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망언(妄言)은 과연 실수인가? 대부분은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한 순간 튀어 나오는 말 한마디가 정치인의 속마음을 여지 없이 드러내기도 하며, 사람들은 ‘역시나, 뻔한 거지’하면서 씁쓸해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인의 망언도 때로는 의도된 것일 수 있다. 정치적인 수세에 몰렸을 경우에 국면 전환용으로 혹은 이슈 선점용으로, 무리한 줄 알면서도 망언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의 망언은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서 나오는 것이다.
요즘 망언계에서 단연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은 일본의 수상 ‘아베 신조’이다. 매일 매일 쏟아 놓는 말 하나 하나가 망언에 가깝다. 망언도 한두 번이어야지 그 속내를 곱씹어 보지, 아베의 망언은 거의 치매를 의심케 하는 망발의 연속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통해 한국과 중국의 심기를 건드린 것을 시작으로 해서, 이제는 미국의 발목까지 잡아 당기고 있는 셈이라, 이제는 미국도 강 건너 불구경 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와 있다.
물론, 아베가 수상이 될 때 많은 사람들이 우경화에 대한 우려를 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아니 거의 무식하게 대 놓고 우경화 될 줄은 몰랐다. 평화 헌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교전권을 획득하고 자위대를 군대로 격상시키려 할 뿐 아니라, 주변 여러 나라를 자극해서 위기 의식을 통해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또한 국내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아베 노믹스’로 인해 자국민에게 경제가 살아나고 있는 것처럼 선전하지만, 실상 아베 노믹스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고통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진통제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뿐이 아니다. 여전히 제어가 되지 않는 후쿠시마 원전 문제가 틈틈이 보도되고 있지만, 아베 내각은 이렇다 할 해결책을 내 놓기는커녕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어서, BBC와 더불어 공영방송의 양대 자존심이라고 불리는 NHK의 회장마저 자신의 측근으로 임명시켜서 언론 장악까지 시도하고 있다. 누가 아베의 낙하산이 아니랄까봐 취임 기자회견에서 ‘모미이 가쓰토’ NHK 회장은 위안부에 대한 망언을 일삼더니, 이제는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 정부의 주장을 적극 뒷받침 하겠다는 등 아베 내각의 망언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이런 아베의 거침없는 행보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은 얼마 전 치러진 도쿄 도지사 선거였다. 이번 선거는 계속 되는 아베 내각의 우경화에 대한 중간 평가의 성격을 가진 매우 중요한 선거였다. 여기에는 아베의 정치적인 스승인 고이즈미 전 수상의 지지를 받고, 전격적인 탈핵을 주장한 호소카와 후보가 나섬으로 인해 고이즈미와 아베의 대리전의 양상도 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나 예상된 저조한 투표율과 더불어 아베 총리의 지원을 받는 마스조에 요이치 후보의 완승에 가까운 승리였다. 이로 인해 아베는 재신임을 받은 것으로 여겨지고, 자신의 정치 행보에 더 큰 탄력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아베 내각을 바라보는 일본인의 속마음이다. 일본인의 마음은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가 있다고들 말한다. ‘다테마에’가 쉽게 드러내는 마음,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 예의 바른 마음이라면 ‘혼네’는 숨겨진 속마음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궁금하면서도 걱정이 되는 것은 아베의 망언이 일본인의 ‘혼네’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일본인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나, 아베 내각의 우경화에 대한 일본 국민의 철저한 무관심은 무섭기까지 하다. 이 무관심이 정말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암묵적인 동의를 의미하는 침묵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그렇지만 이는 주의 깊게 살펴 보아야 할 문제다.
제2의 경제대국의 자리에서 곤두박질한 일본 국민의 상실감과 위기의식이 우경화의 자양분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일본 국민의 ‘혼네’에 호소한다. 역사에서 비극이란 거짓된 정치인의 선동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외면하고 침묵하는 다수의 동의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