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년간 기독교는 유럽·미국 중심의 서구에서 급속히 퇴조한 대신,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등에서 활발히 성장하고 있다. ‘10/40창(窓) 선교’, ‘미전도종족 선교’ , ‘전방개척 선교’ 등을 통해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된 지난 세기를 거치면서, 기독교는 그야말로 ‘전 세계인의 종교’, 특히 ‘제3세계의 종교’가 됐다.
故 랄프 윈터 박사 등 수많은 학자들이 주목했던 이 ‘세계 기독교의 지형 변화’는, ‘세계기독교학(Studies in World Christianity 또는 Global Christianity)’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부상시키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 성산동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세미나실에서 개최된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제321회 학술발표회에서는, 이 같은 흐름을 소개하면서 한국 기독교 학계의 과제를 제시하는 주제발표가 진행됐다.
‘세계기독교학의 부상과 연구현황: 예일-에든버러 세계기독교 및 선교역사학회를 중심으로’를 발표한 이재근 박사(합동신대·교회사)는 “1900년에는 전 세계 기독교 인구 중 80%가 코카서스인, 즉 유럽·북미·호주 등에 거주하는 백인이었지만, 현재는 그 비율이 25%에 지나지 않으며 지금 추세라면 2050년까지 20% 미만으로 떨어질 것”이라며 “많은 역사가와 신학자는 이 변화된 지형도의 의미와 과제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 에너지를 집중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기독교학, 아직 형성기이지만 지속적 생명력 유지할 것”
이 박사에 따르면 실제로 1980년대 초반부터 여러 선구자들의 수고로 서구에서는 이런 비서구 기독교의 역사와 문화, 신학을 서구 교회의 선교 역사, 경건주의 및 복음주의 운동 역사, 부흥운동사, 문화 및 선교인류학, 종교학, 사회학 등과 연계해서 연구하는 ‘세계기독교학’이 새로운 학문으로 공식 등장했다. 그는 “지난 50년간 일어난 변화는 기독교 초기 수십 년 동안 일어난 변화를 제외하고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극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계기독교학은 전통적 신학과 역사학의 주요 분과 학문과는 달리 아직은 신생학문으로 여전히 형성기에 있지만, 이 학문이 오래도록 지속적인 생명력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며 “수많은 통계와 많은 학문적 분석자료들이 주장하듯, 다음 세대를 이끌 기독교의 주체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 지역에서 성장한 교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 박사는 한국 기독교 및 기독교 학계, 특히 한국 기독교 역사학계의 장기 과제도 여기서 찾을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교회사나 기독교사(史)는 특정 전통·지역·시기만 따로 떼어서 독립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주제영역이 아니고, 언제나 문화와 국경의 영역을 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네트워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는 “선교운동 시작(개신교 18세기) 후, 전세계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동질성을 지향하는 ‘세계화(globalization)’를 경험하면서 소위 보편화되었지만, 세계화만으로는 각 나라·지역·문화·시대별 기독교 역사의 특수성과 다양성으로 대변되는 ‘지역화(localization)’의 역사를 볼 수 없기 때문에 현미경적 시각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을 일반화해 버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며 “결국 두 시각을 적절히 조화시킬 수 있는 ‘세계-지역화(glocalization)’의 시각이 필요한데, ‘세계 기독교, 세계기독교학’의 오늘날 현황은 한국 기독교를 ‘세계 기독교’ 또는 ‘아시아 기독교’라는 전체적인 틀 안에서 바라보고 자리매김하는 연구가 더 많이 필요함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세계기독교학의 발전: 월즈의 공헌, 에든버러大의 지원
이재근 박사는 결론에 앞서 세계기독교학의 발전 과정을 소개했다. 이 분야의 선구자는 앤드류 월즈(Andrew F. Walls)로, 그는 감리회 평신도로서 졸업 후 여러 기독교계 연구기관에서 연구 업무에 종사하다 약 30세인 1957년 아프리카 시에아리온과 나이지리아에서 교수 선교사로 봉직했다. 그는 그곳에서의 연구를 통해 ‘서구 학계에서 기독교 역사에 접근하는 전통적 연구방식은 실제 선교를 통해 진행되는 기독교 확장운동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에 차지하는 비서구 기독교의 존재와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함’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초대교회 전공자였던 그의 학문이 아프리카 학생들에게 감흥을 주지 못함을 깨닫고, 서구 교회 전통의 재검토와 아프리카 교회의 배경 문화·종교 등을 종합 연구한 후 “아프리카인들이 현재 경험하고 있는 세계관의 틀에서 형성된 기독교와 여러 현상은, 오히려 계몽주의 시대 이후 현대 서구 기독교 세계의 현상보다 초대교회의 현실에 더 가깝다”고 결론내렸다. ‘세계기독교학’의 출발이었다.
이후 1966년 스코틀랜드 아버딘대학으로 돌아온 월즈는 1970년 부교수로 승진한 후 그곳에서 전문가들을 끌어모아 세계기독교학의 틀을 잡아나갔고, 1982년 비서구기독교연구소(Centre for the Study of Christianity in the Non-Western World)를 설립하면서 학문적으로 도약하게 된다. 그러나 월즈 교수의 심장마비와 대학측의 재정적 어려움으로 연구소는 위기를 맞았고, 에든버러대학 뉴컬리지(신학부)가 그 배턴을 이어받는다. 1867년 최초의 선교학 교수를 임명한 대학이자 1910년 ‘세계선교대회’가 열린 이곳에서, 연구소는 명실상부하게 세계 기독교와 기독교 선교를 통전적 학제간 연구방식으로 연구하고 성과를 나누는 전당으로 자리매김했다.
