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수용소의 끔찍한 광경들은 많이 알려졌지만, 그건 특별한 경우라 일반인들에게는 잘 와닿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평범한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 얼마나 탄압되고 있는지, 특히 이곳에서 실향민이라 불리는 이들의 남은 가족(월남 가족)들이 북한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알리고 싶었습니다.”
탈북민 이애란 박사(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장)가 자신의 북한 생활을 담은 수기 <사람, 참 안 죽더라(모리슨)> 1권 ‘평양에서 양강도로’를 펴냈다.
월남가족이라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평양에서 산간 오지로 쫓겨난 후, 죽지 못해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담았다. 국내 탈북민 2만6천명의 사연 하나하나가 책 한 권은 될 만큼 기구하지만, 지난 1997년 이 박사가 거기에 ‘또 한 권’을 보탠 이유는 이처럼 ‘북한 내 이산가족과 출신성분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많은 이들에게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박사는 11년간 책을 준비했고, 이번 1권에서는 자신의 탈북 직전까지를 다루고 있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적어도 낯선 사람들이 저녁 밥상에 둘러앉은 우리 집에 뛰어들어 이삿짐을 싼다고 야단을 치기 전까지 내가 아는 한 우리 집은 불행이란 전혀 없어 보이는 행복한 집이었고, 나는 몇 개월만 있으면 평양외국어대 특설반에서 외국어를 배우며 동시 통역사를 꿈꾸던, 세상에 더는 부러운 것 없는 치유불능의 공주병에 걸린 행복한 아이였다. …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낯선 사람들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이삿짐을 강제로 싸기 전까지 나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
-설탕도 아니고, 사람에게 ‘성분’이라니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버지를 남겨두고 월남하셨어요. 이산가족인 셈이죠. 출신성분이 나빴어요. 그동안 북한과 탈북민 이야기가 많았지만, 이산가족에 대한 관심은 예전 같지 않은 것 같아요. 남한으로 와서 실향민 가족들을 만나뵈니 슬픔과 상처들이 너무 많아 보였고, 그 분들께 당신의 가족들이 북한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책을 내주겠다는 곳이 없었는데, 중국어 성경을 펴내는 한 목사님께서 원고를 읽으시고 감동을 받으셔서 세상에 나오게 됐어요. 그 분은 처가 쪽에 실향민들이 있으셔서 사명감을 가져 주셨죠.”
-월남 가족에게는 어떤 불이익이 가나요.
“모두들 살던 곳에서 쫓겨나 탄광이나 광산, 임산(林産) 등의 중노동에서 헤어날 수 없어요. 거기서 대를 이어 일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승진할 수 없고,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대학에서 받아주지 않아요. 그러니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데도 지장을 받을 수밖에요. 승진도 못 하게 하는 여성이랑 누가 결혼하겠습니까. 북한에서는 연애를 해도 중매를 해도 출신성분 때문에 깨지는 경우가 많고, 모르고 결혼했다가 평생 구박당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래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 가장 많이 굶어죽은 계층이 바로 실향민 가족들이었어요. 이렇듯 월남자 가족으로 살아오면서 북한의 일상생활에서 겪은 고통들을 적었습니다. 제가 살던 곳에서는 실제로 인육 사건도 있었어요. 한 아버지가 아들을 환각 속에 돼지인 줄 알고 잡아먹고, 쥐고기 한 마리를 냄비에 삶아놓고 열댓 명이 싸우기도 하고…. 수용소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반 주민들에게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자식을 위해 피를 파는 어머니들도 보았어요. 북한의 우상화 교육 실태와 출신성분 제도를 낱낱이 기록했더니, ‘북한이 그 정도인가?’ 하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구요.”
-지난해에는 ‘북한의 음식과 생활 이야기’를 담은 <북한식객(웅진리빙하우스)>을 출간하셨죠. 식당도 하고 계시구요.
“식품영양학을 전공해서, 운명적으로 음식문화연구원을 차리게 됐습니다. 얼마 전 대통령께서 ‘형식이 내용을 결정한다’고 하셨는데, 맞는 말씀 같아요. 전공을 따라가다 보니 ‘통일은 밥상에서 시작된다’는 통일밥상 운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탈북민 일자리 창출과 남북한 사회통합과 문화적 이질감 해소에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하다 보니, 북한음식 전문식당(능라밥상)과 전통음식 생산 및 북한음식 체험도 하고 있습니다. 남한분들이 이런 시설들을 더 많이 활용해 주신다면 탈북민들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동정은 짧고, 인생은 길다’고 생각해요. 경쟁력을 갖추는 게 먼저겠죠. 그래서 직원들은 싫어하지만 냉면을 4천원에 판매하는 등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요. 북한 것들은 품질이 나쁘다는 이미지가 강해서, 저희가 신선한 재료로 직접 손질하면서 케이터링을 해가도 돈을 깎으려 하세요. 저희는 혜택을 드리려고 최선을 다하는데, 오히려 받는 분들은 자신들이 도와주는 거라 생각하세요. 하지만 이것도 저희가 극복해야 할 일이겠죠. 남한 국민들께서 편견을 버리고 활용해 주시면, 탈북민들이 통일한국에서 더 크게 쓰임받을 것입니다.”
특히 이애란 박사는 개성식으로 만든 ‘통일약과’에 한국교회의 관심을 부탁했다. 일일이 수작업으로 제작해 가격은 다소 비싸지만, 명절에 선물하거나 각 교회 카페에서 판매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자꾸 재정 지원만 해 주다 보니 탈북민들이 일을 안 하려 하는데, 그걸 생각하면 여기서 열심히 땀 흘리며 돈 버시는 탈북민들은 얼마나 훌륭합니까? 이렇게 일하면서 전문적인 기술을 배워야 통일 되고 북한에 가서도 영향력을 가질 수 있고, 북한 주민들의 눈과 귀와 마음을 열어 복음이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그저 눈으로 읽는 게 아니라, 몸으로 써내려가는 거라 생각합니다. 복음 전파는 그렇게 해야죠.”
-통일이 되면, 뭘 하고 싶으신가요.
“하고 싶은 거 없어요(웃음). 북한 가서 남한 분들은 이런저런 음식들 좋아하시더라 이야기해 드리려고요. 그러면 그 때 북한 분들이 먹고 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이애란 박사는 북한 신의주경공업대학 식료공학부를 졸업하고 북한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식품품질감독원으로 13년 근무했으며,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대학원을 졸업해 ‘탈북 여성 국내 1호 박사’가 됐다. 특히 지난해 강제북송 위기에 놓인 탈북민들을 위해 18일간 단식투쟁을 하면서 세간에도 많이 알려졌다.
최근 이 박사가 정대세 축구선수(수원 삼성)의 ‘김정일 존경’ 발언을 놓고 “그를 영입한 구단이 해체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비난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는데, 이에 대해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글이 기사화될 줄은 몰랐다”면서도 “젊은 세대가 지금 너무나도 정신 없이 헤매는 때에 그러한 발언은 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이 박사는 “(정 선수가) 혼자 조용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초지일관 ‘김정일을 존경한다’면서 많은 이들에게 선동하는데 할 말은 해야 한다”며 “김정일은 캄보디아에서 단죄받은 ‘킬링필드’보다 더한 살인마인데, 그런 인간을 추앙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성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