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사무엘상 17장 12절 - 16절

사울 왕에게서 악신을 쫓기 위해 악기를 연주하도록 왕궁에 오게 된 다윗이 얼마나 오랫동안 머물렀는지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울 왕이 꽤 오래 악신에게 시달렸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아마 다윗은 꽤 오랜 동안 왕궁에 머물러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어느 덧 사울 왕이 더 이상 악신에게 시달림을 받지 않게 되자 다윗은 다시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다시 양을 치는 목자로 돌아갑니다. 다윗은 선지자 사무엘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은 다윗에게 네가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고 일러두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선지자 사무엘의 예언을 결코 무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리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만약 다윗이 왕이 될 야망이 있던 사람이었다면 서둘러 이스라엘 왕궁을 떠나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왕궁에 남아 있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이 되도록 하신다 해도 어떻게든 자신 스스로 왕이 되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나라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왕위에 오를 때 어려움이 없도록 만들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성경을 읽어보아도 다윗이 스스로 왕위에 오르려고 노력했다는 흔적이 보이질 않습니다. 왕궁에서의 자기 할 일이 끝나니까 도로 집으로 돌아옵니다. 다시 양치는 일에 헌신합니다.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은 자기의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랬기에 다윗은 자기 스스로 왕위에 오르려고 애쓰지도 않았습니다. 억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성실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또 고린도교회에도 이렇게 권면하십니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고전 7:17).”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나눠주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부르신 부르심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눠주신 분량이나 부르신 부르심 그 이상의 것은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나눠주신 그 분량, 불러주신 그 부르심에 성실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다윗이 다윗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양치는 일에 성실했고, 그 일에 헌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에 성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눠주신 그 일에 성실했고,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그 일에 신실했습니다. 실은 여기에 다윗의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 다윗을 쓰시고, 다윗을 훈련시키시고, 다윗에게 기적의 씨를 심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어떠하셨습니까? 예수님은 공생애를 제외하면 그 이전 30년을 나사렛에서 보내셨습니다. 그동안 어떤 일을 하셨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누가복음 2장 51절에 보면, “예수께서 한 가지로 내려 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부모님께 순종하셨습니다. 부모님을 극진히 모셨습니다. 그랬기에 아버지 요셉이 하던 목수 일을 이어 받으셨습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 요셉을 대신해서 예수님은 많은 형제들과 여동생들을 잘 보살펴 주셨습니다. 그 일을 하시는 동안 예수님은 공생애를 준비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내어 놓으십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실 때까지, 하나님의 무대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움을 받기까지 맡겨진 일상에 성실했습니다. 그래서 시편 78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종 다윗을 택하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하나님께서 다윗을 양의 우리에서 취하셨다고 하십니다. 들에서도 아니고, 산에서도 아니고, 이새의 집에서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양을 모아 넣어두는 우리에서 취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양과 더불어 잤습니다. 양과 더불어 깨어났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은 다윗을 양 우리에서 불러내신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그들을 다 어디에서 부르십니까? 침상에 누워 자는 이들을 불러내신 적 없으십니다. 아무 일도 안 하고 빈둥대던 이들을 불러내신 적 없으십니다.

바다에서 열심히 그물을 던지며 고기를 잡던 어부들을 부르십니다. 세관에서 자기 일에 여념이 없는 세리를 부르십니다. 자기 일에 성실한 사람은 하나님의 일에도 성실합니다. 양 우리에서 살다시피 하던 다윗을 하나님은 부르셨습니다. 그의 성실하심을 너무나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에게 있어서 목자로서의 삶은 하나님께서 은밀하게 가르치시던 학교였습니다. 다윗의 믿음이 자라나고 성장하고 성숙하고 아름답게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왕궁에서가 아니라 목자로서 양을 칠 때였습니다. 그의 말대로 목자로서의 삶은 ‘지존자의 은밀한 곳’이었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던 장소였습니다. 베들레헴 들판에서 목자로 살면서 그는 사자와 곰을 맨손으로도 죽일 수 있는 힘을 길렀습니다.

물맷돌을 던지는 기술도 익혔습니다. 실제로 사사기 20장 1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 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호리도 틀림이 없는 자더라.” 여기 7백 명의 특수 정예군이 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7백 명 모두가 왼손잡이였습니다. 또 하나는 그들의 무기는 물맷돌이었습니다. 얼마나 정확하게 물맷돌을 던질 수 있었던지 호리도 틀림이 없었다고 합니다. 정확하게 물맷돌을 던지는 일은 뛰어난 무술이었습니다. 다윗은 목자로 있으면서 이 물맷돌 던지는 무술을 훌륭하게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다윗을 강하게 성장시킨 무기는 다름 아닌 하나님과의 교제였습니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밤에 다윗은 늘 하나님을 묵상했습니다. 그의 묵상이 얼마나 깊었는지는 시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시 8:3-4)?” 다윗에게는 기도의 골방이 곧 믿음의 전쟁터였습니다. 믿음의 전쟁터에서 승리했을 때 하나님은 다윗의 인생에 승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도의 골방에서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이 가르침으로 믿음의 전쟁터에 나갈 무기를 삼게 하십니다. 그렇기에 기도의 골방에서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사람들이 실제로 가진 무기요, 힘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먼저 믿음의 전쟁터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우선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실패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을 다윗 되게 만든 것은 바로 양 우리였습니다. 오늘도 우리들의 일상이 지루하고 피곤하고 무용한 듯 보여도 하나님은 이를 통해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우리를 성장시키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시는 분이심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