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세금이나 정부의 지출을 결정하는 재정정책과 이자율이나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통화정책이 그것이다. 둘의 관계는 결코 나눌 수 없는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는데 미국을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두 정책을 시행하는 기구가 별도로 구성되어 있다. 재정정책은 행정부가 맡는다. 백악관인 셈이다. 그리고 통화정책은 중앙은행이 담당하는데, 미국의 경우에는 연방준비은행에 있는 위원회가 맡는다. 줄여서 Fed라고도 하고 연준이라고도 하는 기구이다. 연준의 의장은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행정부의 압력을 받지 않도록 철저하게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지금의 의장인 벤 버냉키는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인 공화당의 부시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다. 첫번째 임기가 끝난 후에 오바마 대통령이 재임을 시켰다. 정치적으로 반대편의 사람을 그냥 재기용한 것이다. 물론 부담이 많았을 것이다. 정치적인 의도도 있었겠지만, 그 만큼 신뢰가 두텁고 중립을 유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선거철을 맞이 하면 둘의 신경전을 더욱 심해진다.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선 피부로 느끼는 물가나 주식시장의 움직임이 중요한데, 통화정책의 영향이 더욱 크게 나타나는 부분이다. 집권당으로서는 당연히 연준이 돈을 많이 풀어서 경기를 활성화시켜 주기를 바란다. 연준이 협조를 하지 않아서 재선에 실패했다고 공공연히 주장한 전 대통령도 있었다.
그래서 연준의 의장은 소위 경제대통령이라고 불린다. 일년에 여덟차례 회의를 열고 주요한 결정을 하는데, 이번 주에 내린 결정은 세계의 금융시장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연준은 그동안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하여 (통화량을 늘리기 위하여) 매월 850억 달러의 채권을 사들이고 있었다. 실로 엄청안 양의 달러가 매일 시장으로 흘러들어 왔고, 이 돈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금융시장으로 퍼졌다. 상식적으로 달러공급이 늘어나면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마땅한데, 미국 달러화의 가치는 오히려 증가했다. 다른 나라들의 통화보다 여전히 더 믿을만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미국증시는 거의 모든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급상승하기 시작했고, 다우존스지수는 15000을 넘어서는 역사적인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주초에 내년말 혹은 2015년까지도 같은 정책을 유지할 수 있다는 처음의 정책을 수정할 뜻을 비추면서 조기축소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정책을 내일 당장 바꾸겠다는 것도 아닌데 시장은 크게 반응했다. 세계 거의 모든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폭락했다. 연준이 정책을 계획보다 빨리 수정하려는 것은 경기회복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니까 걱정할 사안이 아니라 오히려 반가운 소식인 셈이다. 그 동안 추가로 공급된 통화량때문에 일단 경기가 완전히 회복되고 나면 물가가 급하게 오를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크다. 통화정책은 일이 벌어진 이후에 뒤를 따르기 보다는 앞서서 나아가야 효과를 볼 수 있다. 물론 그 시점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이다. 과거 일본은 80년대의 황금기를 지나면서 자신감에 충만했고, 자국의 화폐가치를 급격히 상승시키는 실수를 범했다. 그 결과는 참담했고, 지금까지도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주식시장은 흔히 실물경제를 가장 잘 나타내고 소위 경기선행지수로서의 역할을 하기때문에 가장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주식시장의 폭락이 의미하는 바가 사뭇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 동안 주식시장을 끌어 왔던 힘은 실물경제가 아니라 거의 무한정 공급되던 미국의 달러화였다. 연준은 밤새 윤전기를 돌려서 달러를 찍어냈고, 이 일은 언젠가는 멈추어져야만 했고, 그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시중에 달러의 양이 두배가 되면 지금 내 주머니에 있는 달러의 가치가 반으로 줄 수도 있다는 (물론 금새 정확히 반으로 줄지는 않지만) 단순한 사실은 계속 무시되어 왔다.
주식시장은 조정국면을 거치면서 점차 안정되어 갈 것이고, 오히려 거품이 커지면서 생길 수도 있는 더 큰 어려움을 미연에 방지하는 일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소위 “버냉키 쇼크”는 이런 양면성을 지니면서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