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환의 이민 생활 속에서 부대꼈던 20여년의 삶

미국에서 이민온 지 20여년이 되어 가는 정기철 장로. 그는 현재 부동산 회사를 운영하며 중앙아시아선교회를 설립, 지원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정기철 장로는 지금 부동산 사업을 하며 성공한 사업가로서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역시 험난한 이민 생활의 한복판에서 많은 애환을 겪었다.

한국사람 하나 없는 베버리힐스의 마켓에서 혼자 일하는 모험을 하며 입술이 부르트고 혀끝이 갈라질 정도로 긴장했던 일, 미국에서 결혼 후 장사가 안 되는 리커 스토아를 헐값에 사서 의욕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마켓이 위티어 지진으로 망가지고 또 강도가 들어 결국 팔게 됐던 일, 캘리포니아에서도 부자들만 산다는 다이아몬드 바 시에 넓은 마당이 있는 백 평 넘는 새집을 샀지만, LA 폭동과 노스릿지 대지진으로 또 주저앉아야 했던 일 등. 그는 이민 역사의 한복판에서 울고 웃어야 했다.

대학 실패, 한 때 하나님 야속하게 생각하기도....

정기철 장로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녀서 세상을 모르고 살아 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할때까지 학교, 교회, 집만을 다람쥐 쳇 바퀴돌듯이 돌듯 살았고, 술 담배는 물론 유행가라도 부르면 큰일이 나는 줄로 알았다.

그리고 정말 하나님의 말씀안에 살려고 노력했고 그 누구보다도 교회를 위하여 열심히 봉사했지만 대학입시를 실패했을 땐, 하나님을 야속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기도 했다. 그 당시 정 장로에게 하나님은 저 멀리 계시고 숨어 계신 하나님,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였던 것이다.

군대에서 역설의 신앙 체험, 신앙 한단계 성숙하는 계기

그는 공군 헌병으로 입대한 군대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역사를 체험하게 됐다.

부대에서 악명 높은 선임 하사가 있었는데 회식을 하며 술을 먹을 때 꼭 크리스천인 그에게 기도를 시키는 것이였다.

정 장로는 '왜 이렇게 경건치 못하게 예수님이 조롱을 받아야 하죠?'이런 마음이 들었지만 베드로에게 나타났던 부정한 음식에 대한 말씀이 떠올랐다고 한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보자기의 음식 먹기를 거부했던 베드로. 결국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그것을 계기로 이방인을 향한 첫 선교의 문이 열린 사건이 생각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분들이 하나님을 알게 해주시고 성령님이 함께 하셔서 우리 헌병 대원 모두가 사고없이 군생활 잘 마칠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서 그 이후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헌병대원들이 한 명, 두 명 교회로 나오기 시작했고 결국 헌병대원 모두 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그리고 악명 높던 선임 하사도 변화 받아 좋아하던 술과 담배를 끊고 집사가 되어 어디서나 환영 받는 모범 군인으로 변화되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머니 사랑, 하나님의 사랑 아는 통로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특별한 존재지만 정기철 장로 역시 어머니의 사랑을 잊을 수가 없다. 어머니는 새벽마다 잠든 자식들을 두고 살며시 일어나 새벽 기도를 나가시곤 했다.

건설 회사를 운영하던 형이 회사를 부도를 내고 빚쟁이들에게 형수와 함께 쫓겨 다닐 때 그 여파로 몸져누운 아버지를 간호하시면서도 다섯 손녀까지 맡아 기르셨던 어머니이시다.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형의 빚보증 때문에 그나마 남은 전답까지 다 빼앗기고 온 가족이 빈털터리가 돼, 마지막 남은 살고 있던 집마저 고아인 사촌에게 주시면서, "기철아 너는 대학이라도 다니지만 기영인 오갈 데 없는 고아인데 집이라도 있어야 장가라도 갈 수 있지 않겠느냐" 라며 눈물 흘리시던 사랑이 많으신 어머니를 정기철 장로는 잊지 못한다.

정 장로는 이런 어머니가 이민 온 아들을 찾아 LA 공항에서 어머니가 까맣게 그을리고 초췌해지신 모습으로 나타나셨을 때 너무 안쓰러웠다고 고백했다. 그 이후 본인의 삶이 다 하셨음을 아셨는지 자녀들을 불러 놓고 어머니는 "나는 이제 너희와 더 있을 수 없을 것 같구나. 기철아! 막둥이 아들 낳았다고 네 아버지가 그렇게 좋아했었는데 너한테 평생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구나. 너희들 내가 없더라도 서로 왕래하며 도와주며 살아라."라는 말씀을 회상할 때 정 장로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쓸어내고 말았다.

평생 자녀를 위해 희생하셨던 어머니는 마지막 가시는 길도 자녀들에게 부담이 될까 봐 스스로 공원묘지를 사두셨고, 자신의 용돈을 모아 장례비용까지 준비해 놓으셨다고.

이런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 통로가 됐음을 고백하는 정 장로는 그 사랑이 어려운 이민 생활 가운데 지켜 주는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중앙아시아선교회 설립 통해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 실천

정 장로는 현재 중앙아시아선교회를 설립해 지원하고 있다. 사업을 하던중 장애인 구회단체의 한 백인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자신도 인공심장을 어께에 메고 사는 불편한 몸인데도 입양된 장애아 들을 위하여 헌신하는 모습이 그에게 큰 자극이 됐다.

정 장로는 이러한 사랑을 실천하고자 현재 중앙아시아선교회를 설립, 키리키즈 공화국 비쉬켁에서 선교하고 있는 장금주 선교사를 도와 모슬렘 나라에서 정규 크리스천 대학을 인허 받아 운영하고 있으며 활발하게 의료사역과 구제 사역도 펼치고 있다.

한편 정 장로는 바쁜 이민 생활 가운데서도 대학원에 입학하고 저녁마다 90마일이 넘는 길을 운전해 다니며 공부해 7년 만에 경영학 박사학위를 딴 노력파이다. 또한 중앙 아시아에 선교사로 나가기 위해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틈틈히 글을 써온 그는 월간 창조문예를 통하여 등단하여 월간모던포엠, 월간 좋은 생각 ,기독문예등에 수필을 기고하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 선교사, 사업가, 작가로서 더블 라이프를 살고자 하는 정기철 장로, 그는 지금까지 임하셨던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않고 그 사랑를 실천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달려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