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경기에서 해프타임은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을 시작하기 전까지의 시간이다. 애프터 해프타임은 대략 후반전에 해당한다. 신앙생활을 중심으로 전반전과 후반전을 나누어보는 ‘인생해프타임’ 개념은 미국에서는 ‘밥 버포드’ 목사에 의해 보편화되었고, 최근 한국 교회에도 제법 알려진 개념이 되었다. 이 견해에 의하면, 인생의 큰 전환이 해프타임이라고 한다. 이 해프타임 이전이 나를 위한 ‘성공’을 추구하던 시간이었다면, 해프타임 이후, 곧 애프터 해프타임은 내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의미를 찾고 그것을 이루는 일에 집중하며 사는 시간이다.
이렇게 보니 우리 이민자들에게는 전반전이 너무 긴 듯하다. 보편적으로 인생의 전반전이 끝나는 나이는 50세 전후이어야 한다. 이 때 쯤이면 사회적인 기반도 잡히고 아이들에 대한 양육 책임도 어느 정도 끝난다. 하지만 이민자의 전반전은 유독히 길어 보인다. 낯선 땅에서 새로이 삶의 기반을 이루려고 애쓰다보니 자연히 그 기간이 길어지고, 이로 인해 생긴 ‘관성’에 따라 그저 정신 없이 열심히 자기의 노후와 자녀를 위해서 살다보니, 전반전을 끝내라는 주님의 호각을 듣지 못하고 연장전이 한창일 시간까지 자기와 가족만을 위한 삶을 사는 전반전을 뛰고 있는 느낌이다.
인생의 승부는 후반전에서 난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맡았던 기간이 후반전이 아니라, 전반전인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대통령이었던 과거의 직책을 발판 삼아 임기 후, 곧 그의 애프터 해프 탈임에 더 크게 활동했다.
후반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예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믿음의 끈을 조여야 한다. 또 ‘예수 가치’를 목표로 살아야 한다. 내가 존재하는 의미를 실천하되, 그 실천의 현장은 나와 내 가족의 담장을 넘어서야 한다(막 10:45). 무엇보다도 기억해야할 후반전을 사는 원리가 빌립보서 4장 5절에 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주님 앞에 갈 때가 가까워진 애프터 하프타임에는 ‘관용’을 익히고 살아야 한다는 교훈이다. 더 너그럽게 모든 사람을 대하며, 더 쉽게 손해보고 (어떤 이들은 이런 손해를 거룩한 손해라고 부른다), 더 기꺼이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이 관용의 삶이다. 전반전은 지위와 부 그리고 명예의 성취를 통해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시간이었다면, 후반전은 ‘관용’을 통해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진정한 영향력은 외적인 힘을 통해서가 아니라 ‘관용’을 통해 나온다. 이민자들의 교회는 서로 서로에게 더 큰 ‘관용’을 기다리고 있다. 모두들 전반전에 심취해 있기 때문인 듯하다.
이렇게 보니 우리 이민자들에게는 전반전이 너무 긴 듯하다. 보편적으로 인생의 전반전이 끝나는 나이는 50세 전후이어야 한다. 이 때 쯤이면 사회적인 기반도 잡히고 아이들에 대한 양육 책임도 어느 정도 끝난다. 하지만 이민자의 전반전은 유독히 길어 보인다. 낯선 땅에서 새로이 삶의 기반을 이루려고 애쓰다보니 자연히 그 기간이 길어지고, 이로 인해 생긴 ‘관성’에 따라 그저 정신 없이 열심히 자기의 노후와 자녀를 위해서 살다보니, 전반전을 끝내라는 주님의 호각을 듣지 못하고 연장전이 한창일 시간까지 자기와 가족만을 위한 삶을 사는 전반전을 뛰고 있는 느낌이다.
인생의 승부는 후반전에서 난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맡았던 기간이 후반전이 아니라, 전반전인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대통령이었던 과거의 직책을 발판 삼아 임기 후, 곧 그의 애프터 해프 탈임에 더 크게 활동했다.
후반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예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믿음의 끈을 조여야 한다. 또 ‘예수 가치’를 목표로 살아야 한다. 내가 존재하는 의미를 실천하되, 그 실천의 현장은 나와 내 가족의 담장을 넘어서야 한다(막 10:45). 무엇보다도 기억해야할 후반전을 사는 원리가 빌립보서 4장 5절에 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주님 앞에 갈 때가 가까워진 애프터 하프타임에는 ‘관용’을 익히고 살아야 한다는 교훈이다. 더 너그럽게 모든 사람을 대하며, 더 쉽게 손해보고 (어떤 이들은 이런 손해를 거룩한 손해라고 부른다), 더 기꺼이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이 관용의 삶이다. 전반전은 지위와 부 그리고 명예의 성취를 통해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시간이었다면, 후반전은 ‘관용’을 통해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진정한 영향력은 외적인 힘을 통해서가 아니라 ‘관용’을 통해 나온다. 이민자들의 교회는 서로 서로에게 더 큰 ‘관용’을 기다리고 있다. 모두들 전반전에 심취해 있기 때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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