기야 왕이 기도의 응답을 받고 난 후에 태어난 아들이 므낫세입니다.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 왕이 죽고 난 후에 유다의 왕이 되는데, 유다의 가장 악한 왕 중의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자신의 아들 므낫세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물려주지 못했습니다. 므낫세 왕이 행한 악한 일들의 기록을 보십시오.

<역대하 33:1-9>
"므낫세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오 년 동안 다스리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모든 일월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 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영원히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전에 제단들을 쌓고 또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그의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점치며 사술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으며 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목상을 하나님의 전에 세웠더라 옛적에 하나님께서 이 성전에 대하여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이 성전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둘지라 만일 이스라엘 사람이 내가 명령한 일들 곧 모세를 통하여 전한 모든 율법과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면 내가 그들의 발로 다시는 그의 조상들에게 정하여 준 땅에서 옮기지 않게 하리라 하셨으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모든 나라보다 더욱 심하였더라"

기도의 응답을 받고 15년이나 생명을 연장받은 히스기야는, 차라리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죽는 것이 더 좋았을 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병으로 죽게 되니 이제 정리하라"고 말씀하실 때, 남은 시간을 잘 정리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오히려 더 좋았을 뻔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눈물로 기도했고, 기도의 응답으로 15년을 더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15년 동안 그가 한 일은 무엇인지 잘 살펴 보아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보다도 자기와 자기의 소유를 자랑했고, 그로 인해 유다가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이러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려고 기도하기 보다는, 자기의 평안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을 드러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심어주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 왕에게 죽어야 할 가장 좋은 때를 주신 것이고, 더불어서 죽음의 시간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기도의 응답을 받고 오래 더 산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기도해서 기도의 응답을 받으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소위 기도 응답받는 방법을 알려주는 간증과 집회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해서 소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받는 것이 훌륭한 기도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 응답을 받은 인간은 쉽게 교만해질 수 있고 타락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죄성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교만으로 넘어뜨리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경험한 기도 응답을 신앙 간증이라는 명목으로 자랑하지만, 그것은 자기 자랑이 되기 쉽습니다.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은 신앙 생활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처럼 기도 응답을 받으라고 강요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병들어 죽게 된다고 말씀하실 때, 더 살게 해 달라고 간구하기 보다는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반응하는 것이 더 성숙한 기도라고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죽으라고 말씀하신다면 죽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 달라는 기도를 통해 우리의 욕심과 교만을 버리는 법을 배워 나가야 합니다.

성경에는 기도 응답을 받은 사람들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고린도후서 12:7-9>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는 자신의 육체에 있는 가시를 없애 달라고 3번이나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거절하셨습니다. 그 가시가 어떤 병인지는 잘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은 간질병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문제를 가지고 기도했지만, 소위 말하는 응답은 받지 못했습니다. 치유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하게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가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에게는 오히려 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면서 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가시가 자신의 몸에서 사라지는 것을 위해 구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해도 내가 원하는대로 응답받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시지 않을 때는, 오히려 주지 않는 것이 나를 위한 가장 좋은 길임을 아시는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면 더 기도의 자리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자기를 자랑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문제 있는 사람들로 여기는 편견을 가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의 신앙을 자랑하며 돌아다니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고 교만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오히려 기도의 응답으로 인해 신앙이 무너질수 있고 교만해질 수 있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