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의 메엔 족을 상대로 한 실험이 있었답니다. 사진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그 부족에게 사람과 동물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부족은 사진을 손으로 쓰다듬고, 냄새를 맡고, 구기고, 구겨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들은 사진을 조금 찢어서 맛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의식 속에는 사진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입니다. 벤쟈민 잰더라는 사람의 실험이었는데, 그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개구리는 어미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아름다운 석양을 감상하지 못하며, 색채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다. 그들은 맛좋은 자그마한 벌레나 갑자기 다가오는 황새 등 잡아먹거나 잡아 먹히지 않는데 필요한 것들만 볼 수 있다. 개구리의 눈은 개구리의 뇌에 아주 선별적인 정보만을 제공한다. 따라서 개구리는 오로지 선별적인 감각 카테고리만을 지각하는 것이다.”

그는 개구리의 예를 들어 인간의 눈도 선별적이라고 합니다. 지각의 범위는 개구리보다 훨씬 넓지만 인간은 모든 것을 볼 수 없고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감각만을 지각한다고 합니다. 인간의 의식은 눈으로 지각한 것 중에서 마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만을 인식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저자는 보다 넓은 가능성의 세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머릿속의 방해물을 제거하라고 합니다.

이것들은 생각을 어느 한 시점에 붙들어 놓아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과거의 노예가 되게 하고 현재에 미래의 행복을 꿈꾸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저희에게 새로운 안목과 방향을 주십니다. 더 먼 것을, 더 큰 것을, 더 소중한 것을 보게 하십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님을 모신 성도는 이제는 믿음의 눈으로 상황을 볼 수 있으며, 소망의 눈으로 내일을 볼 수 있으며, 사랑의 눈으로 사람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