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짓고 싶어 하는 인간의 마음은 끝이 없는 것 같다. 백 층짜리 건물을 올리는 것은 이미 한 세기 전에 이루어 낸 결과이고 이제는 세계 곳곳에서 “가장 높은”이란 타이틀을 쟁취하려고 노력 중이다.
언제는 타이페이에 있는 101빌딩이 가장 높다고 하더니 이제는 두바이에 있는 부르즈 칼리파가 828미터, 163층으로 세상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라고 한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이제는 높이가 1킬로미터가 넘는 높은 건물들을 지으려고 계획 중이라고 하니, 앞으로 달에 닿을 만큼 높은 건물들을 지으려는 경쟁은 이번 세기에서도 계속될 모양이다.
반면에 캘리포니아 북부에 있는 레드우드 국립공원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이 자라는 나무들이 있다. 높이가 300피트(9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들이다. 나무가 얼마나 높게 자라는지 아무리 목을 빼고 쳐다 보아도 그 끝을 한 번에 가늠할 수 없다. 도시의 빌딩 숲은 사람을 주눅 들게 하고 답답하게 하지만 이 곳에 서면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리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인간의 힘과 자연의 힘은 이렇게도 다른가 보다.
이 높은 나무들은 하루 아침에 자라는 것이 아니다. 모두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조금씩 조금씩 자라나서 그 키에 이른다.사실 며칠 만에 쑥쑥 자라는 콩나물도 그 크는 모습을 볼 수는 없다.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분명히 생명이 있는 것은 자라난다.
인간은 늘 이런 자연의 느림에 반발이라도 하듯이 늘 빠른 것을 추구한다. 높은 것도 빠르게, 먼 거리도 빠르게, 음식도 주문과 동시에 빨리 나오기를 바란다. 어쩌면 동전 넣고 누르면 바로 튀어 나오는 자동판매기야말로 사람들이 추구하는 욕망의 궁극적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 한 것은 이렇게 빠르고 높은 것을 추구하는 인간 자신은 그렇게 빠르게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의 어떤 동물들과 비교해 봐도 사람이 자라는 속도는 속 터질 정도로 느리다. 아기를 뱃속에 품고 있는 시간도 길고, 또 낳아서 독립해서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성장하는 것도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또한 인간은 몸이 성장하는 것만큼 인격이 성숙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열매 맺지 못하는 과일나무같이 인격의 성숙 없는 성장은 빈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방법론은 역시 빨리 빨리이다. 두바이의 빌딩은 3일에 한 층씩 쌓아 올릴 수 있어도 인격은 그렇게 빨리 빨리 성숙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요즘은 현대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과학기술에만 의존하던 태도를 버리고 인문학과 함께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도 많이 하고 있다. 그 결과로 인문학 책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런 책들을 수십 권 읽는다고 당장에 인격이 성숙하고 세상과 자연을 이해하는 눈이 활짝 열리는 것은 아니다.
그것 단지 지식의 단편일 뿐이다. 그런 정보들을 모으고 숙성시켜서 내면의 지혜로 성숙시키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한들, 그것은 오히려 자아 중심의 지식 유년기로 회귀할 뿐이다.
레드우드 나무가 자라는 비밀은 나무를 감싸고 있는 안개다. 그 높은 나무는 뿌리에서 수분을 끝까지 다 빨아 올릴 수 없기 때문에 나무 주변에 있는 안개를 통해 수분을 흡수한다. 우리의 삶이 안개에 싸여 있는 것 같이 한치의 앞이 보이지 않고 답답할지라도 그것은 저주가 아니다. 그 고난을 받아들이고 내면화 시키면 레드우드 나무처럼 우리의 인격은 높게 그리고 깊게 성숙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겠지만, 인격은 패스트푸드가 아니니까.