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간의 부부항해 내비게이터
엄정희 | 코리아닷컴 | 232쪽
책이 홍수처럼 출판되는 이 시대에 정말 좋은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 엄정희 교수는 경기여고와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영국에서 유학을 마친 후 국내에 들어와 상담학 박사를 받고, 현재 가족상담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입니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네.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네.' 이런 느낌 조금 있으셨지요? 저도 솔직히 그랬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한 번도 잘난(?) 모습이 보이지 않아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오히려 따스한 온기마저 느꼈습니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을까요? 두 가지 이유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나는 큰 시련(연단)입니다. 결혼한 지 5년 만에 어렵게 아들을 얻었는데, 생명보다 사랑하는 그 아들이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가슴앓이를 하게 되었고, 이듬해 위암 선고를 받습니다. 하지만 삶의 희망을 완전히 잃었기에 위암 진단에조차 무감각했습니다. 죽어도 상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산 것이지요. 그런데 고사리손을 모아 기도하는 어린 딸과 남편의 헌신적인 보살핌이, 죽은 것처럼 보였던 엄 교수에게 새순을 허락합니다. 삶의 의지를 되찾게 해준 것이지요. 그래서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해 50대에 석사와 박사 학위를 딴 그녀는, 가정상담 전문가로서의 삶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습니다. 책을 쓸 당시 결혼 36년차의 공공연한 '닭살부부'로 소문난 이승한·엄정희 부부는, 이러한 연단을 이기고 수많은 실험을 거친 임상적 경험과 학문적 연구, 그리고 오랜 동안 부부상담 사역을 통해 얻은 특별한 지혜로 이 책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교만하지 않게 느낀 이유는 '신앙' 때문입니다. 그녀는 지구촌교회에서 이동원 목사님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이 책 마지막 17번째 항해의 제목도 '영성을 키우는 항해'입니다. 수많은 상담과 심리학 이론, 그리고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와 의미 있는 내용들을 서술했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한계를 인정하는 삶의 항해를 해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부부가 학력, 재산, 명예 등 세상의 좋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지만, 36년간 부부 생활을 웬만큼 해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영적인 이끌림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전개 방식이 참 재미있습니다. 단순하게 '부부가 화목하게 살기 위해서는 17가지의 요소가 필요하다'고 써도 별 문제가 없었을 텐데, 독자들이 시각적인 그림을 그리며 쉽게 따라올 수 있도록 배를 통한 항해의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부부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으로 표현한 저자는, 먼저 Part1. '부부항해를 위한 점검'이 필요함을 말합니다. '키의 방향은 어디로?', '노는 어떻게 젓는가?' '닻은 어디로 내려야 하는가?' 라는 제목으로 책의 전체 그림을 간단히 그려줍니다. 한 마디로 부부가 정확한 목적지를 동일하게 갖고 인생의 항해를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Part2. '항로 탐색하기'를 통해 17일 중 처음 4일 동안의 항해를 설명합니다. 친밀감을 갖기 위해서는 첫사랑의 기억을 회복해야 하고, 성격 차이를 보물로 만드는 방법과, 말과 뜻을 잘 통하게 하는 항해의 방법도 알려줍니다. 여기서 '의사소통 10계명'이 나오는데, 그 중 'FAMILY 대화법'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Friendly(우호적인 감정)으로 Attention(상대에 주목하며) Me too(맞장구치고) Interest(관심과 흥미를 표현하며) Look(상대를 응시하면서) You are centered(말하는 사람이 중심 인물)인 것처럼 대화하라. 정말 이렇게 대화하면 의사소통이 안 될 수가 없겠더라고요.
Part3. '위험한 암초 피해 가기'에서는 여덟째 날까지의 항해를 설명하는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법, 긍정적 자아상을 만드는 법, 남녀 성차를 이해하는 법, 부부 갈등을 해결하는 항해의 방법 등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유머가 있더군요. 남자들은 성에 대해 표현할 때 이런 '척'을 한답니다. 10대 해본 척, 20대 큰 척, 30대 센 척, 40대 잘하는 척, 50대 아픈 척, 60대 자는 척, 70대 죽은 척. 한편 여성은 이런 '척'을 합니다. 10대 안해본 척, 20대 모르는 척, 30대 수줍은 척, 40대 싫은 척, 50대 굶은 척, 60대 미친 척. 그러면서 "남자는 창검술이고, 여자는 궁술이다"라는 표현으로 남성과 여성의 성적 차이를 설명합니다. 이것이 책의 또 하나의 장점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고민하는 문제에 대해 숨기지 않고, 상담학적으로 다가간다는 것!
Part4. '다가오는 파도 뛰어넘기'에서는 외도를 막는 방법, 중독을 치료하는 방법, 가정폭력을 예방하는 방법 등 실제적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타조 반응'이라는 것이 있더군요. 타조는 두려운 게 나타나면 머리를 깃털 속에 묻고 숨습니다. 이렇게 타조처럼 문제를 무시하기로 선택하는 것을 '타조 반응'이라고 하는데, 의외로 타조 반응을 보이는 중독자 가정이 많습니다.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는데도 머리만 숨긴 채 시간이 지나기를 바란다면, 결코 중독을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Part5. '뜻밖의 돌풍 빠져나오기'에서는 가정경제 문제, 자녀 문제, 부부 역할 문제, 고부 관계 등을 다룹니다. 부부항해를 할 때 익숙한 항로를 만나기도 합니다. 가사와 육아, 경제 관리 등이 익숙한 항로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익숙함을 잘못 관리하면 모든 일이 무뎌집니다. 감각을 잃어버려 기능을 상실한 무뎌짐은 곧 항로에서 이탈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지요. 그래서 5장에서는 경제, 자녀, 부부, 고부간의 무뎌진 마음을 섬세하고 예리한 마음으로 바꾸어 험한 바다를 헤쳐 나가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Part6. '영혼의 등대 찾기'에서 결론적 언급을 합니다. 영성을 키우는 항해가 되어야 부부가 평생 안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파괴와 해체의 포스트모던 시대 바다에서 가정들이 파선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항해길은 내비게이터가 필요합니다. 노련한 선장이 내비게이터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니요. 바다와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만이 유일한 내비게이터가 될 수 있습니다.
저자의 표현이 참 기막히지 않습니까? 1장부터 제목을 점검해 보십시오. ☞항해를 위한 점검 ☞항로 탐색 ☞위험한 암초 피해 가기 ☞다가오는 파도 뛰어넘기 ☞뜻밖의 돌풍 빠져나오기 ☞영혼의 등대 찾기.
출발하는 배, 흔들리는 배, 길을 잃은 배, 심지어 구멍난 배도 목적지에 갈 수 있습니다. 내비게이터가 되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면 됩니다. 부부가 다른 곳을 보지 않고, 하나의 내비게이터를 바라보면 아름다운 항해를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좋은 책입니다. 인세 전액이 장애우 빵공장 뜨랑슈아에 기증된다고 하네요. '노블레스 오블리주', 믿음의 사람이 저술한 따스한 책! 참 따스한 느낌이 듭니다.
사랑합니다. 하늘뜻섬김지기 이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