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린 글리슨 선교사(가운데)와 우간다의 고아들. ⓒ한국선교연구원(kriM)
(Photo : 한국선교연구원(kriM)) 아이린 글리슨 선교사(가운데)와 우간다의 고아들

8천 명의 우간다 고아들의 ‘할머니’로 알려진 호주의 아이린 글리슨(Irene Glessson, 위 사진) 선교사가 지난 2013년 7월 21일 호주 시드니에서 사망했다. 지난 14개월 동안 식도암과 싸워왔던 글리슨 선교사는, 끝내 가족들과 친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68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아이린 글리슨 재단(Irene Gleeson Foundation)의 창설자인 아이린 글리슨 선교사는 22년 전인 1991년 호주에 있는 자신의 집과 모든 재산을 팔아, 전쟁 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당시 전쟁 중이던 땅으로 들어갔다.

호주를 떠날 때 이미 4명의 성장한 자녀들과 13명의 손자, 손녀들이 있었던 글리슨 선교사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멀리하고 아촐리(Acholi) 부족이 주를 이루는 우간다와 수단의 국경 부근으로 들어갔는데, 이 지역은 당시 세계에서 전쟁 피해가 가장 심각한 지역 중에 하나였다.

이 지역에서 글리슨 선교사는 주변과 격리된 작은 공동체를 세우고, 아이들을 모아서 돌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돌보던 아이들의 대부분은 조셉 코니(Joseph Kony)가 이끄는 반군에 의해 납치되어 전장에 투입되었던 소년병 출신들이었다. 전직 교사였던 글리슨 선교사는 아이들에게 노래와 글자를 가르쳐 주었고, 우물을 파서 물을 제공하였으며, 건물을 세워 아이들을 먹이고 재웠다. 하지만 글리슨 선교사는 반군의 공격과 말라리아와 같은 질병, 그리고 고립된 상황 때문에 찾아온 우울증으로 고생을 했다.

불굴의 의지로 이러한 고통을 극복하며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사역을 포기하지 않았던 글리슨 선교사는, 8,000명에 이르는 아이들을 돌보기에 이르렀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빨간색의 티셔츠를 입혔고, 음식과 의료적 치료를 공급하였다. 오늘날 그녀의 사역은 3개의 초등학교와 60병상의 에이즈 환자 호스피스 병동, 1,500명을 수용하는 직업 훈련 학교, 1개의 지역 교회, 그리고 1백만 명 이상의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라디오 방송국을 소유할 정도로 발전하였다. 그녀의 사역을 통해 수천 명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

마침내 우간다 정부는 글리슨 선교사의 사역에 감사를 표시하였고, 호주 정부도 지난 2009년 국제 관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여 그녀에게 훈장(Officer of the Order of Australia)을 수여했다. 특히 호주 정부는 우간다 북부에서 에이즈와 전쟁으로 고통을 받은 아이들을 돌보는 그녀의 사역에 경의를 표하였고, 언론은 그녀를 ‘호주의 테레사 수녀’라고 칭송하였다.

글리슨 선교사의 장례식은 2013년 7월 29일 호주의 옥스포드 폴스(Oxford Falls)에 있는 C3 교회에서 거행되기로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녀의 자서전이 2014년 출간될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10년 미국의 연구 단체 Pew Forum이 실시한 연구 조사에 의하면, 우간다의 2010년 전체 인구 3,342만 명 중 기독교인 비율은 86.7%이며, 무슬림 비율은 11.5%이다. 미국 정부의 정보 기관 CIA가 운영하는 The World Factbook 사이트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독재와 내전을 겪은 우간다에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으며, 현재 인구 3,475만 명(2013년)을 가진 우간다의 종교 비율은 천주교인 41.9%, 개신교인 42%, 무슬림 12.1%라고 소개했다.

/한국선교연구원(kriM)의 파발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