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공 김재준 목사의 영정. ⓒ신태진 기자

(사)장공김재준목사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가 27일 오전 11시 한신대 신대원 컨벤션홀에서 '장공(長空) 김재준 목사 27주기 추모예배'와 2014년도 정기총회를 열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이하 기장)의 창립자인 김재준 목사는 일제 말기인 1940년 조선신학원(한신대학교의 전신)과 경동교회를 설립했고, 53년 한국기독교장로회를 창립했다. 군사독재 당시에는 반독재 민주화투쟁에 나서 1969년 3선개헌반대 범국민투쟁위원장, 1972년 국제앰네스티 한국위원회 이사장, 1973년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공동의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추모예배에는 김재준 목사의 막내아들인 김관용 장로 등 유가족과 제자 및 교단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현숙 이사(기념사업회)가 예배 인도를 맡았고, 배태진 목사(기장 총무)는 개회 기도에서 "이 땅의 교회들이 바리새주의와 독선주의의 포로로 잡혀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장공 김재준 목사님을 기수로 삼아 교회를 새롭게 하는 누룩으로 사용하셨다. 장공은 정의와 평화와 생명의 길로 갔으나, 우리는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고 있다. 남북 갈등이 계속되는 것은 우리가 화해의 일꾼과 평화의 사도가 되지 못했기 때문임을 고백한다. 장공을 통해 모범을 보이신 그 길로 가길 바란다"고 했다.

김상근 목사가 문동환 목사의 설교문을 대독하고 있다. ⓒ신태진 기자

설교는 당초 문동환 목사(한신대 명예교수)가 하기로 했으나 건강상 문제로 불참했고, 김상근 목사(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명예대표)가 문 목사의 원고를 대독했다. 문 목사는 '옳고 그름을'(사 1:10~17/막 11:15~19)이라는 제목의 원고에서 "나는 은진중학교 2학년이었던 15살 때, 김재준 목사님을 처음 만났다. 학생들은 교목인 김 목사님을 '천지선생'이라 불렀다. 그는 학생을 보지 않고 천장과 발바닥만 봤지만, 그의 가르침은 보석과 같이 아름다웠다"고 회상했다.

그는 "김 목사님은 '칼빈의 물질에 대한 가르침에서 자본주의가 탄생했다'고 말했다. 칼빈은 '열심히 일하고 부를 축적하고 선하게 사용하라'고 했지만, 일단 부자가 되면 그것을 선하게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본주의는 그릇된 것이라고 가르쳤다"며 "김 목사님은 참된 제자의 삶은, 옳고 그른 것을 명확히 보고 옳은 길로 가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다"고 했다.

또 "김 목사님은 강자의 문화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실제 행동으로 새 길을 창출해야 한다고 여겼다. 새로운 진리의 공동체를 창출해야 한다며 서울에 와서 조신신학교(현 한신대)를 세웠다. (보수 교계에서는) 그를 이단으로 몰았지만, 그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만우(송창근 목사)는 문제를 적당히 해결하려고 했으나, 장공(김재준 목사)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며 소신을 밝히는 성명서를 냈고, 이단으로 몰렸으나 동시에 기장이 탄생했다. 현재는 그를 이단이라고 말하는 자가 없다. 기장도 독재정권 타도 등 민주화에 크게 공헌했다. 장공을 경외하는 우리는 새 내일의 창출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이기영 목사는 추모사에서 "장공은 20세기 무렵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 전기를 읽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 프란시스의 무소유의 순례적 삶이 청년 장공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고 흠모케 했다. 장공은 프란시스의 전기를 만우에게 보냈고, 둘은 곧 아시시의 성자와 친밀해졌다. 얼마 후 만우가 지어 보낸 '장공'이란 호에는 '무일푼의 방랑자'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우리 기장 후학들은 13세기 성 프란시스의 신앙과 신학을 오늘의 상황에서 재조명하고 새로운 목회적 삶의 원동력이 될 경건신앙과 신학 수립을 해 보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어 "장공은 민족의 자주성이라는 척도에 따라, 고구려의 자주를 위해서 중국과 일대일로 대결한 을지문덕, 연개소문, 양만춘 등을 민족정신의 효시라고 평가하고 있다. 고구려의 멸망은 한국의 역사와 한국인의 자주성에 결정적 분수령이 됐고, 그 때부터 우리 역사는 외세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고 위축일로를 걸었다는 관찰이다. 고려와 조선조, 그리고 일제강점과 그 이후 일련의 역사는 민족의 자주성과 민족정기의 위축의 일로였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은 침략근성이 깊이 박힌 민족이라며 엄히 경계해야 할 면을 교훈했다"고 했다.

이 목사는 "오늘날 장공의 신학을 배척한 보수적·근본주의적인 장로교단을 비롯한 한국교회는 어떤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가. 지난 60년 동안 바리새적 율법주의와 사두개적 교권주의에다 헤롯당의 정치지원에 안주하고 농성하면서, 맘몬왕 노릇 하는 자본주의 경제성장 원리에 기초한 교회성장신화를 내세우면서 자기 몸 불리기에 여념이 없다"며 "장공의 새로운 복음 이해와 개혁적 진리와 정의, 사랑과 심판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해야 할 때이다. 장공이 <십자군>과 <제3일>을 통해 들려주던 메시지가 또 다시 그리워지는 시대"라고 했다.

김수배 목사(기장 증경총회장)의 축도로 예배는 마무리됐고, 이어 2014년도 정기총회가 진행됐다. 기념사업회는 2014년 사업으로 장공 장학금 수여(한신대 신대원 4명에게 등록금 전액), 장공 논문상 시상, 장공기념강연회 및 회원총회, 장공사상연구 목요강좌, 연 4회 회보 발간, (가칭) '장공 김재준의 삶과 신학' 발간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