월즈가 1996년 은퇴한 후, 연구소는 기독교-무슬림 관계 전문가 데이비드 커(David Kerr), 말라위 선교사 출신 잭 톰슨(Jack Thompson)에 이어 2009년 브라이언 스탠리(Brian Stanley)가 소장직을 맡으면서 재도약기를 맞고 있다. 스탠리는 연구소 이름을 세계기독교연구소(Centre for the Study of World Christianity)로 바꾸면서 학문연구의 초점을 선교학(Missionary Studies)에서 세계기독교학-세계 기독교의 역사, 신학, 문화, 윤리, 종교, 정치, 민족, 성(性) 등을 포괄하는 영역-으로 옮겼다.
세계기독교학, 영미권에서 조직신학·교회사·성서학 등과 대등
이재근 박사는 “이같은 용어 변경은 ‘비서구’라는 표현에 내재된 서구 중심적 사고방식이 수용되기 힘든 시대변화를 반영하고, 학문 연구범위가 단지 ‘비서구’의 기독교가 아니라 ‘서구를 포함한 전 세계’ 기독교의 존재와 유기적 상호관계임을 재인식시킨 새로운 결정”이라며 “오늘날에는 이 분야 교수를 다중 또는 이중 언어에 능통하고 학문적 명성을 갖춘 학교에서 최종학위를 취득했으며, 자국 기독교와 서구 기독교 또는 대륙별·지역별 기독교 역사와 현상을 종합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백과사전적 지식’을 가진 비서구인 학자로 채용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소개했다. 최근에는 영미권 주요 신학회에서도 ‘세계기독교학’이 조직신학이나 교회사, 성서학, 윤리학 등 신학 전통 분과와 대등한 위치의 분과로 신설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 학문 이름 그대로 ‘세계화’를 담보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전세계 학문 네트워크의 지속적인 성장이었고, 이 네트워크 결성과 확장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이 바로 ‘예일-에든버러 세계기독교 및 선교역사학회(이하 예일-에든버러 학회)’였다”고 전했다. 학회에서는 다양한 학문 방법론을 활용하는 전문가들이 동일 주제를 다양한 관점에 따라 판단하게 한다.
이 학회는 월즈가 아버딘대학을 떠나 예일대 신학부 교수가 된 감비아 학자 라민 산네(Lamin Sanneh)와 함께 결성한 학자들의 모임으로, 1992년부터 매년 예일대학과 에든버러대학에서 교대로 열리고 있다. 학회는 ‘선교운동의 역사적 양상들과 세계기독교의 발전상에 대한 정보를 논의하고 교환하는 일을 촉진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이 정보를 문서화하기 위해’, 그리고 ‘정치·사회·외교·종교·역사 영역에서 나온 관점들을 선교운동의 의미와 이 운동이 전세계에 끼친 효과를 재평가하는 데 활용’하는 포럼이다. 지난해 예일대에서 열린 학회는 ‘선교역사와 세계기독교에서의 건강·치유·의료’, 올해 6월 에든버러대에서 열리는 학회 주제는 ‘선교역사와 세계기독교에서의 성(gender)과 가족’이다.
이 박사는 지난 3년간 학회에서 본 세계기독교학의 동향을 전하기도 했다. 그 특징은 첫째, 발표자 수 평균 40명은 참석자 평균 80명의 절반 정도로 논문을 통한 공헌보다는 배우는 데 관심이 있는 학계 입문자들이 많이 참석한다. 둘째, 발표자 비율은 7대 3 정도로 여전히 서구권 학자가 많지만, 세계적 명성이 있는 서구권 학회 중 비서구인 참석자 비율이 가장 높다. 셋째, 비서구권 발표자들 중에는 아시아권 비율이 압도적인데, 이는 정치·경제·학문적 여건에 비례한다. 넷째, 아프리카권은 가나와 나이지리아 등 특정 국가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다섯째, 세계 기독교 인구 분포에서의 엄청난 약진에도 지난 100년간 중남미 기독교는 학문세계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다.
학회 발표논문의 지역별 통계상의 특징도 소개했다. 첫째, 오늘날 세계기독교학 연구는 주로 아시아(50.38%)와 아프리카(30.08%)에 집중됐으며, 중남미나 북미 인디언, 오세아니아, 소종파 등의 주제는 무시되고 있다. 둘째, 독립된 ‘아프리카 기독교학’이 활성화되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이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문화가 전체적으로 동질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중국 기독교의 압도적 인기로, 관련 연구자들 중 80%는 유럽·미국 출신이다.
‘중국 쏠림 현상’에 대해 그는 “무엇보다 현실 세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위치변화 때문으로, 특히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인도와 아프리카에 관심이 많았던 영국과 달리 미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관심은 상상을 초월한다”며 “미국 교회는 중국에 공산화 이전 물질과 인력을 전적으로 쏟아부어 중국이 갑자기 모든 선교사들을 추방하고 기독교를 박해했을 때 큰 상실감을 겪었으나, 중국 개방 후 지하교회 등 드러난 실상은 이들이 다시 흥분할 모든 요소를 그대로 갖췄다”고 풀이했다.
이날 세미나에 앞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제20회 총회 및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제11회 총회가 열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