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일까?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다고 하더라도 그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단지 환경적인 요인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문제인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 보면 어떨까? 이민을 원하는 사람들은 어떤 나라에 가장 가고 싶어할까? 그 답은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여전히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오고 싶어하는 나라이다. 미국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다. 세계인들 중에 무려 13% 정도가 이민을 원한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단연코 일등은 미국이다. 중남미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민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미국이 최종 목적지이다. 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들은 불과 1%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미국에 이주해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사실 대단한 경쟁을 뚫고 온 것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천만명이 넘는 불법 이민자들의 꿈은 오직 영주권 취득이다. 하지만 최근 자진해서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포기하는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미 성취한 아메리칸 드림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그 이유가 다름이 아닌 내년부터 시행될 해외금융자산신고법 (FATCA) 때문이다. 이 법에 따르면 외국은행이라고 하더라도 5만달러 이상의 예금을 가지고 있으면 IRS에 신고를 해야한다. 이 법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이미 해외에 일만달러 이상을 계좌로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자진 신고해야하는 규정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강제적인 법집행이 어려웠기 때문에 거의 유명무실한 상태였다. 그런데 내년부터는 외국 금융기관과 연계하여 이미 자산 도피처로 유명한 몇 나라를 시작으로 점차 적용범위를 확대해 나가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본소득세가 상대적으로 높은 미국의 갑부들이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작년에 페이스북의 공동창업자인 왈도 세이버린이 미국적을 포기하고 싱가폴 국적을 취득하면서 커다랗게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었다. 그는 페이스북이 기업공개를 하면서 졸지에 40억달러의 자산가로 변신했다. 앉은 자리에서 6700만 달러의 소득세를 물어야 했다. 자본소득세가 없는 싱가폴이 그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 것이었을까? 본인은 국적변경이 세금회피용이 아니라고 해명을 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브라질태생이었고, 스스로를 미국인이 아닌 세계인이라고 불렀다. 미국이 그에게 많은 기회를 가져다 주었지만, 수천만달러에 달하는 세금폭탄 앞에서 미국국적은 그에게 더 이상 매력이 없었던 모양이다.
이런 편법을 막기 위한 또 다른 법이 바로 출국세 (exit tax)이다. 미국시민권이나 취득한지 8년이 넘는 영주권을 포기하는 경우에는 자산의 평가차익에 비례해서 세금을 내야한다. 미국에서 세금은 원칙적으로 수익이 발생한 경우에 납부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지만, 이 경우에는 국적이나 영주권을 포기하는 순간 사망한 것으로 간주해서 상속세와 같은 의미로 세금을 부과하게 된다. 그 의도는 당연히 세금을 피해보겠다는 불순한 동기로 국적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징벌하려는 것이다. 한편 미국의 국적을 포기하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는 오만에서 비롯된 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개인자산이 200만 달러를 넘지않거나 연소득이 15만 달러를 넘지않는 경우에는 이 법도 해당이 없으니, 사실 부자들의 행복한 고민거리인지도 모르겠다.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근로소득세의 비율을 높이는 대신에 자본소득세의 비율을 줄이는 이른바 이원적인 소득세법을 유지하고 있다. 언뜻 듣기에는 반대이어야 할 것같은 이런 구조는 자본의 원활한 유통이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세제의 형평성만을 강조하면서 자본소득 (예전에는 불로소득이라고 불렀다) 에 대해서 엄격했다. 미국도 유럽에 비하면 자본소득 세율이 높은 편이다.미국의 자본시장은 세계의 1/3을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투자자들에게 가장 큰 매력이 있는 곳이다. 그런 자본가들의 입장에서는높은 세율은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투자자들의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세금때문에 미국 국적을 포기하려는 호사를 누릴 사람들의 숫자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하지만 국부의 60%이상이 상위 5%의 사람들에게 몰려있는 부의 편중을 생각해 본다면, 그저 무시할 수만은 없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칼럼리스트 하인혁 교수는 현재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Western Carolina University에서 경제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Lifeway Church에서 안수집사로 섬기는 신앙인이기도 하다. 그는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1991년도에 미국에 건너와 미네소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하인혁 교수는 기독일보에 연재하는 <신앙과경제> 칼럼을 통해 성경을 바탕으로 신앙인으로써 마땅히 가져야 할 올바른 경제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고 삶 가운데 어떻게 적용해 나가야 하는지를 풀어보려고 한다. 그의 주요연구 분야는 지역경제발전과 공간계량경제학이다. 칼럼에 문의나 신앙과 관련된 경제에 대한 궁금증은 iha@wcu.edu로 문의할 수 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